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신 살아 있는 목수 되고 싶어요"

마흔에 한옥 짓는 목수일 시작한 구직자

등록 2006.01.25 18:42수정 2006.01.2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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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배울 수 있다면 월급을 주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는데요. 고생했다며 80만원이나 주시네요."


긁히고 베인 상처들로 엉망이 된 손가락을 펴 보이며 승민(가명)씨는 환하게 웃는다. 한옥상장식이 있는 날이라 오전 근무만 하고 다들 술 마시러 갔는데, 승민씨는 그 틈을 이용해 고용안정센터를 찾아온 것이다. 자주 찾아뵙고 싶은데 시간이 나지 않아 올 수가 없었다는 승민씨는 그동안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 주셔서 감사하다며 초콜릿 두 개를 내민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다.

a 고맙다며 선물로 주고 간 초콜릿

고맙다며 선물로 주고 간 초콜릿 ⓒ 이명숙

현재 그는 가구와 한옥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와의 인연은 작년 11월에 시작이 됐다. 취업지원담당자의 안내로 성취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게 된 승민씨는 자신에 대한 자책이 심한 마흔 살 구직자였다.

"이 나이 되도록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한숨만 나오네요."

해 놓은 일 없이 시간만 허비했다는 자기 비하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힘들어하는 그에게 정 선생과 나는 틈이 날 때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늦게 가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십대에 시작을 해서 노년에까지 자신의 일을 개척해가며 사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시작했지만 도중에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많잖아요. 이제 마흔밖에 안 되셨잖아요. 충분히 잘 하실 수 있으리라 믿어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글처럼, 그동안 작은 칭찬 하나에도 변화 되는 모습들을 무수히 지켜보았기에, 장점을 찾아내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칭찬의 대가인 정 선생은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 챙겨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도와주었다. 3일째 되던 날, 그는 집사람이 챙겨주었다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고구마를 가져왔다.

"집사람이요. 매일 늦잠만 자던 사람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다니니까 보기 좋았던 모양이에요. 고구마를 싸 주네요."


은박지에 쌓인 고구마를 펴자, 따듯한 온기가 퍼졌다.

"우와, 맛있겠다."

참가자들 입에서는 동시에 탄성이 터졌다.

참가자들은 고구마를 먹으며 세상사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는 젊은 참가자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주변에서 반대를 한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 말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의 꿈은 화가였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뜻을 내 비치자 부모님은 남자가 무슨 그림이냐, 그 거해서는 밥 먹고 살기도 힘들다며 극구 반대를 했다. 결국 뜻을 꺾고 부모님의 소원대로 기계공학을 택하긴 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오직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학창시절은 방황의 연속이었고 막상 취업할 때가 되자 자신이 갈만한 곳이 없었다. 고민 끝에 택한 직업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테리어회사였다. 마티카, 매플, 참나무, 오크, 춘양목으로 고급가구도 만들고 천만 원이 넘은 관도 짜 보았다. 자신의 손을 거쳐 완성이 된 가구들을 보면서 자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그 곳에 오래 묶어 두질 못했다. IMF가 터지면서 회사가 어려워졌고, 자구책으로 컴퓨터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그는 친구만 믿고 컴퓨터가게를 차렸다. 그 결과 권리금은 물론 가지고 있던 돈마저 다 날리고 올 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결국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낙향을 했다.

그때부터 그는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가 딱했던지 우체국에 다니는 친척이 우편물 대리취급소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생계유지는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길게 가지는 못했다. 집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다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자신의 나이가 마흔이었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자각한 순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찾은 곳이 고용안정센터였다.

특별한 경력도 자격도 없는 마흔 살 남자가 갈만한 자리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성취프로그램에 연계가 된 것이다. 5일 동안 프로그램이 끝나고 정 선생의 추천으로 구인개척을 하게 되었다. 승민씨는 매일 고용안정센터로 출근을 해서 자신의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그는 결국 업체를 직접 다녀보면서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공예품도 만들고 한옥도 건축하는 공방이었다. 2년 가량 가구를 만들었던 거 외에 집짓는 경력이 전혀 없었던 그는 월급을 안 받아도 좋으니 기술을 배우게 해 달라며 매달렸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에 출발, 보성현장에 도착해서 오전에는 한옥을 짓는 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하나씩 배워나갔고 오후에는 산에 들어가 나무를 잘랐다.

처음 다뤄본 기계에 손도 다치고 산 속에 있으면 내복 두 벌을 껴입고 있어도 사나운 바람이 살갗을 파고들지만 그래도 배우는 것이 재미있다. 운이 나쁘다고 생각할 때는 주변에 나쁜 사람만 있었는데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부터는 도와주려는 사람들만 있는 걸 보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승민씨가 다녀가고 난, 다음 날 그에게 편지가 왔다. 아이보리색 한지에 세로로 내려 쓴 편지 속에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a 편지 원문

편지 원문 ⓒ 이명숙

그동안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쯤 출발합니다. 보성 현장에서 오후 5시 30분까지 작업을 하고 화순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면 6시가 됩니다. 배낭 메고 출근해서 흙먼지 가득한 작업복으로 퇴근합니다. 딸들과는 저녁에만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행복합니다. 집에는 온통 나무냄새와 톱밥이 가득합니다.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구인개척을 하면서 선생님들의 소개에 누를 끼쳐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중략)

고민과 지인들의 관심과 배려 속에 12월 3일 토요일에 면접을 보고 저녁 늦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첫째, 내가 좋아하는 일, 둘째, 젊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 셋째, 힘들어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 넷째, 늙어서도 할 수 있고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 다섯째, 늦었지만 최고가 될 수 있는 일.

아무리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내 일처럼 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공부하고 일기 쓰고 주워들은 것은 메모하면서 단순한 목수가 아닌 이론까지 겸비할 수 있는 장인이 되기 위해 관련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있으니 잘 지켜봐 주십시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연락하겠습니다.

처음대하는 기계들이라 위험하고 힘들지만 기계들과 대화를 하면서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들도 저를 무척 좋아합니다. 평일 날 쉬면 찾아가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갑자기 힘든 일을 하니까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합니다. 특히 형이 그래요. 그래서 형! 저 또 다른 일 찾으러 다니면 죽을 것 같으니 지켜봐 달라고 했습니다. 꼭 뜻대로는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며 살고 있습니다. 현실에 충실하고 인간뿐 아니라 미물들도 하찮게 보지 않는 사랑하는 사림이 되고 싶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도 저를 꼭 지켜봐 주십시오.


남들이 보기에는 결코 빠른 출발은 아니지만 마흔이 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그가 그의 각오대로 장인정신을 가진 목수가 되어, 전통 한옥의 맥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승민씨, 아자! 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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