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책읽기를 좋아하길 바라세요?

장난감 다루듯 책과 놀게 해주세요

등록 2006.02.09 16:45수정 2006.02.1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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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부모의 욕심 중 하나가 바로 아이들이 책과 친하게 지내는 것일게다. 더욱이 아기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단계에서는 책에 관한 관심이 더욱 커지는데, 특히 첫 아이의 경우에는 이 욕구가 커서인지 대부분의 부모들은 가계에 부담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책을 사는 데 있어서만큼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나도 그랬다. 수십 만 원 하는 전집을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책 한 권과 한 줄의 글이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하는지 경험한 나로서는 다른 것은 못 사줘도 책만큼은 아낌없이 사줘야겠다는 생각에 전집도 팍팍 사 주고, 자주 자주 서점을 감으로써 아이가 자연스럽게 책과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구입한 책, 처음에는 열심히 읽어주었지만 점점 멀어지고

a 거실에 TV와 컴퓨터가 있던 때에는 책 보다는 TV와 컴퓨터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TV와 컴퓨터를 작은 방에 놓고 거실에 책을 놓자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더군요.

거실에 TV와 컴퓨터가 있던 때에는 책 보다는 TV와 컴퓨터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TV와 컴퓨터를 작은 방에 놓고 거실에 책을 놓자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더군요. ⓒ 장희용

책을 구입한 후 처음 얼마 동안은 참 열심히 읽어줬다. 다섯 권이면 다섯 권, 열 권이면 열 권, 세린이가 읽어달라고 하는 만큼 읽어줬다. 많이 읽어달라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기분이 좋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어주는 횟수가 나도 모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처음 책을 구입할 때의 그 마음은 어디론가 간 데 없고 어느 덧 책 읽어주기는 의무감으로 변했다. 또 점점 아이들을 재우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책은 잠 잘 때만 아이들과 접촉할 뿐 하루 종일 방안에 있는 책장이 장식품처럼 말끔하게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한 번 멀어지기 시작한 책은 잠 잘 때마다 책을 가지러 가기 귀찮아 아예 10권 정도만 빼내 거실에 놓고는 그 책 중에서 3~4권씩 골라서 읽고 재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더욱이 어쩌다 아이들이 방안에서 책을 꺼내 와 거실에 어지럽혀 놓으면 "누가 이렇게 어지럽혀 놓았냐?"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책꽂이에 나란히 정리정돈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책을 멀리한 자리에는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차지했다. 당시에 책은 작은 방에 있고 거실에는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있었는데, 책이 멀어지니 아이들과 나는 자연스럽게 거실에 나와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컴퓨터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점입가경이라고 책이 있는 작은 방에는 아예 가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책과 멀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8개월 전쯤, 청소를 하는데 책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먼지를 봤다. 걸레로 문지르니 시커먼 먼지가 선명하게 걸레에 묻어 나온다. 그때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아내하고 상의해서 그날로 텔레비전을 작은 방으로 옮기고 방에 꼭꼭 숨겨져 있던 책을 모조리 거실로 꺼내 왔다.


TV 대신 거실을 차지한 책, 점점 아이들을 변화시키다

a TV가 사라진 저희 집 거실은 놀이터이자 작은 도서관입니다. 책 읽고 있는 태민이 보이시죠? 책을 가까이 하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더군요.

TV가 사라진 저희 집 거실은 놀이터이자 작은 도서관입니다. 책 읽고 있는 태민이 보이시죠? 책을 가까이 하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더군요. ⓒ 장희용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하던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아이들이 예전에 하던 것처럼 잠 잘 때만 책을 가지고 와서 책을 읽어달라고 할 뿐 더 이상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변해갔다. 물론 처음부터 아이들이 책을 읽거나 한 것은 아니다. 책은 그저 아이들에게 장난감 중 하나에 불과했다. 책을 여러 권 쌓아 놓고 그 위에서 뛰어내리거나,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누가 빨리 책장을 넘기나 시합하다가 책을 찢어 먹기도 하고, 책에다 색연필로 낙서를 하기도 하는 둥 장난감 역할이 더 컸다.

