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보고 없이 '전략적 유연성' 외교각서 교환

최재천 의원, NSC 문건 추가 공개... "전략적 유연성 문제 대통령에게 상황 호도"

등록 2006.02.03 10:27수정 2006.02.03 10:29
0
원고료로 응원
최재천 의원이 2일 공개한 '국정상황실 문제 제기에 대한 NSC 입장'이란 제목의 문건. 이 문건에 따르면, 외교부는 2003년 10월 FOTA 5차회의 당시 미국측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교환각서 초안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재천 의원이 2일 공개한 '국정상황실 문제 제기에 대한 NSC 입장'이란 제목의 문건. 이 문건에 따르면, 외교부는 2003년 10월 FOTA 5차회의 당시 미국측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교환각서 초안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오마이뉴스

외교통상부가 2003년 10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외교각서 초안을 노무현 대통령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사전 혹은 사후에도 보고하지 않은 채 미국과 교환한 사실이 NSC가 작성한 문건에 의해 확인됐다.

또 정부의 통일·외교·안보정책을 조정해 대통령의 '외치'를 보좌하는 NSC 사무처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문제의 중대성을 인지하고서도 한·미 간의 협상내용과 미측의 진의 등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은 미국이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세계 어디서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외주둔 미군을 유연하게 배치하려는 전략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동북아 지역분쟁 등 유사시에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으로 간주돼 왔다.

최재천 의원(서울 성동갑·열린우리당)이 2일 공개한 '국정상황실 문제 제기에 대한 NSC 입장'이란 제목의 문건에 따르면, 외교부는 2003년 10월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5차회의 당시 위성락 북미국장이 미국측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교환각서 초안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미 동맹의 성격과 한국 안보의 사활적인 이익이 관련된 중대한 국익이 걸려 있는 국가간 외교협상에서 협상의 실무책임자인 외교부 북미국장이 밀고당기는 본격적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측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외교각서 초안을 전달함으로써 우리측 협상전략을 노출시킨 것이다.

최재천 의원이 공개한 NSC 문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

오마이뉴스
최 의원이 공개한 NSC 문건은 비밀 외교문서는 아니지만, 한·미 외교협상의 진행과정과 내막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들을 담고 있다.


우선, 이 문건은 지난해 4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전략적 유연성 문제의 중요성에 비추어 한·미상호방위조약과의 합치성 등 최소한의 법리 검토를 해야 하는데, 우리 협상팀이 대통령께 보고없이 '외교각서' 형식으로 추진한 점 등을 문제제기한 것에 대해 NSC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NSC 조직 자체는 물론 외교부에 대해서도 '방어적 성격'을 띠고 있는 문건이다.

당시 국정상황실장은 천호선 현 의전비서관이다. 천 상황실장은 당시 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NSC 사무처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NSC 문건에 따르면, 외교부는 2003년 10월 당시 청와대에는 물론 NSC에도 보고하지 않고 임의로 교환각서를 통해 문제 해결을 추진했으며, NSC는 이런 사실을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2004년 3월에야 보고받았다. 외교부가 NSC와 대통령을 기망(欺罔)한 것이다.

NSC 문건에는 "외교부가 VIP 및 NSC에 대해 구체적 보고 없이 외교각서를 통해 문제해결을 추진한 정황 존재"라고 기술돼 있다. 여기서 'VIP'는 대통령을 지칭한다. NSC 문건은 이어 "NSC는 한미간 외교각서 교환 사실을 04. 3월에 가서야 (새로 부임한) 외교부 김숙 북미국장으로부터 보고받고 인지"라고 기술돼 있다. 협상팀에 대한 조정·감독 책임이 있는 NSC로서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문건은 이어 "03. 11월 35차 SCM(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 보고된 'FOTA 협의 중간보고서'에 의하면, '한미간 외교각서를 교환하기로 합의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고 적시했다. NSC가 'FOTA 협의 중간보고서'를 보고 받았으면서도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거나 묵인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NSC는 2003년 10월 6∼8일 위성락 외교부 북미국장이 미측에 교환각서 초안을 전달한 직후인 10월 18일 노 대통령에게 FOTA 협의 진행상황을 보고하면서 외교부의 교환각서 초안 전달 사실은 물론 외교각서를 통한 문제해결 추진 정황도 보고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NSC도 "외교부가 나름대로 내부 검토, 부처 협의(국방부), NSC 상임위 보고 등을 통해 외교각서 교환을 유력한 방안으로 제기해 왔으나, 한·미 간에 외교각서를 교환한 사실(03. 10/04. 1)에 대해 NSC 및 VIP에 사전·사후에 보고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문건에 적시했다. 그러면서도 NSC는 "외교부의 각서 교환사실을 보고받지 못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책임은 인정하나 보고 누락이 1차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NSC의 해명 "NSC는 사활적인 이익과 관련돼 있다는 인식과 기조하에..."

