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로 한국인들 생각 바뀌었으면"

[인터뷰]'한국다움'을 사랑하는 방송인 스티븐 리비어씨

등록 2006.01.24 14:37수정 2006.01.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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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갓 구워 낸 베이글을 즐기며 진한 스타벅스 커피 향을 코끝으로 음미하는 미국인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동시에 한 손엔 시가를, 다른 한 손에는 월 스트리트 저널을 움켜쥔 미국인들의 모습을 성공의 잣대로 삼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과연 한국인에게 미국은 어떤 존재일까. 세상살이가 각박해지는 요즘, "이 놈의 나라, 미국은 안 그렇다는데, 미국, 미국…"이라는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내뱉는 이들은 없을까.


a 체인점 커피가 아닌 일반 커피점을 즐겨 찾는다는 스티븐 리비어 씨.

체인점 커피가 아닌 일반 커피점을 즐겨 찾는다는 스티븐 리비어 씨. ⓒ 나영준

스티븐 리비어(Steven Revere, 34, 미국)씨는 한국에서 얼굴 깨나 알려진 외국인이다. 한양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아리랑TV에선 한국어를 강의했다. 뿐만 아니라,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외국인으로도 자주 모습을 보이는 등 방송인으로도 낯설지 않다.

그런 그가 작년부터 한 일간지에 한 달에 한 번 꼴로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몇몇 외국인들이 칼럼진이지만 그의 글은 남들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WTO 회담 당시, 반세계화를 외치던 한국 농민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스티븐 리비어씨. 그의 말에 한국 문화에 대한 강한 애정이 묻어난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홍대 앞에서 그를 만났다.

"한 대학 앞에 스타벅스 커피숍만 세 개라는 게 말이 되나?"

한국 생활 어느 덧 11년차, 한국어교육 전공으로 연세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첫 외국인이기도 한 그는 한국인들이 흔히 외국인들에게 듣고 기뻐하는 칭찬은 막상 외국인 입장에선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한국 사람들은 흔히 외국인에게 '한국은 완벽하다. 좋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생각하면 되니까(웃음). 하지만 그런 천편일률적인 이야기 보다는 한국의 발전을 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직접 한글로 작성한다는(이후 한국인 친구가 교정을 보는) 그의 칼럼은 미국인이 본다면 다소 당황스러울 표현도 종종 눈에 띈다. '미국의 설탕 뿌린 밀가루 튀김인 일명 도넛' 같은 문장은 특히 그렇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런 글쓰기가 자신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다 대기업화 되어서 매력이나 각기의 다름이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타벅스 커피숍을 안 간다. 그런데 여기 홍대 앞에만 현재 두 개가 있고 지금 또 하나 생기려고 한다. 미국에서도 결국 스타벅스가 자리 잡은 부근의 커피숍은 망하게 된다. 홍대 앞 같이 독특하고 재미있는 가게들도 없어진다. 그런 면에서 (한국인들이)내 글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졌으면 한다."


a 한국 음식은 모두 맛 있지만 산낙지는 아직 부담스럽다고.

한국 음식은 모두 맛 있지만 산낙지는 아직 부담스럽다고. ⓒ 나영준

"활력 있는 한국의 시위문화가 자랑스러워"

그는 칼럼에서 지난 연말, 홍콩 농민 시위에 대해 '창의적이며 활력 있는 한국의 시위문화가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그에 대해 한국인 중에도 세계화는 어쩔 수 없는 대세라는 의견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반문을 던지자 "한 나라가 자기들의 먹을 것을 생산해 낼 수 없다면 그 나라는 다른 나라에 대해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스스로의 자유를 잃게 된다"고 답했다.

- 당신의 평소 칼럼을 보면 친환경적인 농업에의 예찬이 눈에 띈다. 반면 미국식 대기업에 대해선 다소 부정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의류를 만들 때 인간에 몸에 가장 안 좋은 재료가 무엇인지 아는가. 역설적이게도 바로 면화다. 원인은 농약 때문이다. 노동력을 아끼기 위해 미국 대기업에서는 무지막지한 농약을 살포한다. 그로 인해 면화 뿐 아니라 수질 등 모든 환경이 오염되기도 한다."

- 현대사회에서 소시민들은 대량 생산을 통해 제공되는 염가의 제품을 선호할 수도 있는데
"싼 가격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있다. 예를 들어 오로지 싼 음식을 찾게 되면 그것을 위해 대량생산을 해야 하고 이는 환경오염을 불러온다. 미국의 농업은 대기업이다. 기업은 법적으로 주주의 이윤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다. 이윤을 높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농약을 많이 뿌리는 것이다. 결국 건강으로 그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다."

