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동네 누나의 얼굴을 엿보던 설렘

전남 담양군 금성산성에서의 달맞이

등록 2006.02.14 17:44수정 2006.02.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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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군 금성산성 남문루 사이로 보름달이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전남 담양군 금성산성 남문루 사이로 보름달이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서종규
의외죠! 산 위는 달이 훨씬 빨리 뜹니다. 해가 넘어가기도 전에 벌써 보름달이 올라오고 있었으니까요. 넘어가는 해를 보아야 할까?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보아야 할까? 즐거운 고민이었습니다.

우리들이 금성산상을 한 바퀴 거의 돌아올 지점에서 맞은 해넘이와 달맞이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선명하게 붉은 태양이 어두워 가는 하늘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바로 담양댐 물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니까요.


철마봉에 섰을 때에 멀리 담양댐 속으로 해가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철마봉에 섰을 때에 멀리 담양댐 속으로 해가 빠지기 시작했습니다.서종규
보름달이 처음 산 위에 올라오기 시작할 때엔 조금 이지러져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얗게 한 점 하늘에 얼룩져 있었지요. 그러던 달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성 위에 고개를 내민 보름달은 소나무 위로 올라가더니 더 높은 하늘 위로 올라갔지요. 붉은 태양에 비하여 차가운 달이라고나 할까요?

2월 11일(토) 오후 2:30,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15명은 보름을 맞아 성 밟기와 달맞이를 위하여 전남 담양군 금성면에 있는 금성산성에 올랐습니다. 늘 그렇지만 보름에 산성 한 바퀴를 돌면서 비는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지요.

신현수 선생님이 압력밥솥을 짊어지고 산에 올라왔습니다. 보름달을 보며 짓는 오곡밥은 반드시 압력밥솥으로 지어야 맛이 난다고. 배낭도 무거운데 한 시간이 넘는 등산길에 끙끙대며 오르는 발길은 가벼워 보였습니다.

금성산성의 성밟기는 남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금성산성의 성밟기는 남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서종규
오후 3:30분, 남문에 도착했습니다. 본격적인 성 밟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6.5km의 성은 거의 복원이 끝난 상태입니다. 내린 눈이 녹지 않아서 미끄러지기 쉬웠습니다. 성 안쪽으로 보이는 산이나 성밖으로 보이는 순창 강천산에 하얀 눈들이 산 능선과 골짝에 가득했습니다.

오후 4:30분, 동문은 지나 가장 높은 금성산성 중 운대봉(603m)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배낭을 풀고 준비해온 음식을 내 놓기 시작했습니다. 장미희 선생님이 찰밥을 한 통 내 놓았습니다. 원래는 보름전날 밤에 지으려고 했는데, 일행들에게 먹이고 싶어서 오전에 지었다는 것입니다.


뭐라고 합니까?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 한다고 그러나요. 모두 덕담 한마디씩 하면서 손바닥에 올려놓은 찰밥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답니다. 반찬으로 준비해온 버섯무침은 찰밥보다 먼저 동이 났습니다.

철마봉에서 내려오는 산성의 모습이 하얀 눈 때문에 더 뚜렷하게 보이죠?
철마봉에서 내려오는 산성의 모습이 하얀 눈 때문에 더 뚜렷하게 보이죠?서종규
우리가 북문을 지나 계곡으로 내려가서 서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올라 철마봉(475m)에 이르니 해는 서쪽하늘로 내려가고 있었지요. 그런데 동쪽하늘엔 하얀 보름달이 이미 고개를 내밀고 있었구요.


우리가 맞은 해넘이와 달맞이는 장엄했습니다. 보통 뒷산 위로 보름달이 떠오르면 시작되었던 동네의 잔치였는데, 우리들은 넘어가는 해와 함께 달을 맞이한 것입니다. 마음에 울려 퍼지는 풍물 소리에 우리들은 그냥 그대로 출렁이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해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지요?
해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지요?서종규

'풀꽃카페 토요산행팀' 일행 15명은 넋이 나간 듯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풀꽃카페 토요산행팀' 일행 15명은 넋이 나간 듯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서종규
산성에서 바라보는 보름달은 동네 누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은 설렘, 아주머니들이 흘려대는 말이 달덩이 같다더니 하얀 볼에서 포동포동한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동네 누나의 고운 살결은 정말 보름달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보름달이 떠오르면 동네 아래에서부터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풍물소리가 마을 중앙을 통과하여, 마을 위에까지 넘어갔습니다. 마을 아래에 있던 유물에서 한 번, 그리고 마을 위에 있는 우물에서 또 한 번, 샘굿을 시작으로 동네의 잔치가 시작된 것이지요.

아, 저 해가 지면 보름달은 더 뚜렷하게 다가오겠지요.
아, 저 해가 지면 보름달은 더 뚜렷하게 다가오겠지요.서종규
오후 6:00, 금성산성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남문에 도착했습니다. 오곡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고집스럽게 짊어지고 온 압력밥솥에 팥을 한 번 끓여 내었습니다. 그리고 찹쌀과 오곡을 적당히 넣고, 다시 버너에 올려놓았습니다. 고집스러운 신현수 선생님은 자신이 찰밥을 지을 테니 염려 말라고 큰소리로 접근을 말렸습니다.

20여분이 지나서 김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압력밥솥의 김구멍이 핑핑 돌면서 찰밥의 냄새가 코끝에 스치기 시작했습니다. 뜸을 들일 때까지 우리는 남문루에서 시끌벅적 떠들었습니다. 원래 소리를 하기로 했던 사람이 등반에 빠지는 바람에 이 사람 저 사람이 한 소절씩 질러댔습니다.

해가 넘어가지 않아서 별로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새 보름달이 고개를 내밀었답니다.
해가 넘어가지 않아서 별로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새 보름달이 고개를 내밀었답니다.서종규
남문로 위로 달님이 더 뚜렷하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젓가락을 들고 모두 몰려들었습니다. 압력밥솥에서 나온 오곡찰밥은 모두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신현수 선생님은 어깨가 들썩거렸습니다. 압력솥의 위력 앞에서 고집스러웠던 자신을 자랑한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오곡찰밥도 사실은 간이 맞지 않았답니다. 소금 치는 것을 잊어 먹어버린 것입니다.

남문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문루인 외남문인데, 성의 곡선이 너무 아름답지요?
남문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문루인 외남문인데, 성의 곡선이 너무 아름답지요?서종규
산 아래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보름달처럼 환한 마음으로 내려왔습니다. 준비한 전등을 켜고 모두 아무 말 없이 내려왔습니다. 보름을 맞아 성밟기를 했지요.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보았지요. 더구나 넘어가는 붉은 태양까지 가슴 가득 채웠으니 어두운 길인들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그런데 신기한 거 있죠. 아래 주차장에 내려오니 달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산 위에서는 떠 있었던 달이 아래에 내려오니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들의 마음엔 그 환한 보름달이 소나무 위에 두둥실 떠 있었답니다.

저 소나무 위에 보름달은 우리의 기상이던가요?
저 소나무 위에 보름달은 우리의 기상이던가요?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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