처음에는 책은 읽는 거라며 나무라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정리하라고 잔소리도 안했다. 어느 날은 세린이하고 태민이가 수백 권에 달하는 책을 죄다 책장에서 꺼내 거실에 어질러 놓고는 수영한답시고 책 위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있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거실은 온통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책으로 앉을 자리조차 없었지만 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아무튼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장난감에 불과했지만 점점 장난감 이상으로 변해갔다. 세린이는 어릴 적부터 지금의 환경에서 자란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직은 잠을 잘 때만 책을 주로 찾는다. 하지만 작은 변화일 수 있겠지만 스스로 혼자서 책을 읽을 때도 있고, 가끔씩은 글씨가 적은 책의 경우에는 동생에게 읽어주면서 자신을 동생에게 과시하는 적도 있다.

여기에다 뚜렷하게 변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자기 책장 앞에 가 본다는 것이다. 가서는 자기 책장에 있는 책을 수시로 꺼내 놓고 다시 책을 정리하기도 하고, 자기 책장 속 책을 유심히 보면서 '이 책 읽었나? 아, 맞다. 읽었다 읽었어!'하면서 혼자 책과 대화까지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린 아이의 행동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그 하나만으로도 이미 세린이가 책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넘어 책에 대한 소유욕, 책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 같아서 너무 기분이 좋다. 책에 대한 소유욕, 욕심이 생겼다는 것이야말로 이 아이가 앞으로 책을 더 가까이 할 것이라는 것을 믿게 해 주기 때문이다.

a 자기 책장을 정리하는 세린이. 어느 덧 책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책을 아이들과 가까이에 놓은 데 따른 긍정적인 변화이지요.

자기 책장을 정리하는 세린이. 어느 덧 책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책을 아이들과 가까이에 놓은 데 따른 긍정적인 변화이지요. ⓒ 장희용


a 세린이와는 달리 처음부터 이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둘째의 경우에는 혼자서 책을 꺼내 읽는 등 책을 아주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세린이와는 달리 처음부터 이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둘째의 경우에는 혼자서 책을 꺼내 읽는 등 책을 아주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 장희용

둘째의 경우에는 유독 눈에 띈다. 둘째의 경우에는 세린이와는 달리 성장단계에서부터 항상 책을 가까이에서 봐서 그런지 놀다가도 책장에 가서 책을 꺼내 놓고는 그림책을 유심히 보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혼자 책을 보는 둥 수시로 책을 가까이 한다.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도 책을 손에 항상 들고 다닌다. 대부분 거실 바닥에 그대로 내려놓지만 오다가다 눈에 뜨면 그 자리에서 한 번쯤 그 책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책을 보다가도 엄마 아빠를 보면서 뭐라고 하는데, 가서 보면 나름대로 책에 있는 동물들을 가리키며 소리를 흉내 내거나 책의 장면을 몸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굳이 뭔가를 알려주려 하지 않아도 책을 가까이 하면서 스스로 터득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역시 뿌듯한 마음이다.

a 아이들이 책과 친하게 지내게 하고 싶으시다면, 잘은 모르겠지만 책과 아이들의 거리가 절대로 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책과 친하게 지내게 하고 싶으시다면, 잘은 모르겠지만 책과 아이들의 거리가 절대로 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장희용

그래서 자녀가 책을 가까이 하길 원한다면 그것을 아이들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그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거실에서 TV를 없애고 대신 책을 놓았다고 해서 내 아이들을 무슨 큰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아이들이 책과 무척이나 친하게 지낸다는 것, 그로 인해 작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책을 통해 아이들이 밝고 올바르게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그래서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가리켜주고 싶다면 수십 만 원을 들여 전집을 사든, 서점에서 책을 한 권씩 선택해서 사든, 사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일상의 생활에서 책을 늘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라는 말을 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아이들 책 읽기에 대한 전문 지식은 없습니다. 경험에서 나온 지극히 평범한 것이니 부실한 내용인 줄 알지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아이들 책 읽기에 대한 전문 지식은 없습니다. 경험에서 나온 지극히 평범한 것이니 부실한 내용인 줄 알지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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