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삼성물산 회장오마이뉴스 권우성
현명관 삼성물산 회장이 오늘(27일) 한나라당에 입당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매일 쏟아지는 하마평과 판세 전망 소식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볼 수도 있다. 실제로 한 신문을 뺀 나머지 신문들은 그렇게 봤다. 대다수 신문은 현 회장이 한나라당 공천으로 제주지사 후보에 출마할 것이라는 뉴스를 정치면에서 단신 처리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상당한 비중을 부여했다. 정치면에 3단 기사로 배치했다. '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두 구절이 눈에 띈다.
"현 정권과의 코드 문제 때문이냐"고 묻자 "그런 건 아니고…분야와 사안에 따라 코드가 맞는 것도, 다른 것도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 입당이 삼성의 뜻이냐"는 질문에는 "그룹과 연결시킬 문제는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말줄임표와 "절대 아니다"란 표현을 주목하자. 말줄임표 앞뒤를 장식한 현 회장의 발언은 모순된다. 현 정권과의 코드 문제는 아니지만 현 정권과 코드가 다른 것도 있다고 했다. 알아서 해석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절대 아니다"란 표현은 분명 강한 부정이다. 하지만 강한 부정이 긍정을 뜻하기도 한다는 경험을 상기하자. 현 회장은 "삼성은 정치와는 언제나 중립이며, 정치에 관여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고 강조했지만 안기부 X파일 내용을 회상하면 실소에 부칠 수도 있다.
삼성, 참여정부와 등 돌리는 신호탄?
<조선일보>는 삼성이 현 정권과 이상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게 볼 만한 정황은 많다.
현 회장은 삼성그룹 비서실장 출신으로, 재계가 이건희 회장을 전경련 회장으로 옹립하려 하자 그를 대신해 전경련 상근 부회장을 맡은 사람이다. 이른바 '가신'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조선일보>는 현 회장이 "이건희 회장이 추진한 '신 경영'의 전도사로 불릴 만큼 삼성에선 비중 있는 인물"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삼성물산 현직 회장을 맡고 있는 최고위 CEO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 행 표를 끊었다. 이를 단지 개인적 선택으로 돌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현 회장과 삼성 사이에 볼륨이 높든 낮든 파열음이 났을 텐데 그런 음향은 잡히지 않는다.
현 회장은 지난 총선 때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을 지냈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의 영입대상으로 거론돼 왔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한나라당보다는 열린우리당과 더 밀착돼 있었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발길을 돌렸다.
현 회장은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을 맡은 데 대해 "열린우리당 요청에 응했던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요청했어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이력에 정치적 해석을 가하지 말란 말이다. 그럼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당으로부터 동시에 '콜'을 받은 그는 왜 하필 한나라당을 택한 걸까? 이건 정치적 선택이 아닌가?
한나라당 선택은 '승산'..."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한다"
삼성과 참여정부 사이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면 그 발원지를 찾아야 한다. 어렵지 않다. 안기부 X파일, 금융산업구조개선법, 애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유죄판결,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등등 삼성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악재가 참여정부 들어 줄줄이 터졌다. 그 결과 이건희 회장은 장기 외유 중이고, 그의 처남 홍석현 씨는 주미대사에서 낙마했다.
참여정부가 일부러 삼성에 비판적인 정책을 폈거나 삼성에 불리한 사건을 유도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보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하지만 삼성 입장에선 참여정부의 '단속력'에 회의를 느꼈을 법 하다.
이상기류가 조성됐다면 그건 어딘가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어디일까? 관전 포인트는 이것이다.
현 회장의 정치적 선택이 삼성과 무관하지 않다면 향배를 가늠하는 기준은 삼성의 유·불리가 될 것이다. 어느 곳과 밀착해야 삼성의 앞날에 유리할 것인가 하는 판단 말이다.
현 회장은 "경제정책의 노선과 철학이 한나라당과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한나라당의 경제정책 노선과 철학이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닌 바에야 지금에 와서 그런 판단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럼 뭘까? 상인의 첫 번째 철칙은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동서와 고금을 막론한다. 현 회장이, 더 나아가 삼성이 지금에 와서 한나라당의 경제정책 노선과 철학에 주목하는 이유는 '승산'이다. 절대 손해 보지 않는 방법은 힘 센 자 편에 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삼성이 참여정부와 급격하게 거리를 둘 것 같지도 않다.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그런 아마추어 행보를 보일 리 만무하다. 상인의 두 번째 철칙은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고 그 방법이 '보험 들기'다. 안기부 X파일에 담겼던 것도 바로 보험증서였다. 삼성은 한나라당 후보에게 돈을 갖다 바치면서도 국민회의 후보에게 성의를 보이는 걸 잊지 않았다. 2002년 대선자금 제공 때도 마찬가지였다.
왜 제주지사로 출마하려는 걸까
내친 김에 달려왔지만 의아함도 떨칠 수 없다. 되돌아보니 이런 궁금증도 든다. "벌써?" 상인의 세 번째 철칙은 "조급함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리스크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첩경이다.
이 세 번째 철칙을 고려하면 현 회장의 행보와 삼성의 선택을 연결 짓는 건 '과잉 해석'일 수도 있다. 배당률을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한 초반 배팅일 수도 있다는 역추론도 가능하지만 어차피 결론을 볼 사안은 아니다.
시신경의 피로도 풀 겸 시선을 다른 데로 잠깐 돌리자. 현 회장이 출마하고자 하는 곳은 제주지사 자리다. 이게 적잖이 흥미를 유발한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다. 관련 법률도 이미 국회를 통과했다. 외교안보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행정권을 자율적으로 행사하는, 예컨대 미국의 주와 비슷한 곳이 제주도다. 이곳에서 삼성CEO 출신 지사가 탄생한다면 어떤 행정을 펼칠까? 이른바 글로벌기업 마인드가 녹아들 '특별 행정'은 뭐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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