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표님, 당신 때문에 부끄러워집니다

[주장] 전교조에 대한 증오로 가득찬 당신을 봅니다

등록 2006.01.28 13:01수정 2006.01.2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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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말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우리의 지난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소중한 가치를 아는 건강한 시민으로 키우는 학교입니다. 모든 학생을 똑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하향평준화나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는 관치교육을 극복해서 우리 교육이 제자리를 찾도록 만드는 것이 한나라당의 목표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교육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전교조가 어떤 단체인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대한민국 역사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하고, 철지난 이념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투쟁을 가르치고, '연방제 통일조국을 건설하자'는 자작시를 써서 홍보하는 교사도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전교조 교사입니다.

저는 박정희 정권 때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녔고 전두환 정권 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국민학교 때 매주 월요일은 애국조회가 열렸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지 않을 때엔 어김없이 애국조회가 열렸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학생들이 쓰러져도 계속되는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들으면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3학년 어느 월요일 아침 애국조회 시간에 상을 받았습니다. 적십자에서 주최한 사생대회에서 장려상이던가를 받았습니다. 상도 옆으로 커다란 것이 보기 좋아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러나 애국조회가 끝나고 난 후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잔뜩 화가 나 있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조회시간 중에 움직이고 떠들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우리는 주먹을 쥐고 엎드려뻗쳐를 해야만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셨는지 앞으로 전진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벌이 끝난 후 옆에 내려놓았던 내 상장은 아이들이 밟고 지나가 한 쪽 귀퉁이가 떨어진 채 운동장을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국민학교 어린이도 군인과 같은 절도와 인내를 요구받는 시대였습니다. 물론 대통령의 잘못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이 서거하였다는 뉴스에 저는 무척 슬펐습니다. 무섭기까지 하였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중학교 갈 무렵 새로운 대통령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두발 자유화가 실시되었습니다. 까까머리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좋은 대통령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교복은 자율화되지 않았습니다.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문을 들어서다가 선도부 형에게 불려갔습니다. 따귀를 맞았습니다. 다른 날보다 커다란 목소리로 멸공을 외치며 경례를 했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말해주더군요. 호크단추를 채우지 않았다고요. 동네 형 것을 물려 입어 채워도 잘 풀어진다고 말할 틈이 내게는 없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복이 사라졌습니다. 학년 구분이 희미해져 1학년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불만인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즐거웠습니다. 이젠 3학년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애국조회는 우리들에게 나라사랑을 위한 고통을 요구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번엔 월요일은 애국조회, 토요일은 교련조회였습니다. 교련조회에 비하면 애국조회는 조회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서서 줄을 맞추는 것은 걸으면서 하는 것에 비하면 장난일 것입니다. 칼 찬 대대장과 중대장을 따라 이제는 개그프로에나 나오는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고 모형 총을 어깨에 메고 운동장을 서너 바퀴는 돌아야 했습니다.

교련 선생님은 아예 군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셨습니다. 정말 무서운 시간이었습니다. 찔러 총을 할 때 대검이 사람 살을 뚫고 깊이 들어가도록 비틀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신병 교육 때 익혀야 했던 많은 것들이 우리에겐 이미 선수학습이 되어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대통령의 책임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내가 알게 된 새로운 역사는 우리가 왜 군대와 비슷한 학교를 다녀야 했는지 말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제주에서 거창에서 그리고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가 자랑스럽습니다. 4ㆍ19, 5ㆍ18, 6ㆍ10 가혹한 탄압 아래서도 우리가 이룩한 민주화는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학생들이 올바른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싶습니다. 올바른 시장경제를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도 가르쳐야 하지만 부끄러운 역사 또한 가르쳐야 합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역사에서 지워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전교조가 증오를 가르친다고 하신 말도 기억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전교조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당신을 봅니다. 이해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시기나 질투를 하진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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