이어 그는 제주도의 해녀에게 "왜 아직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옛날식을 고집하냐"고 물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해녀는 그에게 "기계로 하면 한 사람이 100명 하는 일을 다 해 버릴 수 있지만, 나머지 99명은 뭘 하겠어?"라고 대답했다고. 그는 이 답변이 대단히 합리적이면서 아름다웠다며 그에 비해 미국의 기업은 돈만 잘 벌면 환경오염을 해도, 사람을 함부로 해고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일부 한국인들, '외국과 미국' 분리해서 생각해야"

- 한국의 정치인들이 미국에 비해 특별히 더 부패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미국이야말로 완전히 썩었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이 아닌가. 워싱턴에서 로비로 먹고사는 사람만 3만5천명이다, 3만5천명! 이제는 돈이 없으면 정치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시스템이 완전히 썩었다고 할 수 있다."

a Let’s speak Korean이란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 스티븐 리비어 씨.

Let’s speak Korean이란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 스티븐 리비어 씨. ⓒ 아리랑TV

- 그럼에도 미국은 모든 것이 우리보다 '월등하다'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도 있는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한국인들의 이야기 중 '외국에서는 그렇다더라'이다.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외국'은 '미국'이다. 외국은 다양하다. 어떻게 외국이 미국이 되나? 도대체 외국 어디를 말하는 건가? 일부 한국인들 중 미국을 완벽한 천국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물론 한국보다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 그럴 땐 한 가지 이슈를 골라서 이야기해야 한다. 또 '대체적으로 미국이 한국보단 나아'라고 하는 이도 있다.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사안 별로 무엇이 나은지를 말해야 한다."

'한국에 살아보니' 칼럼 중 일부

'…농민들의 항의시위 중 눈에 띄는 장면은 홍콩 항구의 바닷물에 뛰어 들어간 일이었다. 오물투성이인 홍콩 항구의 더러운 수질 때문에 병을 얻은 한국농민들도 있었다. 홍콩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무분별한 발전을 추구하면서 더럽혀져 희생당한 항구, 그 항구에 다시 빠져 희생자가 된 한국농민들. 또 좌초 위기에 놓인 1,000년 세월의 한국 농사 전통이 릴레이처럼 희생되는 모습을 미리 보는 듯했다.

홍콩의 아름다운 자산인 홍콩 항구가 환경피해의 희생자로 떠오른 것처럼, 한국에서는 농민들이 이 같은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농민에 이어 값싼 것만 사기 위해 소비자들이 포기하는 전통과 환경이 다음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

- 06년 1월 13일, 경향신문 [한국에 살아보니] '한국 시위문화 감동적'
- 농민 시위에 대한 시각도 그렇고 소신에 대해 에둘러 말하는 편이 아닌데. 평소 한국 친구들이나 다른 외국인들이 이상하게 바라보지는 않는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식의…
"…맞다. 다르다(웃음). 다른 외국인하고 좀 다르다. 하하하. 물론 분위기에 따라 아예 입을 다물기도 한다. 정반대의 입장인 것은 좋은데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화를 내려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땐 피곤해져서 아무 이야기도 안 하게 된다(웃음)."

- 한국의 전통 장을 담가 먹기도 했다고 들었다. 식사는 100% 한국식인가?
"반 반 정도(웃음). 한국 음식은 물론 건강에도 좋지만 옛 사람의 지식이 담겨 있는 훌륭한 음식이다. 덤으로 처음 한국에 올 때보다 살도 빠졌다. 미국에 있는 가족들은 갈 때마다 살이 찌더라(웃음)."

어느덧 한국에 와서 강산의 변화를 보낸 그는 10년 전만 해도 길가에 앉은 아주머니들이 깎아주고 보태주는 아름다운 삶의 미학이 있었다며, 지금은 24시간 편의점들이 대로를 점령, 단 돈 10원이 모자라도 발길을 돌려야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래도 잠시 머물렀다 떠날 줄 알았던 한국에서 이렇게 긴 시간 있게 된 것은 자신이 한국을 좋아하는 이상으로, 한국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제가 지난 번에 쓴 농민시위 칼럼을 보면 댓글이 하나 붙어 있거든요(실제 긍정적인 내용의 댓글이 한 개 있다). 그분이 그 글을 통해 평소 생각하는 '미국인'에 대한 생각이 변한 거잖아요. 그럴 수 있다는 게 너무 뿌듯해요. 계속 방송에 출연하고 글도 쓰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아픔을 잘 나누고 어울리려고 하는 한국인들이 너무 좋다는 스티븐 리비어. 그런 만남의 자리에서 소주보다는 한국의 전통주를 먹었으면 한다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슬쩍 웃음이 나왔다. 한국인 보다 더 한국 문화를 챙기는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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