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콤플렉스는 통일의 장애물이다

동북아 국가 상호간 콤플렉스 구조의 분석과 전망 ④

등록 2006.02.05 17:11수정 2006.02.0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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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우리 한국의 동족인 동시에 가장 가까운 인접국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갖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북한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오늘날 한국사회가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을 분해해 보면, 그 안에는 정통성 콤플렉스, 공포심, 복수심, 적대감, 경쟁심, 동정심, 동경, 형제애, 무시 등이 한데 뒤엉켜 있음을 알 수 있다(편의상 '하위정서'로 약칭). 그리고 이러한 정서들을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대북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편의상 '상위정서'로 약칭).

그런데 통일을 앞두고 있으며 또 통일을 준비하는 지금 상황에서, 한국인들의 대북 콤플렉스는 통일에 기여한다기보다는 도리어 장애가 된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에 대한 '형제애' 같은 긍정적 요소도 분명 존재하고 있지만, 그러한 긍정적 요소가 북한에 대한 공포심·복수심·적대감·무시 등의 부정적 요소들에 의해 쉽사리 희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가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고 있다면, 아니 적어도 북한과의 평화공존이라도 원하고 있다면, 북한에 대한 우리의 정서를 솔직히 분석하고 건전한 남북관계를 위한 사회심리적 바탕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그럼 위에서 언급한 복합적인 대북정서가 어떤 연유에서 발생한 것인지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대북 콤플렉스'는 과거 지배 엘리트 정서

먼저, '대북 콤플렉스'를 내용으로 하는 '상위정서'는 일반 한국인들과 북한의 교류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로 이승만·박정희 통치시기에 한국 지배 엘리트들이 갖고 있던 정서로서, 이들이 주도하는 반공 교육 과정에서 일반 국민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승만·박정희 통치시기에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독립투쟁 공간에서 자신들이 거둔 '성적'이 북한 지배 엘리트들의 '성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했다는 점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으로부터 불의의 기습을 받아 하마터면 정권을 잃을 뻔했다는 점 ▲자신들이 미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정권을 되찾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 등에 대한 인식 때문에 북한에 대한 심리적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다.


한편, 당시의 국민은 정부 주도의 반공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선생'으로부터 대북 적대감뿐만 아니라 은연중에 대북 콤플렉스도 물려받게 되었다. 한국정부가 국민에게 대북 콤플렉스를 가지라고 권장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선생'의 콤플렉스를 무의식적으로 전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 독재정권의 반공교육은 대북 적대감 주입이라는 애초의 목표는 달성했지만, 본의 아니게 대북 콤플렉스 확산이라는 부작용도 낳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대북 콤플렉스를 공유하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이러한 정서가 한국사회에 강하게 남아 있다.


대북 콤플렉스라는 '상위 정서' 아래에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통성 콤플렉스 ▲공포심 ▲복수심 ▲적대감 ▲동경심 ▲경쟁심 ▲동정심 ▲형제애 ▲무시 같은 복합적인 하위정서가 있다.

한국전쟁 계기 '공포심' '적대감' 생겨

정통성 콤플렉스의 형성에 관해서는 해방 전과 해방 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측의 독립투쟁이 북한측의 독립투쟁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적'이 높지 않았다는 점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정통성 콤플렉스를 갖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1946~1948년 기간에 한국 내 민족주의 세력이 주한미군에 의해 사실상 완전 '소탕'되었다는 점 역시 한국인들의 정통성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요인이 되었다.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인 브루스 커밍스가 지적하였듯이, 해방 공간에서 건국준비위원회(건준)와 그 계승 조직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세력은 당시의 국민에게서 90% 정도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므로 외부세력의 개입만 없다면 건준이 합법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건준의 라이벌인 이승만 세력은 자력으로 건준을 꺾지 못했다. 그들은 1946~1948년 기간에 주한미군이 자신들의 라이벌을 '소탕'해 주는 것을 그저 '구경'만 하였다. 그것은 마치 1894년 가을 이후에 벌어진 일본군의 동학군 '소탕'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쟁자가 없어지자 이승만 세력은 자연스레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시 한국의 지배 엘리트집단은 민족주의세력과 북한에 대해 정통성 콤플렉스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이후 북한 인민군의 막강한 '화력' 앞에서 부랴부랴 피난길을 떠났던 경험은 한국인들의 심리 저변에 북한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 주었으며, 또한 한국전쟁의 경험은 한국인들에게 북한에 대한 '복수심'도 함께 심어 주었다. 또 한국전쟁 이후의 군사적 대치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적대감' 역시 점차 강화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일부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서는 북한에 대한 동경심도 싹트게 되었다. 내면적으로는 북한의 정통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외형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데에다가 북한과의 정보 교류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일부 한국인들의 대북 의식은 동경심으로밖에 형성될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 대북 경쟁심 조장

일본 육군사관학교 차석 졸업과 만주 군관학교 수석 졸업으로 빛나는 일본군 장교였으며 해방 후에는 대세를 따라 한때 '빨갱이'가 되기도 했던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로는, 한국인들의 대북 감정에 '경쟁심'과 '동정심'이라는 것이 함께 추가되었다.

