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아름다운 인연, 행복했습니다"

대안학교 원경고 제8회 졸업식 거행

등록 2006.02.11 17:13수정 2006.02.1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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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경고등학교 제 8회 졸업식 현수막 문구와 풍선 장식

원경고등학교 제 8회 졸업식 현수막 문구와 풍선 장식 ⓒ 정일관

입춘 한파가 막 지나가고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지난 10일에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는 제8회 졸업식을 가지고 졸업생 36명을 사회로 배출했습니다. 이로써 원경고등학교는 지난 19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정규 특성화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아 출범한 지 8년 만에 총 210명을 졸업 시킴으로써 한국 교육의 다양성에 기여하면서, 올해 처음으로 200명 대의 누계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의미들을 살리고 더욱 훈훈한 졸업식을 가꾸기 위해 원경고등학교는 졸업식 현수막 문구를 '따뜻하고 아름다운 인연,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로 정하고 게시하였습니다.

a 후배들이 마련한 졸업식 여는 마당, 풍물 선판

후배들이 마련한 졸업식 여는 마당, 풍물 선판 ⓒ 정일관

졸업생들은 3년 전 입학식을 시작으로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여 입시 위주 교육을 시행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겪을 수 없는 풍부한 체험학습과 특성화교과목을 통한 특기·적성 교육을 받았습니다.

또 기숙사에서 함께 뒹굴고 어우러지는 삶 속에서 많은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인간관계 형성과 배려의 문화를 익혔습니다. 만남이 힘들고 때론 눈물짓게 했어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인연'이었습니다. 비록 정신의 성장통을 겪으며 더디고 아프게 나아갔어도 그것은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

a 슬라이드로 비춘 <마음의 향기>

슬라이드로 비춘 <마음의 향기> ⓒ 정일관

졸업식 하루 전날 하나 둘씩 모여든 졸업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재학생들은 축하 공연을 준비하였고, 풍선 아트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아이들을 불러모아 놓고 밤늦게 풍선을 만들어 식장을 꾸몄습니다. 선생님들은 졸업장과 함께 수여할 '마음의 향기'를 졸업장에 하나하나 붙이는 작업들을 했습니다. '마음의 향기' 수여식은 이미 원경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매우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a <마음의 향기>를 나누는 선생님과 졸업생들

<마음의 향기>를 나누는 선생님과 졸업생들 ⓒ 정일관

졸업식의 시작은 원경고등학교의 풍물패들의 신명나는 선판으로 열었습니다. 방학 때마다 합숙하며 조금씩 기량을 닦아 온 풍물패들은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며 졸업식장을 압도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마음의 향기' 수여식은 3년간 함께 살면서 선생님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학생이나, 향기 나는 만남을 가졌던 학생들 두세 명을 지정하여, 졸업을 축하하고 앞으로 인생의 항로를 거쳐 갈 졸업생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을 담아 졸업장과 함께 수여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교장 선생님을 필두로 하여 한 선생님도 빠짐없이 '향기'를 전하여 자칫 형식적이고 건조하기 쉬운 졸업식을 더욱 따뜻하고 훈훈하게 만들었습니다.


a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함께 성숙했다는 학부모 회고담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함께 성숙했다는 학부모 회고담 ⓒ 정일관

학부모 감상담 시간에 학부모 최현일씨는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낼 때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었지만 아이가 조금씩 자존감을 형성하며 변해나가자 대안학교에 대한 긍정적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면서 아울러 학부모도 함께 공부하며 성장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졸업생 회고담에서 졸업생 조소정양은 학교를 다닐 때는 선생님들의 사랑과 후배들의 소중함을 잘 몰랐는데, 막상 졸업을 하려 하니 자신들은 모두 선생님들의 사랑 속에서 성장하였고, 그 고마움은 잊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고 회고하여 식장을 숙연하게 하였습니다.


합천군수를 대신하여 참가한 정순영 합천 부군수도 축하 말에서 "'마음의 향기' 전달과 졸업생들의 활달한 기운이 가득한 원경고등학교 졸업식은 참으로 창의성과 상상력이 풍부하고 분위기도 따뜻하여 감동을 받았다"면서, "앞으로 원경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삶의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졸업생들을 격려하였습니다.

a 따뜻하게 전달하는 이사장 장학금

따뜻하게 전달하는 이사장 장학금 ⓒ 정일관

학교 생활을 가장 모범적으로 한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이사장 장학금 100만 원은 부모 없이 누나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며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준 김대건 학생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김대건 학생은 학업 성취도에서는 부족함이 많았으나 풍물과 종이 접기 등 자신의 적성을 살리는 데 매우 성실한 자세로 참가하였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로 많은 성장을 한 학생으로 대안학교의 이념과 철학을 잘 살린 장학금 수여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a 10년 후 개봉할 타임캡슐 봉합식

10년 후 개봉할 타임캡슐 봉합식 ⓒ 정일관

그리고 졸업생들은 자신들의 추억과 함께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꼭 하나 고치고 싶은 습관이나 단점을 적은 글을 타임 캡슐에 넣어 봉합한 후 10년 후에 개봉하자는 약속을 하고 졸업식에 가져와 공개적으로 보관을 요청하고 전달하기도 하여 또 하나의 추억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a 축하 연주

축하 연주 ⓒ 정일관

졸업식은 졸업생들의 환호 속에 끝이 났습니다. 기념 촬영을 하고 학부모들은 선생님들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대개 학생을 졸업시켜 준 데 대한 감사를 무수히 올리고 가는 학부모들이 대부분입니다. 대구에 사는 한 졸업생의 할머니는 이런 학교가 있는 줄 몰랐다면서 손자가 무사히 졸업한 것이 너무 좋아 대구에 오면 꼭 연락하여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게 해달라고 세 번 네 번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a 영화 <올드 보이> 머리 모양을 흉내낸 졸업생의 모습

영화 <올드 보이> 머리 모양을 흉내낸 졸업생의 모습 ⓒ 정일관

학교는 이런 학부모님들을 위해서 점심으로 떡국을 공양하였습니다. 후룩후룩 맛있게 먹고는 졸업생들과 학부모는 또 다른 출발을 위해 학교를 총총히 떠났습니다.

졸업식이 끝나자 매년 그런 것처럼 학생들이 인사합니다.

"졸업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지요.

"졸업해 주어서 정말 고맙다."

하늘이 참 맑고 바람이 따뜻했습니다.

a 다시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원불교 성직자들과 기념 촬영.

다시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원불교 성직자들과 기념 촬영.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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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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