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느님> 소박한 휴머니즘의 미학

[TV비평] KBS 월화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

등록 2006.02.14 09:43수정 2006.02.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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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주 김옥빈은,<안녕하세요 하느님>에서 이다해나 윤은혜와는 또 다른 당차고 씩씩한 여성캐릭터를 보여준다.
유망주 김옥빈은,<안녕하세요 하느님>에서 이다해나 윤은혜와는 또 다른 당차고 씩씩한 여성캐릭터를 보여준다.KBS
요즘 드라마에서 흔히 써먹는 재벌도, 신데렐라도 없다. 값비싼 이국의 풍광을 보여주는 해외 로케이션이나 화려한 액션도, 포복절도할 코미디도 없다. 막대한 제작비와 톱스타들을 총동원해서 어떻게든 '튀어야 산다'를 외치는 드라마 시장의 살벌한 경쟁구도 속에서, KBS 월화극 <안녕하세요 하느님>은 오히려 지나친 소박함 때문에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가 뇌신경 수술을 받고 아이큐 169의 천재로 거듭나는 하루(유건 분)의 휴먼스토리를 다룬 이 드라마는, 독특한 소재이기는 해도 애당초 자극적인 설정이 판치는 요즘 트렌디드라마의 주류와는 처음부터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눈에 띄는 톱스타도 없다. 김옥빈과 유건은 신인급인 데다 <말죽거리 잔혹사> <그린 로즈>로 이제 갓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종혁도 주연급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안녕하세요 하느님>에는 신분상승의 판타지나 진부한 연애담을 대체하는 잔잔한 휴머니즘이 있다. 여주인공 서은혜(김옥빈 분)를 사이에 둔 하루와 박동재 선생(이종혁 분) 간의 엇갈린 갈등 구도가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드라마가 주목하는 것은 멜로적인 요소보다는 상처받고 소외됐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따스하게 보듬는 과정이다.

정신지체아에서 천재에 이르기까지, 유건은 변화의 폭이 큰 캐릭터 하루를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해낸다.
정신지체아에서 천재에 이르기까지, 유건은 변화의 폭이 큰 캐릭터 하루를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해낸다.KBS
이 작품에는 일단 전형적인 악역이나 평면적인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조금씩 순수한 듯하다가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열악한 가정형편으로 고단하고 거친 삶을 살아야했던 서은혜,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려진 충격으로 차갑게 변해버린 박동재, 정신지체 장애인에서 어느 날 갑자기 천재가 되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하루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은 알고 보면 숨겨진 사연 속에서 저마다 조금씩 내면의 상처를 간직한 인물들이다.

인물들 간의 갈등은 첨예한 대립에 따른 긴장감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서로 다른 세계와 가치관을 고집스럽게 지켜오며 살아왔던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안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 주목한다. 하루를 중심으로 세 사람이 하나의 관계로 얽혀지면서, 그들은 때로 서로의 상처를 격렬하게 헤집고 다시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차츰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을 배운다.

일반 트렌디드라마 같이 선명한 대결 구도가 없는 이 작품에서, 시선을 붙드는 것은 배우들의 기대 이상의 호연이다. 아직 신인급인 김옥빈과 유건에서부터 조연급인 강신일과 송옥숙에 이르는 노련한 중견 배우들이 저마다 나름의 사연을 간직한 캐릭터를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낸다.

영화 <여고괴담>과 추석특집극 <하노이의 신부>로 주목받기 시작한 신예 김옥빈은 가장 눈에 띄는 배우다. 사실상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서은혜의 캐릭터는, 요즘 트렌드인 <마이걸>의 주유린(이다해 분)이나 <궁>의 신채경(윤은혜 분) 같은 엽기발랄한 '오버걸'과는 거리가 멀지만, 김옥빈 특유의 씩씩하고 당찬 매력만큼은 십분 발휘된다.


어눌한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정신지체 장애인에서, 내면의 혼란에 시달리는 천재에 이르기까지 급격한 캐릭터의 변화를 무난하게 소화하고 있는 유건도 주목할만한 하다.

이종혁은 냉혹한 악역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겉보기엔 차갑지만 내면의 상처를 간직한 인텔리의 모습을 연기한다.
이종혁은 냉혹한 악역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겉보기엔 차갑지만 내면의 상처를 간직한 인텔리의 모습을 연기한다.KBS
눈에 띄는 재발견은 이종혁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그린 로즈> <신석기 블루스> 등의 작품을 통해 이종혁은 그동안 주로 야비한 악역 인상이 강했다. <안녕하세요 하느님> 역시 얼핏 보기에는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박동재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미워할 수 없는 연민과 따뜻한 속내를 드러내는 인간적인 캐릭터로 시선을 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조연들의 플롯이 드라마 안에 효과적으로 어우러지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민주(추소영 분)과 자물통(김성수 분)의 연애담은 생뚱맞고, 장필구(강신일 분)의 허원숙(나영희 분)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설명이 부족하다, 감초 역할인 사채업자 표사장(김승욱 분)의 존재감이나 필연성도 밋밋한 편이다.

역시 진지한 장면과 코믹한 장면이 작품 속에서 효과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다보니, 주연들과 조연들의 연기 톤도 어우러지지 못하고 종종 생뚱맞게 튀어보인다는 게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김옥빈이 연기하는 서은혜가 지금보다 좀더 밝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로 그려졌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중반을 넘어선 <안녕하세요 하느님>은, 뇌수술을 받은 하루에게서 부작용의 징후가 나타나며 비극적인 전개를 예고하고 있다. 월화극 선두를 달리는 SBS <서동요>나 MBC <내 인생의 스페셜>에 비하여 눈에 띄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자극적인 소재를 지양하고 휴머니즘이 물씬 풍기는 따스한 이야기 전개를 사랑하는 팬들의 꾸준한 성원을 얻고 있다. 가끔은 이런 심심한 드라마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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