잘 알다시피, 박정희는 친일행적과 쿠데타 때문에 생긴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두 가지를 목표로 삼았다. 그는 친일행적으로 생긴 대북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북한 추월'이라는 목표를 세웠고, 쿠데타로 생긴 정통성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하여 '경제 개발'이라는 목표를 내세웠다.

군사정권이 국민의 일상생활과 의식까지 지배하는 상황에서, 박정희의 대북 경쟁심은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가 될 수 있었다. 북한만 이기면 마치 온 세상을 다 이긴 것 같은 착각이 사회를 지배했다. 오늘날 축구 한·일전만 열리면 온 국민이 TV 앞에 모여드는 것처럼, 당시 남북 스포츠 대결의 승패 여하에 따라 국민들이 웃고 울던 장면은 이제는 '추억 속의 빛바랜 사진'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군사정권이 외형적인 경제성장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북한 주민'에 대한 '동정심' 같은 것이 싹트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굶주림을 면하게 되자, '채찍 든 인민군의 감시 속에서 곡괭이로 땅을 파면서 힘들게 사는 북한 주민들이 강냉이로 겨우겨우 연명한다'는 반공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을 동정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소위 '북한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 한국인들이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분리하는 것은 사실 반공교육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탈냉전 무드가 확산하자, 한국인들의 대북 의식 속에는 '형제애'나 '무시' 같은 감정들이 또다시 추가되었다. 탈냉전 무드를 활용하여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대의에 공감하는 한국인들은 북한에 대한 '형제애'로 사기충천했지만, 또 다른 한국인들은 남북교류 개시 이후 북한에 대한 정보를 파편적으로 입수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무시'하기 시작하였다.

상당수의 한국인은 북한의 경제력도 경제력이지만, 북한의 군사력이 생각보다 약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들을 속인 군사정권을 탓하는 한편, 북한이 결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의 '월남 용사'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는 '탈북동포'(탈북자, 새터민)들을 보면서, 일부 보수적인 한국인들은 노골적으로 북한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국가주의에 갇힌 민족주의 정서

지금까지 설명한 과정을 통해,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는 대북 콤플렉스를 느끼는 가운데, ▲정통성 콤플렉스 ▲공포심 ▲복수심 ▲적대감 ▲동경심 ▲경쟁심 ▲동정심 ▲형제애 ▲무시 등을 담은 복합적인 대북 정서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대북 정서를 고려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상당수의 한국인이 북한을 대할 때에 민족주의적 정서를 갖기보다는 국가주의적 정서를 갖는다는 점이다. 민족이라는 큰 울타리가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자신을 가두어 둔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을 갖기보다는 '대한민국'의 이익이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만 '친한 척'하게 되는 것이다.

중화'민국'의 '민국'에 착안하여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들이 이처럼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갇힌 채, 민족이라는 더욱더 큰 바다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우리 자신이 쉽사리 인정하기가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솔직히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우리 '친부모' 밑에서 성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민족의 두 형제는 그동안 서로 다른 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 중 한 형제는 '적장(敵將)의 양자'로 살아왔다. 그 적장은 1946~1948년 기간에 우리 의식 속에 살아 있는 '친부모'에 대한 기억을 말살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 즉 민족을 모른 채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양부모'의 거짓말에 속아, 북한이 우리의 혈육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그저 적대만 하면서 살아왔다. 이제라도 '양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친형제'와 포옹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편안한 삶의 터전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양부모'를 배신하면 양부모 밑에서 축적한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쉽사리 친형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친형제가 우리보다 더 잘살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공연히 친형제를 선택했다가 '통일비용'만 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우리의 결심을 막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틀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이유 때문에 '민족'이라는 더 큰 자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 콤플렉스는 통일에 큰 걸림돌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통일을 향한 움직임과 노력이 전개되고는 있지만, 우리가 통일을 확실히 성취하고 또 더욱더 빨리 성취하려면,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북한과 하나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지금처럼 마음속에 대북 콤플렉스를 담아 두고서는, 또 마음 한구석에 공포심·복수심·경쟁심·적대감·무시 등을 담아 두고서는, 절대로 통일을 이룩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대북 정서는 분명 통일에 장애가 될 것이다. 올바른 대북 정서의 함양이 통일의 필요조건이 될 것이다.

우리가 올바른 대북 정서를 함양하려면, 무엇보다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남북교류를 보다 더 확대함으로써 남과 북의 '인간적 접촉'을 넓히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돈'으로 북한을 끌어들이려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발상을 버리고 진심과 성의를 갖고 북한을 대해야 할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북한측이 남한에 바라는 것은 결코 '돈'이 전부가 아니다. 북한은 남한과의 민족공조를 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 공동의 힘으로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를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북한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는 '중용'의 마음으로 북한을 대할 때에만, 우리 마음속의 대북 콤플렉스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남북교류를 보다 더 확대할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의 인간적 교류를 확대할 때에만, 우리 마음속의 불필요한 대북 감정들은 모두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누가복음 5장 38절)는 말처럼, 우리가 건전하고 올바른 대북 정서를 갖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심리적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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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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