이 발로 걸어도 괜찮을까요?

[2주간의 터키여행]발 통증으로 병원에 가다

등록 2006.01.23 16:56수정 2006.01.2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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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이 깨어 발을 한 번 움직여봤지만 통증이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걱정을 안고 다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바닥에 발을 디뎌 보았다. 조심스레 걸음을 걸어보았지만 오른쪽 발이 아프다.

전날 토카프 궁전에서부터 조금씩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잠시 '삐끗'했겠지', '조금만 있으면 나아지겠지' 하며 잠을 청했지만 나아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여행을 계속한다는 건 무리였다. 걸을 때마다 아픔이 찾아왔다. 하지만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남아있는 날은 아직 많았다.


발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가이드북을 펴놓고 병원을 찾았다. 자가 진단으로는 근육이 놀란 것 같지만 혹 뼈나 인대에 이상이 있을 경우는 큰 일이었다. 외국인이 갈 만한 병원 두 개가 소개되어 있었고 그 위치는 오늘 가보려고 했던 탁심(Taksim) 거리에서 멀지 않았다.

절룩거리며 길을 나서니 골목골목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던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을 해준다. 관심을 가져준 모두 다들 자기에게 발을 보여달라며 난리다. 하도 큰 손짓과 걱정하는 얼굴로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니 민망하기 이르데 없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내 눈앞에 서 있다.

첫 날 나에게 애플티를 대접해준 카펫 가게의 청년이었다. 어제도 전혀 다른 거리에서 그를 만났다. 이런 인연이 있는가! 헤매지 않기 위해 버스 번호와 타는 곳을 다시 확인하고 나중에 그의 가게에 들르기로 빈 말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한 번만 더 이렇게 우연히 만나면 정말 인연이 있는 거라 생각하지.'

다행히 그와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지도를 펴고 탁심의 광장에서 병원을 찾아갔다. 탁심 거리는 우리나라 명동과 같은 거리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옷 가게와 맥도날드, 스타벅스 같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국제적 먹거리들로 가득 차 있다.


이 길을 조금만 벗어나자 마자 너무나 다른 길이 나타났다. 조그만 이 차선 거리에 너무 멋진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발이 아프지만 거리에 서서 오랫동안 이 멋진 건물들을 감상했다. 지금껏 봐온 술탄아흐멧의 느낌과는 또 다른 이스탄불이 그곳에 있었다.

a 병원 가는길.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가득하다.

병원 가는길.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가득하다. ⓒ 김동희


a 탁심거리 뒷골목에도 오래된 건물들이 옛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탁심거리 뒷골목에도 오래된 건물들이 옛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 김동희

병원은 컸다. 그들이 대해보지 못한 정말 다르게 생긴 이방인이 병원에 나타났다는 것은 그들을 긴장시키기 충분했다. 발이 아픈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니 여기저기 전화를 해본다. 수화기를 받아 몇 사람에게나 나의 증상을 설명하고 나서야 담당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인상 좋은 의사가 나의 발을 살펴주었다.


"근육이 놀랐어요. 갑자기 많이 걸어서 그런가 봐요."
"저 정말 별로 안 걸었는데… 그럼 뼈나 다른 건 문제 없는 거죠?"
"그냥 근육문제예요. 되도록 걷지 말아야 해요."
"저 가난한 배낭 여행객인데요. 하지만 노력해볼게요."

'노력한다'는 말이 웃겼는지 의사 선생님이 웃는다. 지키지도 못할 말인지 아는 게 분명하다. 약 바르고, 약 먹고, 얼음 찜질 해주고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쉬어주라는 처방을 들고 보험을 위한 진단서를 받고 나오는데 간호사 한 분이 나의 진단서를 뺏어가는 게 아닌가!

아무리 진단서를 내가 꼭 가져가야 한다고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한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그녀는 도장 찍은 진단서를 내 손에 꼭 쥐어주었다. 그런 거였구나. 그녀의 미소가 너무나 따뜻했다. 마음도 너무 따뜻했다. 비록 대화는 안 통해도 눈으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 큰 짐을 덜었다. 쉬어주면 괜찮다고 하니 좀 천천히 걷고 더 천천히 보라는 계시다. 바쁘게 서두르지 말라는 것 같다. 안심이 되니 탁심으로 향했다. 좀 더 천천히…. 이곳의 포인트는 역시 빨간 트램이다. 운송의 기능보다는 명물이 되어버린 빨간 트램은 이 번화한 거리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오묘하게 잘 어울린다. 이 녀석 정말이지 귀엽다. 가는 속도도 나처럼 느리다.

a 탁심거리의 마스코드 빨간 트램.

탁심거리의 마스코드 빨간 트램. ⓒ 김동희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간 식당에서 얻은 얼음으로 발 마사지를 해준 후 골든 호른을 가로지르는 갈라타 다리로 향했다. 갈라타 다리는 탁심이 속해 있는 유럽지구 신 시가지와 술탄아흐멧이 속해있는 유럽지구 구 시가지를 이어준다.

a 에미뉴에서 본 갈라타 다리. 유럽지구의 갈라타 탑도 보인다.

에미뉴에서 본 갈라타 다리. 유럽지구의 갈라타 탑도 보인다. ⓒ 김동희

처음에 목조다리로 만들어졌던 갈라타 다리는 몇 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다리 위에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미끼는 신기하게도 홍합을 사용한다. 다리 밑은 위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2단으로 되어있는 이 다리의 밑 부분은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과 술집으로 가득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음식과 차를 즐길 수 있다.

a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 김동희


a 갈라타 다리 밑에는 예쁜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갈라타 다리 밑에는 예쁜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 김동희


a 갈라타 다리 밑에서 바라본 예니 자미의 모습.

갈라타 다리 밑에서 바라본 예니 자미의 모습. ⓒ 김동희

다리를 건너 만난 에미뉴는 여전히 붐볐다. 많은 노점상들,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려는 승객들, 이집션 바자르로 가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바닷가 바로 앞에 배를 정박해 놓고 파는 고등어 케밥을 사먹었다. 빵에 구운 고등어와 토마토, 양파를 넣어 파는 케밥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맛이 새롭다. 하지만 짭조름한 고등어 살을 베어물 때 따뜻한 밥 한 공기가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햇빛은 강렬했고 몇몇 아이들은 벗은 몸으로 바다 속으로 들어가 수영을 했다. 그 모습이 꼭 시골 강가를 연상시켰다. 이스탄불은 항상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처럼 화려하고 현대적인 모습이 있는가 하면 바로 그 옆에는 아시아의 자연스러움과 인정이 넘친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유럽을 희망하지만 그들 속에는 유럽과 다른 마음과 정신이 지배하고 있다. 오늘도 햇살은 강하게 그들을 비추고 있고 인정 많은 그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a 에미뉴 선착장에서 수영하는 아이들의 모습.

에미뉴 선착장에서 수영하는 아이들의 모습. ⓒ 김동희

덧붙이는 글 | 2005년 7월 30일부터 8월 14일까지 터키 여행을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5년 7월 30일부터 8월 14일까지 터키 여행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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