오마이뉴스
NSC는 또 문건에서 '전략적 유연성의 구체적 의미(병력의 전입, 기지 사용, 장비 사용 등), 형식 등에 대한 상세 보고가 없었다'는 국정상황실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NSC는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가 단순한 주한미군 유출입의 문제가 아니라, 한미동맹의 성격과 한국 안보에 사활적인 이익과 관련돼 있다는 인식과 기조 하에 부처 협의 및 VIP 보고 실시."

그러나 이후의 협상 전개과정과 합의결과를 보면 '한미동맹의 성격과 한국 안보에 사활적인 이익과 관련돼 있다는 인식과 기조 하에'라는 NSC의 해명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NSC는 문건에서 "외교부가 전달한 외교각서 초안의 내용도 전략적 유연성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요구(전략적 유연성 제한사항)을 포함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해명했다.

"교환각서 초안은 먼저 미측의 전략적 유연성 필요성을 충분히 지지함을 밝힌 후에 ①대한방위공약 유지 ②한국의 안전고려 ③사전협의 의무 등 우리의 우려 사항을 포함.

이에 대해 미측은 2004년 1월 미측 초안을 제시하였는 바, 여기에는 ②항(한국의 안전고려)이 삭제되어 있고 ③항 사전협의가 단순 협의로 수정되어 있는 등 한미 양측간의 입장차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음."


즉, 2003년 10월 위성락 북미국장이 미측에 전달한 우리측 '외교각서 초안'에는 ①대한방위공약 유지 ②한국의 안전고려 ③사전협의 의무 등 우리의 우려 사항이 포함돼 있었는데, 2004년 1월 미국이 우리측에 처음 제시한 미측 초안에는 ②항은 아예 누락돼 있고 ③항의 경우 '사전협의' 의무가 단순한 '협의'로 수정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NSC의 해명대로 '한미동맹의 성격과 한국 안보에 사활적인 이익과 관련돼 있다는 인식과 기조 하에' 미측과 협상한 '우리의 우려 사항'은 그 뒤에 어떻게 관철되었을까.

실제... '사전협의' 조항마저 없어지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9일 워싱턴 국무부에서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를 가진 후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날 전략적 유연성에 관해 합의한 공동성명의 문안이 발표됐다. 이 성명은 기존 한국측 입장에서 대폭 후퇴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9일 워싱턴 국무부에서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를 가진 후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날 전략적 유연성에 관해 합의한 공동성명의 문안이 발표됐다. 이 성명은 기존 한국측 입장에서 대폭 후퇴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해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견이 없었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와 달리 한·미 정상간에 이견을 보인 핵심의제는 ▲북한의 '우발사태'에 대한 군사적 대비와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였다. 두 정상간의 비공개 대화의 한 대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부시 대통령 "한국 국민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주한미군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역내(域內) 안정을 위해서도 주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면,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노 대통령 "그 문제는 한·미 동맹의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면 된다고 봅니다. 왜 이것을 미리 다 정해 놓아야 합니까. 사전에 정해 놓으면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시끄러워집니다."


노 대통령은 또 부시 대통령에게 "구체적 예를 들어, 만약 미국과 중국 간에 전쟁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을 작전에 참가시키려면 한국 정부와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면서 "그때 가서 한국 정부와 합의해서 하자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고, 미국은 그러한 상황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라고 양국간 입장 차이를 설명했다.

그런데 지난 1월 19일 '제1회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전략적 유연성에 관해 합의한 공동성명의 문안은 다음과 같다.

①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혁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②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 그는 지난해 12월 29일 NSC 상임위 회의에서 반기문 외교부장관과 달리 '사전협의 조항 없는' 공동성명을 주장, 이를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 그는 지난해 12월 29일 NSC 상임위 회의에서 반기문 외교부장관과 달리 '사전협의 조항 없는' 공동성명을 주장, 이를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런데 최재천 의원이 1일 공개한 지난해 12월 29일 NSC 상임위 회의(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협의 추진 방안) 발언록에 따르면, 반기문 외교부장관은 "외교부는 '제3안 : 공동성명 II' 입장"이라며 "정치적 성격의 선언이지만 통제절차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해 '사전협의 조항 있는' 공동성명을 주장했다.

반면에 이종석 NSC 사무차장은 이날 상임위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사전협의 조항 없는' 공동성명을 주장했다.

"우리측이 제시한 3개 기본개념 중 '①전략적 유연성'과 '② 동북아 분쟁 불개입'에 대해서는 미측과 합의를 보았으나, 셋째('③사전협의')는 미결 상황임. 우리측은 ③과 관련 향후 상황 도래시 논의하자는 입장임. 따라서 가능하다면 '제2안 : 공동성명 I'로 가는 것이 바람직함."

결국 최종 합의된 한·미 공동성명은 '사전협의 조항 없는' 제2안이었다. 이에 따르면 공동성명 문안에 대한 정부의 해석과는 달리,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하게 되더라도 이를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사전 혹은 사후의 '합의'는 물론 '협의' 조항조차 없기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행담도휴게소 입구,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역사 행담도휴게소 입구,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역사
  2. 2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3. 3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4. 4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5. 5 윤 대통령 조롱 문구 유행... 그 와중에 아첨하는 장관 윤 대통령 조롱 문구 유행... 그 와중에 아첨하는 장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