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급 짝퉁'도 은둔고수 앞엔 어림없다

'명품 감정' 전문가의 진품·가품 가리기 노하우

등록 2006.02.03 14:50수정 2006.02.0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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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부분 명품매장에서는 진품을 믿고 살 수 있다. 서울 한 백화점 명품관(자료사진).

대부분 명품매장에서는 진품을 믿고 살 수 있다. 서울 한 백화점 명품관(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박수원

"대체 뭐하는 분이시오?"


누군가 내 명함을 받아 쥐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명함대로 설명하자면 '지적재산권 전문가'. 그러나 상대가 더 자세한 답변을 요구하면 나조차 어떤 직업인지 말하기 힘들다. 차라리 내 하루 스케줄을 소개하는 게 빠르리라.

난 지재권 전문가! 하는 일은 글쎄?

"따르릉…" 첫 번째 전화가 울리면 이제부터 업무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전화를 건 상대는 주로 중고명품을 위탁 판매하는 업체 사장.

"고객이 이게 아무래도 진품이 아니라고 하는데 확인해주실 수 있겠어요?"

중고명품의 특성상 위탁판매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위탁 시점부터 위탁자나 매장 매니저가 가품(짝퉁)을 진품으로 오인하여 매장에 전시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부분 나중에라도 매장에서 발견하여 제품을 수거하는 경우가 많고, 소비자의 의심에서 비롯되는 오인도 많지만 아주 드물게 논란이 빚어지기도 한다.


매장에 도착하자마자 진·가품 논란을 빚고 있는 이태리 명품 G사 숄더백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대개 육안으로 살펴보면 50% 가량 진·가품 여부가 판정되고 가죽냄새를 비롯한 후각과 재질을 만져보는 촉각을 동원하면 80% 가량 판정을 내릴 수 있다.

최종적으로 명품사에 제품을 전달하여 본국으로 의뢰하기도 하지만 극히 드문 일. 가방 안쪽 부분에 G사만의 고유코드가 있는 태그가 달려 있고, 재질 역시 부드럽고 장식 부분은 깔끔한 것으로 미루어 가품이 아닐 확률이 커 보인다.


그러나 이태리 명품 G사 제품은 워낙 가품이 많고 G사에서도 가품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시중에서는 가품이 진품보다 많은 실정. 실제로 주의 깊게 가방 옆면을 살펴보니 G사만의 로고가 재봉선을 기준으로 대각선 방향이 일치하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가방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집어보니 아주 미세하게 보풀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내린 1차 판정은 99.9% 가품.

업체에서 위탁을 의뢰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정확한 구매지를 물어보니 결국 위탁 의뢰자는 G사 숄더백을 중국 여행 때 진품인 줄 알고 사왔다고 토로하고 만다. 이러한 경우는 현장에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얻은 셈이지만, 이는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한다.

인터넷경매 가품 주의...'수입면장' 만능 아니다

유명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이태리 명품 F사의 구두를 판매하는 김모씨는 갈수록 수익이 떨어져 그 이유를 찾아봤다. 경매사이트의 파워 셀러들을 살펴보고 김모씨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판매하는 F사의 명품구두와 모든 면에서 똑같은 가품구두들이 상위순위를 점하고 있던 것.

김모씨는 다급히 이 경매사이트에서 모든 F사 가품을 찾아줄 것을 요청하였다. 해당 경매사이트에선 절차도 복잡하고 상표권자만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 자신과 같은 병행수입업자들로선 앉아서 당해야 하는 꼴이라며 격렬히 불만을 토로한 뒤였다.

a 국내 모 경매사이트의 인기물품. 대부분 가품.

국내 모 경매사이트의 인기물품. 대부분 가품.

의뢰를 받고 해당 경매사이트를 정밀 검색하니, 김모씨가 취급하는 F사의 명품 구두는 총 100명이 넘는 판매자가 다루고 있었고 그 중 80%는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데 모두 가품이었다. 판매순위에서도 가품이 월등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상황.

가품을 '스탁'이나 '외국 OEM'이라고 그럴 듯 하게 위장하여 판매하는 경우도 있고 가품을 가품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가품을 진품으로 속여 파는 판매자들.

이들은 수입면장(수입신고필증)이 있다고 강조하지만 수입면장은 일종의 얼굴마담인 셈. 이럴 때는 진품이라 주장하는 업자의 제품을 직접 구매하여 판단한다. 제품을 받아보고 1차 판정하기까지는 일주일 정도가 소요되며 이 경우 정밀 진단하게 되면 백이면 백 가품인 경우가 많다.

