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하인즈 워드

[기고] 이부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등록 2006.02.10 16:55수정 2006.02.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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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혼혈 청년인 미국 슈퍼볼 최우수선수 하인즈 워드 열풍이 국내에서도 거셉니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가난과 차별을 딛고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하인즈 모자의 인생승리를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단상을 글에 담아 <오마이뉴스> 보내왔습니다. 이에 전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미국 최대의 꿈의 잔치, 프로미식축구 슈퍼볼 결승대회에서 피츠버그 스틸러스팀을 우승으로 이끈 주역, 최우수선수(MVP) 하인즈 워드. 하인즈와 어머니의 가슴을 울리는 인생드라마가 미국인들과 한국인들을 함께 감동시키고 있다.

여러 인종이 함께 섞여 사는 미국에서는 어려운 역경을 이기고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룩한 유색인종 모자(母子)쯤으로 그려질 법하다. 최고급 캐딜락 승용차가 선물로 주어지고 광고에 출연하고 돈방석에 앉게 되며 이제 지난날의 지긋지긋하던 가난, 고생과도 영 이별하게 된다는 영화. 텔레비전에서 수없이 보아온 그런 수준의 이야기로 진행될 수도 있다.

오직 아들만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

그런데 하인즈 선수의 언동이 범상치 않다. 어머니 김영희씨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흐르고 "어머니는 오직 아들인 자신만을 위해서 일해 왔으며 희생해왔다"고 말하고 있다. 유색인종이어서 겪은 슬픔보다 온전한 흑인이 아니어서 겪은 고통을 회상하며, 친구들로부터 당하는 따돌림이 싫어 어머니를 미워했다는 하인즈. 어느 날 차로 등교시켜주는 어머니가 창피스러워 친구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차 뒷좌석 깊숙이 몸을 숨겼다가 후다닥 차에서 내리며 뒤돌아 본 어머니. 운전대를 잡고 울고 있던 어머니를 하인즈는 잊지 못한다며 다시는 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단다.

하인즈가 다니는 학교의 식당일, 백화점 점원, 레스토랑 종업원 등 세 가지 직장 일을 매일 하면서도 아들의 점심과 저녁 식사를 챙겨 먹이고 밤늦게 퇴근해서는 이튿날 등교할 때 입을 아들의 옷을 다림질해냈다는 어머니.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서는 돈 한푼 쓰지 않으면서 아들 용돈은 풍족하게 쓰도록 했단다.

고교에서 이미 야구, 미식축구에 두각을 나타낸 하인즈가 프로 야구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자 어머니는 공부를 더 하도록 권했고 그는 조지아대에 진학하여 미식축구선수 생활과 함께 학업에도 정진했다. "항상 겸손해라", "나서지 말고 네 주변 친구들에게 공을 돌려라"라는 어머니 말씀을 새기고 산다는 것이다.

남편도 없이, 친척, 친지도 없이 오직 혼자의 힘으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 지난날 어려웠던 시절 아니 지금도 어느 구석에선가 그렇게 하고 있을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어머니가 그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하인즈-김영희 모자에게 찬사를 바치기엔 남루한 우리의 모습

유색인종으로서, 거기에다 흑인도 아닌 동양인 어머니를 둔 혼혈 아들을 키운 어머니의 고통이 오죽했겠는가. 이제 아메리카의 성공 신화로 우리에게 다가온 하인즈-김영희씨 모자를 대하는 우리의 심경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 모자의 성공담에 경박하게 찬사를 바치기에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남루하다.


어머니와 자신이 한국사회에서 살기에는 한국사회가 여러 인종이 함께 섞여 살 여건이 아니었다고 점잖게 말하는 하인즈의 표현이 어른스럽다. '흑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고국에서 냉대를 받았던 어머니가 낯선 땅 미국에 가 성실하고 재능있는 하인즈를 오늘의 거인으로 어떻게 키워낼 수 있었겠는지, 우리 모두 그들 모자에게 선망의 찬사를 던지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필자는 하인즈-김영희씨와 같은 경우를 어린 시절에 보고 가슴 저려 본 적이 있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네 삶이 모두 그랬듯이 자존심과 품위를 몽땅 던져버려야 살아남을 정도로 굶주림과 추위의 공포가 대단했다. 가장들인 남정네들은 전쟁터로 끌려가거나 혹은 감시자들을 피하여 가정을 떠난 경우가 많았다. 울타리가 될 수 없던 노인들, 그리고 여인들과 어린 아이들이 굶주림과 추위, 폭력에 내맡겨져 있었다.

필자는 한국전쟁 직후 대규모 미군기지촌이 형성되어 있던 영등포에 살게 되었다. 기지촌과 어린 아이들 - 보지 못할 것만 골라보고 자랐다고 해야 할까 -. 그곳에서 우리 이웃에 사는 한 여성이 흑인 미군 병사와의 사이에 여자 아이를 낳았다. 간혹 백인 어린아이는 홀트 복지회라는 곳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가기도 했지만 이 여성은 어린 딸을 입양보내지 않았다.

미군 상대하는 일을 그만둔 뒤에도, 전쟁 통에 사별한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첫째 딸과 친정어머니, 그리고 혼혈의 어린 둘째 딸과 함께 살았다.

온갖 험한 노동을 해가면서 어린 두 딸을 고등학교까지 가르쳤다. 여자상고에 진학했던 둘째 딸은 온갖 편견과 차별을 이기고 우등생으로 졸업하여 미군부대 타이피스트로 취업했다. 그 부대에서 둘째딸은 학군장교로 나온 제대로 큰 흑인청년을 만나 연애결혼에 성공하여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둘째딸의 집에 태평양을 건너 자주 다닌다고 했다. 팔순이 가까우신 그 어머니에게도 만년의 평안이 있기를 기원한다.

그 어머니를 비롯한 비슷한 처지의 많은 여성이 마치 큰 죄나 지은 듯이 그늘 속에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살아온 내력을 보아왔다. 우리 역사 속에서 이런 비극이 이 시대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백성과 나라를 제대로 지켜냈더라면 그들이 그런 비극적 삶을 살았겠는가.

뉘우치는 마음으로 하인즈 모자에게 진달래 꽃다발을...

이제 4월이면 김영희씨와 그의 장한 아들 하인즈 선수가 이 나라에 온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고 남은 기억이라고는 쓰디쓴 가난과 차별, 그리고 이곳에서 살 수 없어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뿐인데도 이 나라에 온다.

우리 모두 뉘우치는 마음으로 요란 떨지 말고 이들을 차분하게 맞이했으면 한다.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을 담아 이들 모자에게 우리 누이들 같은 진달래 꽃다발을 안겨주었으면 한다. 또한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늘 속에서 이들 모자의 귀국을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을 같은 처지의 여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눈에 띄거든 진달래 꽃다발을 함께 안겨드렸으면 한다. 이제 이곳이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갈 삶터라고 이야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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