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국의 숨결어린 옛 산정늪(1)

연변 내 고향 여행(11)

등록 2006.01.23 17:29수정 2006.01.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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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오마이뉴스 여행코너에 "성자산산성 따라 걸어 보았습니다" 올리고 보니 성자산의 자매산인 욕지산을 올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시름을 놓을수가 없다. 그래서 지난 10월 15일의 욕지산 기행을 올려 성자산과 욕지산 이해에 편토록 하고저 한다.

역사전공이 아닌 누군가에게서 성자산 북쪽산정에 동하국의 역사를 나타내는 옛 산정늪이 있다는 말을 들은것 같은데 아무리 뒤져도 해당자료를 찾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등산팀 코치이자 조직자인 이경호씨께 여쭈었더니 여름과 가을에 이은 10월 15일 옛 산정늪 등산행이 쭈욱 펼쳐졌다.


늦가을의 날씨치곤 여름같은 날씨다. 연길시가지에서 15선뻐스를 잡아타고 소영촌에서 내리니 등산동아리는 제법 12명 대오, 이경호씨의 숨은 노력이었다. 그들로는 <연변문학> 주필이자 연우포럼사이트 포럼장인 김삼씨와 시환경보호국의 이경호씨, 연변도서관의 김수영씨, 뱍춘실씨 등에다 길림연대변호사사무소의 지영철씨, 정승필씨 그리고 여성 몇 분이였는데 모두가 일정한 등산역사를 갖고 있는 유능한 등산 애호가들이였다.

그 가운데서도 김수영씨는 2000년 3월 연길시 뾰족산 등반부터 산행을 3년간 꼬박 견지하다가 2001년 4월 연변등산대표팀의 일원으로 한국 국제등산마라손 경기대회에 참가했고 한국등산학교에서 암벽등반까지 배우며 소문놓은 여사였다.

성자산 아래 서남쪽가 기름창고부근에서 북으로 령을 넘으니 령 저쪽 북녘에 덩실한 외진산이 시선에 맞혀왔다. 산행의 목적산이였다. 헌데 누구도 길을 몰랐다. 필자도 성자산의 저 자매산은 숙맥이여서 길을 물어야 했는데 산 서남가의 완만한 기슭에 대이니 두갈래 소로길이 나타났다. (그래도 산쪽에 붙은 소로길이 지름길이겠지.)

나랑 몇몇의 주장에 산쪽 소로길에 나서니 이 소로길은 산기슭 강냉이밭으로 통한, 어이없이 막힌 길이였다. 그런대로 따놓은 강냉이 이삭 사이로 수걱수걱 걷는데 “푸드득”소리와 함께 꿩 한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모두가 환성을 지르는 속에 누군가 “엄마 꿩이다!”, “장꿩이다!” 우스개를 올려 재밌는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그 토론속에서 막히는 숲속을 어느결에 헤치였는지도 몰랐다. 강냉이밭 북쪽가 홈채기(웅덩이)를 건너 왼쪽 등성이에 오르니 산정으로 통하는 수레길이다.

“그러면 그렇겠지!”


등산동아리 선술군 이경호씨가 선두를 긋자 수백미터밖의 산정을 잠간새에 조이였다. 눈앞에는 바자막이를 친 울타리가 나타나고 대문가 막사에서 강아지 한마리가 왕왕 짖어댔다. 잇따라 10살쯤 되여보이는 한족애가 쪼르르 나타나고 아가위(山楂)를 따는 한족로인 내외간이 우릴 맞아주었다. 그때에야 주위를 둘러보니 산정은 동으로 경사지고 움쭉 들어간 개활지대인데 꽤나되는 산정의 밭은 아가위, 사과배 등 과일나무들의 세상이었다.

산정의 밭과 과일나무는 한족내외간의 소유였다. 뒤미처야 안바이지만 바깥로인은 올해(2005년) 73살에 나는 이학인(李學仁) 노인으로서 산아래 광흥 1대 사람이었다. 원적이 산동인 이 노인은 1952년에 도문을 거쳐 1955년에 이곳 광흥촌에 자리잡았는데 여기 산정의 주인으로 “군림”한지도 어언 35년 철을 잡고있었다. 처음에는 생산대의 땅 3무에 불과했지만 부지런히 가꾸며 쯤쯤이 손을 댄데서 밭면적이 1헥타르로 늘어났다. 사과배에다 아가위 등 까지 심으니 과일나무도 약 300주를 이루어 제법 과수밭으로 변져갔다.


필자가 이학인 노인을 잠간 취재하는 사이 등산동아리들은 가지 휘여지게 달린 아가위(산사나무 열매)는 연변서 처음 본다면서 맛보기에 여념이 없는가하면 몇몇 여성들은 과수밭 밑에서 가을 민들레 캐기에 열을 올리였다. 대풍이 든 이 가을의 풍경, 단풍이 빠알갛게 든 이 가을의 마지막 풍경은 동하국의 숨결 어린 여기 산정에도 그대로 연연했다.

풍년든 산정을 일별하노라니 저 아래 발치에 인공늪을 방불케 하는 애어린 늪이 보이였다. 저 늪이 최근년간의 산물인가고 묻자 이학인 노인은 “선머? 이징치빠바이낸라!” (뭐, 이미 700~800년이 되네!) 하고 대답했다.

“700~800년?”

나는 잘못 듣지나 않았나하여 다시다시 물어도 그 대답은 드팀없는 700~800년이다. 이곳이 원적이 아닌데 어떻게 아는가고 물으니 박물관에서도 오고 연변일보 한족기자들도 오가며 들은 풍월이란다. 어찌하든 늪의 역사가 700~800년이면 천년고도(古都)를 자랑하는 동남쪽건너 성자산의 동하국역사와 맞아 떨어진다는 말이된다. 이런 늪을 누가 반기지 않겠는가, 나와 김삼주필, 김수영씨, 이경호씨, 박춘실씨 등은 늪가를 조용히 거닐며 동하국의 옛 숨결을 가늠해 보았다. 여기 산행의 목표가 바로 이 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거치여 온 동하국의 옛 산정늪을 답사하는 것이였다.

보매 옛 산정늪은 최근년간의 금시산물이나 다름없이 패워있었는데 너비는 불과 10미터 안팎이고 주변에는 한그루의 버드나무와 여러 그루의 과일나무들이 그림같은 풍치를 그려주고있었다. 늪면은 푸른 늪이끼로 덮히여 있었지만 손으로 가시고 보니 맑디맑은 물이었다. 노인내외쪽에 대고 소리치니 늪의 깊이가 한미터반은 잘 된다지 않는가.

찰나 나는 까알깔거리며 목욕에 여념이 없는 그 옛적 동하국의 궁녀들을 보는듯 싶었다. 이어 가마타고 성자산을 빠져나와 이곳 산정늪에 오르는 궁녀행렬이 보이며 동하국 그 시대를 떠올렸다. 아니면 고구려 시대로 거스러오르는 것일가.

덧붙이는 글 | 리광인(리함) 기자는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학술교류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리광인(리함) 기자는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학술교류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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