잘못 알려진 짝퉁 상식

1. 전문가도 식별이 불가능한 짝퉁이 있다 (답은 X)

해당 제조사에서 판별하지 못하는 짝퉁은 지구상에 없다. 똑같은 재질과 똑같은 땀이 깃든 명품이라면 적어도 진품가의 80% 가격에 판매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가격에 짝퉁을 구매할 소비자는 없다.

2. 본드 흔적이 있거나 케이스가 없으면 모두 짝퉁이다 (답은 X)

유명 명품 제화의 경우도 본드를 사용하곤 한다. 단순히 본드 자국이 있다고 가품은 아니며 특히나 명품의 경우 케이스가 없이 제공되는 경우도 많다.

3. 수입면장이 있으면 모두 진품이다 (답은 X)

수입신고필증이 정확한 명칭. 이는 어디로부터 수입이 됐는지를 보여주는 서류일 뿐, 진가품 구별의 잣대는 될 수 없다. 완벽한 서류에도 가품이 있을 수 있으며 서류 한 장 없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소량으로 들여온 경우 중 진품이 다수 있는 것이 현실. 되레 수입면장을 강조하나 턱없이 낮은 소비자가를 형성하고 있으면 일단 의심하는 것이 상책.

4. 병행수입품도 진품이다 (답은 O)

병행수입품의 경우 철저한 심사로 수입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진품이다. 특히 대형매장이나 백화점 병행수입품의 경우 진품일 가능성이 높다. 병행수입품이 짝퉁이나 싸구려 진품으로 알려진 것은 오해다. 다만 A/S에 약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병행수입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명품수리점이 많은 현실에서는 다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자료협조: 김용철 전 한국지재권센터 소장


신혼여행길 산 명품시계, 알고 보니 홍콩산 가품

a 시중에 유통 중인 가품 고가시계

시중에 유통 중인 가품 고가시계 ⓒ 박동희

종합한 자료를 김모씨에게 건네주고 다음 업무를 하려는 찰나. 안면이 있는 연예인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게 된다. 내용인즉, 자기가 산 명품시계가 아무래도 미심쩍다는 것.

그가 보낸 시계 사진을 모니터를 통해 한참동안 바라본다. 틀림없이 스위스 현지 가이드가 보증하는 업소에서 신혼여행을 기념하여 구매한 것이라 강조하였는데 실제로도 사진상 보이는 시계는 이른바 세계 최고의 명품시계 'R'사의 제품.

만약 가품이라면 이른바 'SA급'이었다. 즉 육안으로는 진품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정교한 제품이란 뜻.

퀵서비스로 즉각 시계를 받아보고 그와 통화한다. 세계 최고의 명품시계인 R사의 제품이라지만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것. 문자판에서 드디어 단서를 찾아냈다.

루페로 면밀히 관찰해본 결과 문자판 광택 없이 다이아몬드만 빛을 발하고 있는 전형적인 홍콩산 가품시계였던 것. 게다가 가품의 최대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무브먼트에서도 결함을 발견해냈다. 결혼케이크에서 금방 걸어 나올 것만 같은 행복한 커플이었지만 그들이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는 가품이었다.

마지막 업무를 보기 위해 세계 제일의 명품업체 L사 한국지사를 방문한다. L사는 다른 외국명품사와는 다르게 그룹 자체가 가품 예방을 위해 최대한의 투자와 협조를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가품시장에서도 L사의 가품은 금세 판명이 나고 가장 많은 가품 수요를 보여주던 L사의 모조품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

이번에는 L사와 그동안 추적했던 가품시장과 공급원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대책을 강구한다. 그간 집중적으로 분석한 주요 가품 공급처에 대한 자료가 이미 확보되어 있는 상태.

회사로 돌아와 주요 가품 공급처에 대한 조사를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관계기관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발빠르게 연락을 취한다.

a 명품사의 노력에 갈수록 위축되는 중국 짝퉁시장

명품사의 노력에 갈수록 위축되는 중국 짝퉁시장 ⓒ 박동희


짝퉁의 기술...그러나 명품 은둔고수가 있다

"아,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군요."

이쯤 설명하고 나면 상대방은 고갤 끄덕거리며 수긍하는 눈치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상대는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이렇게 묻는 것이 다반사다.

"자, 이 지갑 한번 살펴봐 주세요. 선물로 받은 건데 진품인지 가품인지 맞춰 보십시오. SA급은 정말 전문가도 구별할 수 없다는데 맞습니까?"

