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산에서 시산제를 지내다

등록 2006.02.07 18:22수정 2006.02.07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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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면 부산 시민회관 앞에는 전국 명산을 찾아 떠나는 등산객들로 북적댄다. 등산이 대중 레포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최근 5일제 근무 확산으로 눈에 띄게 등산 인구가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주말 하루쯤은 일상에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건강을 지키자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지만, 등산 인구 증가로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지나 않을지 염려스럽다. 산악회를 이끌어 가는 분들이 대부분 바른 등산문화 의식을 가져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가끔씩 가이드 산악회에 참가 할 때면 꼭 SJ산악회를 찾는다. 이유는 나름대로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등산문화를 선도하는 K대장과 또 SJ산악회 이념을 잘 알고 찾는 회원들과의 즐거운 만남 때문이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산악회마다 무탈 산행을 기원하며 시산제를 올린다. 오늘 SJ 산악회도 시산제 산행이라 제수용품을 준비했고 참여한 회원들이 분담하여 운반한다. 향과 몇 가지 제수용품이 내게 맡겼지만 일행인 후배에게 다시 짐을 지웠다. 처음으로 산을 따라 나선 직장 동료를 후미에서 맡기 때문이라 했지만 사실은 여유 있는 산행을 즐기기 위해서다.

남해, 구마, 88 등 3개의 고속도로를 2시간 넘게 달려 홍류동 계곡으로 진입을 한다. 차창 너머로 가야산과 남쪽으로 솟은 매화산이 눈에 들어오지만 약간은 실망스럽다. 꼭 1년 만에 이곳을 찾지만 화강암 암봉만이 햇살을 받아 눈부실 뿐 하얀 설산은 간데없다. 겨울 가뭄이 어지간히 오래 지속되나 보다.

선두 그룹에 서서 청량사 매표소까지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걸으니 안경에 벌써 이슬이 맺는다. 동료들과 후미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니 청량사(淸涼寺) 표지석이 나타난다. 매화산 남쪽 끝자락에 아늑히 자리 잡은 청량사에는 석조석가여래좌상, 3층석탑, 석등 등 보물이 안치되어 있고 고운 최치원 선생이 자주 찾았다고 전한다.

신라 말 문장가이며 진보 개혁적 사상가였던 최치원 선생은 난세를 비관하여 벼슬을 버리고 각지를 유랑하다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이곳 청량사 뿐만 아니라 지리산 등 산수 수려한 지역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 할 수 있는데 최근 중국 강소성 양주에 최치원 선생 기념관을 건립키로 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중국에 고맙다고 해야만 될 것인지?

[秋夜雨中] -가을비 내리는 밤에

秋風惟苦吟(추풍유고음) 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이 읊나니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 친구도 적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밖 삼경에 비가 내리니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앞에 외로운 마음 고향을 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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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에 선 필자 ⓒ 강석인

그의 시 '추야우중'을 통해 난세를 걱정하며 몸과 마음 의탁할 곳 없어 유랑하던 심경을 읽어 낼 수 있다. 청량사를 두고 좌측으로 돌아 가파른 오르막을 20여분 오르니 벌써 숨이 차 온다.

육체가 힘들지만 흘린 땀만큼이나 행복감이 찾아온다는 진리를 알기에 산을 찾아 오르고 또 오른다. 누가 산을 오르는 것 자체가 고행이요 해탈이라 했던가. 능선 안부에 올라서니 가야산 자락에 안긴 고찰 해인사가 한눈에 들어오고 연봉들은 청명한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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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산 암봉 ⓒ 강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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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 1 ⓒ 강석인

정상으로 향하는 암릉을 타면서 불가에서는 매화산을 천불산이라 불러지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수천년 세월을 모진 비바람에 버텨낸 기암괴석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즐비한데 이들이 모두가 부처님의 혼이 담긴 불상으로 보였던가? 기암괴석 사이로 빠져 나와 하늘과 맞닿은 암봉을 오르면서 이 순간만큼은 신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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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 2 ⓒ 강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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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 3 ⓒ 강석인

자연이 주는 위대한 선물을 눈으로 가슴으로 담아 두기에 부족하여 렌즈를 통해 이리저리 맞춰 보고 카메라에 담는다. 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글로써 다 표현할 수 없고 부족한 내공 때문에 카메라에 담기도 한계가 있으니 자연 앞에선 내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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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제 ⓒ 강석인

느릿느릿 2시간이 훨씬 넘게 걸려 남산제일봉 정상에 도착하니 시산제는 이미 끝나고 막걸리 한잔 음복하고 나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사방을 둘러보니 시계가 탁 트여 저 아래 저수지 맑은 물이 한웅큼이나 잡힐 듯 다가오고. 어떤 산객은 대구시가 보인다고까지 너스레를 떤다.

산 동무가 챙겨준 도시락을 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토란국을 마주하니 동행하지 못한 미안함이 밀려온다. 다음주 기백산 산행 때는 꼭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

하산 길 북사면에는 녹다가 만 눈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흔적도 없다. 정상아래 우측 능선을 따라 터벅터벅 걸으며 작년 이맘때 본 설경이 스쳐 지나간다. 넘어지며 자빠져도 하얀 설산이었으면 더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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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처 ⓒ 강석인

빠른 걸음으로 내달아 계곡 합수지점에 이르니 얕은 계곡수가 결빙되어 햇빛을 받아 눈부시다. 흰 눈을 대신하며 서운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려는 걸까? 중간 지점에 뻥 뚫린 동굴 기도처엔 무슨 소망을 빌었는지 흔적들만 소담스레 남아 있다.

산행을 종료하고 하산 주를 나누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건강미와 내면의 멋을 가져야 하는데 요즈음은 겉치레로 모든 걸 평가 받으려 한다는데 공감했다. 그러면서 오늘 산행에 참여한 분들은 아름다워질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고 즐거워하면서 시산제 산행을 마무리했다.

덧붙이는 글 |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미와 내면의 멋이 겸배 될 때

덧붙이는 글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미와 내면의 멋이 겸배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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