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상상력의 세계', 장정일을 만나다

등록 2006.02.03 22:12수정 2006.02.03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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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정일

장정일 ⓒ 조영신

사흘간의 짧은 설연휴가 끝난 31일 저녁 7시. 배제빌딩에서는 여러 방면의 예술가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듣는 "싱싱상상특강2"의 여덟 번째 장이 열렸다. 이 날의 주인공은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희곡작가이자 방송인이기까지 한 장정일. 불온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그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명절증후군의 피곤함을 무릅쓰고 많은 청중이 함께 하였다. 이번 강의에서는 평론가 이명원도 자리를 함께하였다.

장르를 망라하고 형식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드넓은 문학의 세계를 탐닉할 줄 아는 작가 장정일. 이런 그에게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장르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시(詩). 이번 강연에서는 장정일의 시, 그 문학의 세계가 펼쳐졌다.


불온한 상상력

장정일에게 시는 부조리한 세계를 향하는 고발이자 힘든 삶에서의 탈출구이고 가장 원초적인 욕망 그 자체이다.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엄하시던 아버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게 했던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함을 느끼게 해준 소년원. 이 세 가지의 경험은 그의 상상력의 원천이다. 이들은 "하얀 백지 위에 시원한 여백을 남기며 자유롭게 펼쳐진 활자들의 모습으로 해방감을 안겨준 '시'라는 공간"과 만나 한껏 발현된다.

a 낭독중인 장정일

낭독중인 장정일 ⓒ 조영신

장정일은 자신의 문학세계를 설명하며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대로 반영한 시 두 편을 낭독하였다. "시인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우정'이나 '사랑'과 같은 단어에 담긴 관습적인 때를 벗겨버리고 색다른 해석을 하거나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처녀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 실린 '지하인간'과 '입장권을 만지작거리며'를 낭독하는 그의 모습에는 쑥스러움과 비장함이 풍겨졌다.

장정일은 두 권의 시집을 냈다. 그 후 20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까지 그는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았다. 시를 쓴다는 행위 자체를 너무나도 열망했던 그이기에 청탁이 들어오면 '진통제를 먹어야 할 정도의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두 권의 시집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였다"며 앞으로도 시를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단호하지만 애틋하게 느껴졌다.

시를 쓰는 친구들은 뻔뻔해요

강연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평론가 이명원이 함께 강연을 진행하였다. 이명원은 "시인은 뻔뻔하다. 시라는 것은 발성이라는 것을 위장하고 포장하여 다른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데 시를 쓰는 사람들은 마음에 매우 단단한 철판을 깔고 자신의 모습을 시 안에 담는다"라고 말하며 문학의 세계에 내재하여있는 현실을 발현시키는 과정에 대해 장정일에게 질문을 던졌다.


a 장정일과 이명원

장정일과 이명원 ⓒ 조영신

장정일은 이에 "글쓰기는 범죄와 관련이 깊다"며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인간관계 등을 부수고 파괴하고 욕을 하는 것이다"고 대답하였다. 또 이러한 "글쓰기의 운명 때문에 항상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고, 괴로웠다"라고 창작의 괴로움을 성토하였다.

90년대 중반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외설파문 후 줄곧 자기검열과 자동적인 자기변명에 시달렸다는 장정일은 아직도 공식석상에서 발언하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어렵게 '상상특강2'에 걸음을 해 준 데 대하여 청중들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

덧붙이는 글 | 상상특강2 강의 문의 : 풀로엮은집/ www.puljib.com

덧붙이는 글 상상특강2 강의 문의 : 풀로엮은집/ www.pulj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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