그럼 나는 늘 그렇듯이 다음과 같은 프랑스 속담을 인용하여 명쾌하게 상대를 향해 답변을 해준다.

"사랑과 감기를 속일 수 없듯이 명품과 짝퉁도 결코 그 차이를 속일 수 없는 법입니다."

짝퉁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그것이 진품과의 영역이 없어질 것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지라도 결국 진품과 가품이란 단어가 국어사전에 서로 다른 위치로 새겨져 있는 이상 영원히 똑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SA급이란 단지 짝퉁을 판매하는 업자의 허황된 판매논리이며 짝퉁을 진품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일부 소비자들의 염원이 깃든 전설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도 은둔고수는 짝퉁의 기술을 제압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명품과 짝퉁은 이렇게 구별하세요
김용철 전 한국지재권센터 소장 '감정의 기술'

▲ 김용철 전 한국지재권센타 소장
작년까지 한국의류산업협회 산하 '한국지재권센타' 소장을 맡았던 김용철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상표권 및 지재권 전문가다. 명품과 짝퉁에 관한 각종 세미나와 간담회를 주관하기도 했던 김용철씨에게 명품과 짝퉁을 구별할 수 있는 노하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대표적 명품 회사를 기준으로 가방과 지갑 그리고 신발류를 정리한 내용이다.

○ 가방류 진가품 확인은 이렇게...

▲ 프랑스 명품 L사의 경우 로고와 바느질이 핵심

진품의 경우 바느질선이 고르고 촘촘하며 바늘땀과 모서리 사이에 갈색선이 있음. 진품의 뒷면 로고는 윗부분에 L사의 이니셜이 전체 표기되어 있고 등록 상표임을 의미하는 R자와 함께 새겨져 있다. 가품은 여기에 'made in france'가 사족으로 붙어 있으며 R자가 로고보다 더 크고 흐릿함.

▲ 이태리 명품 G사의 경우는 원단과 로고 표시가 핵심

진품의 경우 손으로 만져도 원단이 부드럽고 손가락으로 표면을 잡아당겨도 보풀이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나 가방 안쪽에 부착된 가죽 태그에 G사 로고가 선명하고 자연스럽게 각인돼있다. 그러나 가품의 경우 원단이 텁텁하고 보풀이 잘 일어나며 특히나 가죽 태그의 G사 로고가 조잡하고 흐릿하다. G사 가방인 경우 G마크가 재봉선을 기준으로 정확히 사선을 이루지 않고 있다면 가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지갑류 진/가품은 이렇게...

▲ 영국 명품인 B사의 경우는 말 모양이 포인트

진품의 경우 가죽 외피부분에 찍힌 말 모양이 선명하며 지퍼고리부분에 새겨진 말 모양도 유려하다. 가죽 로고부분도 양각으로 표시되어 있는 반면 가품은 외피부분의 말 모양이 흐릿하고 지퍼고리부분의 말 모양이 크고 조악한 것이 특징. 무엇보다 B사의 지갑일 경우 손으로 만져 봐도 비닐원단인 경우가 다반사.

▲ 프랑스 명품 C사의 경우는 원단과 바느질 확인이 포인트

고가의 명품으로 유명한 C사의 경우 시중에도 가품이 상당한 편. 지갑의 경우 진품이 매우 고급스러운 가죽을 사용하는데 반해 가품의 경우는 SA급이라 해도 비닐원단이 대부분. 손톱 끝으로 지갑 표면을 끊어보면 쉽게 표면이 벗겨지는 것이 가품이다. 지갑 포켓 안쪽의 바느질 상태를 보면 불규칙한 상태일 경우가 대개 가품.

○ 신발류 진/가품은 이렇게...

▲ 이태리 명품인 F사의 경우는 내부 안창이 관건

F사의 경우 가품과 진품 확인이 매우 어렵지만 의외로 간단하게 판별이 가능하다. 남성 신발의 경우 F사의 안창에 F사의 이니셜이 각인되어있는데 가품의 경우도 이는 동일하다. 하지만 안창의 크기가 진품의 경우 발바닥 전체 사이즈와 같지만 가품의 경우는 발바닥 전체 사이즈의 정확히 반에 불과하다. 한눈에도 안창이 반으로 나누어진 느낌. 만약 당신의 구두가 그렇다면 십중팔구 가품. 여성화의 경우는 굽에서 판별된다. 굽이 매끈하고 칼질한 흔적이 없으면 진품. 그러나 가품은 굽에 칼질한 흔적이 있고 만져 봐도 대단히 가볍고 조악한 기분이 든다. / 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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