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선 '도덕 교육' 바로 세우기

[서평] 김상봉의 <도덕교육의 파시즘>을 읽고

등록 2006.02.09 13:19수정 2006.02.0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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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을 연주하리라는 꿈을 갖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함께 요즘 피아노를 배운다는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의 기사를 지난 달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 기사를 보고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함에 있어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바이엘을 배우며 바하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가 무엇보다 친근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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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육의 파시즘> 겉그림. ⓒ 길

<도덕교육의 파시즘>의 저자 김상봉은 이른바 학계의 '아름다운 파격'으로 회자되기도 했는데,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대학 사회에서 철학과 교수 전원이 임용에 동의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저자를 만날 수 있었는데 지역주의, 학벌주의가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춰볼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두고 한 신문은 '대학 사회의 오랜 폐쇄주의와 교수 사회의 질긴 이기주의를 일거에 뛰어넘은 통쾌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노예를 기르기 위한 도덕 교육

한국의 도덕 교육은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을 뿐, 한 번도 긍지 높은 자유인을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이었던 적이 없었다. 노예가 아무리 착하다 하더라도, 노예적 삶이란 결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이상일 수 없다. … 인간을 자유인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오직 착하게만 만들려는 것은 언제나 불온한 시도이다.

도덕이 아무리 숭고한 옷을 걸치고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을 정신적으로 노예화하는 장치라면 우리는 그런 도덕을 단호히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성을 자유로운 자기실현에 앞서는 어떤 도덕도 정당성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 번째 가치인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우리가 이제껏 배운 도덕 교과서를 비판의 눈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에 이 책이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는지 헤아리긴 어렵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행동하는 게 선이고 바른 일이라고만 여겨왔고, 그저 순종적으로 믿고 따랐을 뿐이다. 이렇게 도덕 교과서가 잘못되었음에도 다른 과거 청산에 비해 문제 제기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이것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파한다.

파시즘적 도덕 교과서

파시즘은 한편에서는 전체주의와 인종주의로 나타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획일주의로 나타난다. 질서에 대한 우상숭배야 말로 파시즘의 전형적인 특징인 것이다. 우리의 도덕 교과서 역시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교과서에 따르면 모든 갈등은 부정적인 것이다. 생각하면 역사는 갈등을 통해 발전한다. 갈등이 없는 역사는 죽은 역사이다. 그러나 도덕 교과서는 전편에 걸쳐 질서와 조화의 이데올로기를 숭상하고 갈등을 무조건 위험시한다.

… 파시즘이란 다른 무엇보다, 개인을 국가와 민족이라는 전체 아래 종속시키는 세계관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덕교육이 노예도덕과 파시즘의 기관으로 전락한 곳에서 어떻게 진정한 의미의 도덕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도덕이란 인간성의 근원적 자유의 표현이자 실현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타율적 강제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우리의 신교육이 우리 스스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식민 교육으로 행해졌고, 그 식민 교육이 우리에게 자주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교육시켰을 리 없고, 해방 후에도 독재자들이 오래 집권함으로써 우리는 그저 순종적인 사람으로 교육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뼈아픈 이야기들을 연이어 들려준다.

교육이 인간을 참된 자유인으로 도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기능적 지식을 가르치는 다른 모든 교과목 외에 삶을 전체로서 사유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과목, 곧 인식이 아니라 지혜를 가르치는 교과목을 개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본문 중에서

도덕 교과서 집필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하고, 내용에 있어서도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이처럼 '국가가 더 이상 도덕 교과서 집필권을 행사하지 않을 때, 그리하여 모두가 모든 방식으로 도덕 교과서를 쓸 수 있을 때, 도덕교육은 국가주의의 낡은 굴레에서 벗어나 참된 의미의 도덕교육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장을 덮는 순간, 나는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미래는 점점 밝아질 것이다. 지금껏 우리가 받아온 도덕 교육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고, 이제 그 인식을 넘어서 노예가 아닌 주체로서, 참된 자유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올바른 도덕 교과서 만들기에 모두가 협력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김상봉 지음,
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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