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법 따라 '생사' 그네타는 박근혜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논의' 정도로 합의한 이유는?

등록 2006.01.31 09:58수정 2006.01.3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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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설 연휴 마지막 날인 30일 오전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북한산 대동문에 올라 '산상합의문'을 발표한 후 악수를 하고 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30일 오전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북한산 대동문에 올라 '산상합의문'을 발표한 후 악수를 하고 있다. ⓒ 오마이TV 김윤상


말장난에 가깝다.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논의한다"고도 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서명한 '북한산 합의문'의 서술어다. "사학의 전향적 발전과 효과적인 사학비리 근절을 위해 사학법 재개정을 논의할 수 있다"고 했고,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안을 제출하면 국회 교육위와 양당의 해당 정책조정위에서 논의한다"고 했다.

해석이 분분하지만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다. 중심을 잡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26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사학법 재개정 합의가 전제되어야만 등원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을 기준삼아 '북한산 합의'를 재면 된다.

'국회 정상화' 내준 한나라, 얻은 것은 '논의' 뿐

박근혜 대표가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합의문은 이렇게 작성돼야 했다. "사학의 전향적 발전과 효과적인 사학비리 근절을 위해 사학법을 재개정하기로 약속하며,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안을 제출하면 국회 교육위와 양당의 해당 정책조정위에서 논의 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재개정 시한까지 못박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산 합의문'은 "약속한다"란 서술어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논의할 수 있다"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넣었다. 뭘 뜻하는가?


한나라당의 완패다. 최소치로는 "논의할 수 있다", 최대치로는 "논의한다"를 얻고 대신 국회 정상화를 내줬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굳이 합의문을 작성할 이유도 없다. 언젠가 국회가 정상화돼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안을 내면 열린우리당은 논의를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한다. 그게 국회법이 명시한 법안 처리 절차다.

한나라당은 '북한산 합의'를 근거로 논의의 강도를 조금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열린우리당은 합의문 어느 구절에도 "약속한다"는 내용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논의에 응하기만 하면 된다. 더구나 논의 종결 시점도 못 박지 않았다. 질질 끌면 된다. 그럴 장치도 마련됐다.


'북한산 합의문'의 4개 조항 중 하나가 인사청문회, X파일 특검법,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을 위한 선거법 개정 등의 현안을 국회 정상화 후 협의한다는 것이다. 2월 1일 부로 국회를 정상화시킨 후 조금씩 의정 현안을 이 문제들로 이동시키면 된다.

사학법 재개정 논의 주체를 국회 교육위와 양당 해당 정조위로 국한했으므로 양당 원내대표는 좀 더 크고 시급한 현안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면 언론이 따라올 것이고 국민들도 생산적인 국회란 평가를 내놓을 법 하다. 그러는 동안 사학법 재개정 문제는 조금씩 잊혀져갈 것이다.

그렇게 두어 달만 끌면 지방선거전이 시작되고, 그로부터 한 달을 더 흘려보내면 박근혜 대표가 물러난다. 이재오 원내대표도 자신이 공언한 대로 박근혜 대표와 동반 퇴장한다. 경우에 따라 7월에 꾸려질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가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전임 지도부의 과실로 몰면서 털 수도 있다. 더구나 새 지도부는 당내 경선을 관리하는 중립 지도부로 힘도 별로 없을 것이다.

a 설 연휴 마지막 날인 30일 오전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북한산 대동문에 올라 각 당 원내지도부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30일 오전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북한산 대동문에 올라 각 당 원내지도부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오마이TV 김윤상

일단 국회 열리면 현안으로 중심이동... 왜 선뜻 합의됐나

그래서일까? 그 어느 신문보다 사학법 비판에 열을 올리던 일부 신문조차 사학법 재개정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번 합의가 사학법 재개정으로 이어질 지는 선뜻 점치기 힘든 상태"라고 했고, <중앙일보>는 "산 넘어 산"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도 "여야가 피차 정면충돌하는 양상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한나라당에 득 될 게 없는 '북한산 합의'다. 그런데도 왜 이재오 원내대표는 선뜻 합의해줬을까? 또 박근혜 대표는 그런 합의를 왜 추인했을까?

눈여겨 봐야 할 게 하나 있다. 이면 합의 가능성이다.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이면 합의는 없었다"고 말한 반면, 이재오 원내대표는 "그건 이미 얘기가 끝났다"고 말했다.

이재오 원내대표가 산행에 앞서 박근혜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사학법 재개정 '약속'이냐 '논의'냐를 논의했으며, 박근혜 대표가 여전히 '약속'을 받아내야 된다고 하자 이재오 원내대표가 "분명히 재개정을 이끌어내겠다"고 했다는 보도도 있다.

유재건 열린우리당 의장이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두 번이나 사학법 재개정 의사를 밝힌 점을 고려하면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이지만 어차피 확인은 어렵다. '이면'을 공개하는 정치인은 없다. 뒤통수 맞은 한쪽이 열받아 이면 합의 내용을 공개하더라도 문서로 담보된 게 아닌 한 다른 한쪽은 오리발을 내밀 수도 있다.

사학법은 열린우리당의 유일한 2005년 '개혁소출'

그래서 짚어야 할 건 가능성이다. 김한길 원내대표가 설령 이면 합의를 해줬더라도 그것이 온전히 이행될 가능성이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지방선거 이전에 이면 합의를 완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 열린우리당 의원 말대로 사학법은 열린우리당이 2005년 한해에 거둔 거의 유일한 '개혁 소출'이다. 선거를 앞두고 이를 뒤집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60% 이상의 국민이 지지하는 사학법이다. 스스로 표심을 갉을 이유는 없다.

그럼 지방선거 이후는? 이 또한 어렵다. 지방선거 이후에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모두 지금의 지도부가 무대 뒤로 퇴장하게 된다. 사학법 재개정 이면 합의를 '몰랐던 일' 또는 '과거의 일'로 돌릴 여지가 생긴다. 게다가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압도할 다른 정치 현안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올 공산이 크다.

이렇게 보면 사학법 재개정은 이면에서 합의를 했건 안 했건 말의 성찬 속에서 그네를 타는 정쟁거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와 대선에서의 공방거리로, 표심 다지기용 정쟁거리로 활용될 공산이 크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사람은 누굴까? 물론 박근혜 대표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사학법을 바로잡겠다던 그였다. 하지만 사학법이 '사'도 아니고 '생'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머문다면, 박근혜 대표 또한 '사'와 '생' 사이에서 그네 타는 신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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