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뜻한 혁명가' 고 조문익 동지를 보내며

새로운 길을 찾아 영원히 떠난 사람

등록 2006.02.14 09:20수정 2006.02.1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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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익(43) 전 민주노총 전북 부본부장이 지난 7일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장례는 지난 11일 모교인 전북대에서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이 글은 '고 조문익 민주노동열사 장례위원'인 전희식 시민기자가 올린 글입니다. <편집자주>
세상을 머리로 사는 사람과 가슴으로 사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조문익은 어느 쪽도 아니다. 그는 머리와 가슴 둘 다로 살았다. 맑은 하늘 날벼락과도 같은 그의 죽음은 그래서 머리로 이해할 수가 없고 가슴으로는 찢어질 뿐이다.

장례식 장면. 모교인 전북대 학생회관 앞에서 영결식을 했다. 500 여 조문객들이 줄곧 흐느꼈다.
장례식 장면. 모교인 전북대 학생회관 앞에서 영결식을 했다. 500 여 조문객들이 줄곧 흐느꼈다.민주노총전북본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죽음 앞에 선, 시커먼 작업복 사내들을 눈물 콧물로 울부짖게 한 사람이다. 형으로도 불리고 '무니기'로도 불리는 사람. 선생님으로도 불리고 노동자로도 불리는 사람. 혁명가라는 호칭이 참 따스하게 다가오는 사람. 차라리 사상가가 더 어울리는 사람. 조문익이다.

장례식장 추도사에서 염경석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위원장은 자기는 왼팔이 아니라 머리통을 잃었노라고 했다. 친형 조창익씨는 동생이 있었기에 비로소 자기가 교사로서 해직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울먹였다.

장례식 전날 밤. 지역이 젊은 활동가들이 촛불 추도식을 올리고 있다. 전북대장례식장 안의 영안실 입구
장례식 전날 밤. 지역이 젊은 활동가들이 촛불 추도식을 올리고 있다. 전북대장례식장 안의 영안실 입구민주노총전북본부
서른 줄이나 되는 그의 긴 약력에도 나오지 않는 관계로 우리는 만나왔다. 명상수련모임이었다. 그는 야마기시 공동체 특강과 동사섭 수련을 했고, 노동자들의 각종 행사에 자기성찰 프로그램을 도입했었다. 노동운동의 거친 길을 가면서도 생명의 공동체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그의 꺼지지 않는 열정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만날 때마다 그가 벌이고 있는 일은 새로웠다. 노동자들의 글쓰기 운동을 강조했다. 대안언론을 중요시하여 <참소리>를 만들어 운영했고 <열린전북>과 <부안독립신문>의 고정필진으로 활동했다. 폐교를 인수해 마을이름을 딴 '논실학교'를 만들어 한국 땅에 와 사느라 설움 많은 이주여성들을 돌보았다.

씩 웃는 특유의 웃음으로 세상을 꿰뚫어 내는 그가 노무현 정권 아래서도 감옥엘 갔다. 그의 아내와 면회를 갔는데 감옥은 그의 도서관이 돼 있었다.

함께 활동했던 아내가 고 조문익씨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울먹이고 있다.
함께 활동했던 아내가 고 조문익씨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울먹이고 있다.민주노총전북본부
아무도 살아 돌아 올 수 없는 길마저 찾아 나선 사람. 그가 조문익인 것이 못내 슬프다. 죽음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사람. 그를 떠나보내는 것이 아직은 슬프다. 이승에서 그가 도달할 마지막 길을 설레며 지켜보던 선배로서 그 길이 눈보라치는 캄캄한 빈 들판이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 2월 14일자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한겨레> 2월 14일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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