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누구를 위한 '증세' '감세'인가?

[주장] 최근 증세·감세 논쟁에 대한 단상

등록 2006.01.28 13:17수정 2006.01.28 13:17
0
원고료로 응원
노무현 대통령은 며칠 전 신년 기자 회견에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며 그 해결책으로 증세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그동안 간헐적으로 제기되어온 한나라당의 감세 주장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사회적 논쟁의 한 복판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어온 몇 가지를 이야기거리 삼아 이 시점에서 어느 정도의 증세와 세출 구조 조정을 통한 복지부분의 확대가 필요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대통령이 회견 때 가지고 나온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재정 지출 규모(이는 곧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 규모와 일치한다)는 GDP(국내 총생산) 대비 20%대 후반으로 이것은 우리가 보통 '선진국'으로 부르는 대부분 서유럽 국가의 40%대는커녕 의외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알려진 미국이나 일본의 30% 대에도 못 미치는 정도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의 가장 많은 부분을 국방비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가난한 나라' '작은 정부'를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 정부에 돈이 없었다는 뜻이고 정부가 돈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는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어두운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지금부터 화제를 돌려 다소 '엉뚱한' 얘기를 하나 해볼까한다. 차를 타고 올림픽대로나 강변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면 확 트인 한강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도시 한복판을 흐르는 강치고 한강처럼 거대하고 빼어난 강이 또 있을까? 잘 알려진 영국의 템즈강이나 프랑스의 세느강 같은 강들도 최근 복원된 '청계천' 수준이고 보면 한강은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그런 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한강을 볼 수 없다. 강변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와 고층 건물들에 가려 한강은 더 이상 서울 시민 모두의 강이 아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정부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70, 80년대 개발의 시대에 정부와 서울시는 한강을 비롯하여 대대적인 개발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개발의 주체인 정부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상당 부분의 공사대금을 '땅'(채비지)으로 지급했고 건설사들은 거기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했다.

오늘날 서울 시민 모두의 '공유 재산'이어야 할 '한강의 조망권'은 이런 연유로 인해 '사유화'되었다. 정부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일 뿐 자세히 살펴보면 '가난한 나라' '작은 정부'의 그림자는 우리 사회 곳곳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필자는 경제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 재정이나 세금에 관해 그리고 그동안 우리나라가 '작은 정부'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다. 여하튼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재정 상황에서 세금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사회 복지와 소득 재분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세금을 많이 걷는다는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 열 몇 번째 경제 대국의 반열에 들고 이를 바탕 삼아 선진 복지국가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부가 할 일이 있고 그에 필요한 재원으로서 어느 정도의 증세는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에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는 감세를 주장하며 동시에 복지 예산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 주장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하는 한나라당 정책 담당자의 말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한나라당은 지난해부터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과 어려운 경기 탓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복지를 위해 장애인과 '서민' 택시용 연료인 LPG 소비세를 감면할 것을 주장했는데 정부에서는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다가 이제 와서 복지를 위해 세금을 올리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한다.

이러한 정책이 (세금을) 적게 걷고 (복지혜택을) 많이 주자는 것이라면 그 자체가 모순이지만 '적게 걷고 적게 주자는 것'이라면 한나라당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이는 곧 세금을 안 걷거나 줄이는 것으로 '감세'하고 그것 자체로 '복지'를 동시에 하자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장애인 중에도 극빈층에 가까운 사람이 있는가하면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도 있다. LPG 연료 사용문제는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비교적 여유있는 사람들에 해당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LPG는 장애인 본인 외에 가족이나 친지들에 의한 남용과 명의 도용에 따른 오용 가능성도 늘 병존하고 있다.

필자도 LPG를 사용하는 장애인으로 당장에는 세금 얼마 줄여서 가스 값이 싸지는 것이 더 피부에 와 닫겠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나 일반 서민에게 세금을 안 걷는 것이 능사는 아니며 받긴 받되 그것을 재원으로 하여 더 큰 도움이 필요한 다른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인 서민들에게 돌리는 것이 국가의 기능이자 존재이유이고 사회 복지 정책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의 감세 주장의 이면에는 오히려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기업이나 사회 주도층들의 세금을 줄여주자는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당은 하나의 정책으로 구성원 모두에게 인심 쓰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정말로 내세우는 정책이 무엇인지 그리고 대변하는 계층이 어느 계층인지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증세 감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한국 중세사를 연구했었습니다. 또 저는 생태 환경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이 분야의 글도 가끔은 쓰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글을 많이 또 취재를 해가면 쓰는 사람은 아니고 가끔씩 저의 주장이나 생각을 논설형식으로 쓰려고 생각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3. 3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4. 4 "개발도상국 대통령 기념사인가"... 윤 대통령 5·18기념사, 쏟아지는 혹평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