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책은 어떤 책일까?

[아이들과 함께 책읽기 7] 성한이가 추천하는 김훈의 <칼의 노래>

등록 2006.02.15 17:38수정 2006.02.1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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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이가 추천하는 김훈의 <칼의 노래>

작년 중3 때 독서신문 조장으로 한 학기를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때 독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인터넷서핑을 하던 중 김훈이 펴낸 <칼의 노래>가 베스트셀러로 올라온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당시는 그저 ‘이런 책도 있구나’하며 지나갔지만 올해 들어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이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읽었다. 나는 이를 행운이라고 믿는다.


a <칼의 노래> 책 표지

<칼의 노래> 책 표지 ⓒ 생각의나무

<칼의 노래>는 내가 <해리포터> 다음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단숨에 읽은 책이다.

우선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영웅전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바로 작가가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영웅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시민으로 바라보아 그가 여생을 보내며 가졌던 내적 갈등과 사적인 일들을 상세하게 서술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써내려갔기 때문에 그 생동감을 배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아들 면이 죽은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 면을 칼로 친 왜군 병사가 자기 앞에 있을 때의 심리 상태를 마치 내 아들이 죽었고, 내 아들을 죽인 사람이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절실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들자면 바로 풍경과 전장의 묘사이다. 이 책은 총 40여 장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각 장의 머리 또는 꼬리에 거의 모두 풍경의 묘사가 네다섯 줄 되어있다. 그런 묘사를 볼 때 내 앞에 한 폭의 풍경화가, 아니 어쩔 때는 나 자신이 실제로 그 자리에 서서 ‘다홍으로 염색된 낙엽처럼 붉은 노을로 물들여진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전투 상황도 정말 생동감 있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어둠으로 뒤덮인 것 같은 바다가 정신 차려 보니 적군의 함대가 바다를 층운형의 구름대형으로 깔고 아군의 수영을 향해 전진해오는 것이었다’는 표현을 보았을 때 마치 내가 그 순간 망루에 서서 꾸벅꾸벅 졸며 보초를 서있는 것만 같았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왜적의 총탄을 맞는 그 순간까지 나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때론 내가 전장에 참가해 이순신 바로 옆에서 활을 쏘고 창을 휘두르다 그의 죽음을 엿보는 것만 같았다.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에서 ‘이 사람, 묘사의 지존이구나’라고 자그맣게 속삭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문체가 참 인상적이었다. 보통 한줄, 길어도 한줄 반 좀 덜 되는 간결체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다가 필요할 때 세 줄이 넘는 만연체가 되는 것이 참 독특했다. 이 외에 창의적인 표현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예를 들어,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의 생각과 마음가짐을 읽으며 나는 적지 않은 교훈과 감동을 얻었다. 이순신은 물론 실제로 어떠했을지 몰라도, 이 책에선 생을 허무하게 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질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인생무상이니 공수래공수거니 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결코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끝까지 달음박질쳐 나가야한다는 교훈을 이 책이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었다.


여러 면에서 고마운 책이다. 나의 표현 능력도 늘게 해주고, 하루하루 반복되어가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희망도 불어넣어 주었으니 말이다. 만약 이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 가지 경고할 것은 절대로 속독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주 천천히 정독하며 최대한 글을 음미하라는 것이다. 그래야지 이 책의 가치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 1학년 김성한)


우리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책은 어떤 책일까?

성한이는 내가 만난 아이들 중 스스로 공부를 가장 잘 하는 아이 중 한 명이다. 학원 근처에도 가지 않고 토익 795점, HSK 9급에 피아노도 꽤 잘 친다. 물론 학교 성적도 최상위권이다. 그렇다고 상한이 머리가 비상한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아이들보다 성실히 그리고 꾸준히 스스로 계획을 실천해 나간다. 새로운 것을 하나 배우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결과가 반드시 나타나는 아이이다. 그러므로 성한이가 하는 말과 행동은 믿음이 간다.

성한이는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은 것이 행운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성웅 이순신의 모습보다는 겨레의 영웅인 그에게도 나와 같은 평범한 삶의 모습을 느끼면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데서 성한이는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은 영웅도 나와 다른 먼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지니게 해 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영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따라 나도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의 꿈을 키워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에게 다가서기 위하여 먼저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어른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탄생되는 영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아닐까?

<칼의 노래>는 묘사를 통하여 독자들을 상상 속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성한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가 전장에서 참가하고 있는 듯한 현장감을 몇 번이나 맛보았다고 한다. 문학 작품의 경우 읽어 내려가면 곧 바로 상황이 머리에 그려져야 한다. 읽었지만 무슨 말인지 상상이나 연상이 되질 않으면 아이들은 그 책을 손에서 놓고 만다. 소설의 경우 그 현장감은 긴장과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묘사로 긴장감을 자아내고 그리고 사건을 마무리를 잘 하였다. 이렇게 군더더기 없어 깔끔한 문체도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요소라 볼 수 있다.

또한 독창적이 표현도 우리 아이들은 좋아한다. 아이들은 책에서 읽은 유명 구절을 외워 삶 속에서 녹여 쓰고자 한다. <햄릿>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고 말하듯이 멋진 구절이 하나 둘 있는 것은 책을 읽는 재미를 더 해준다.

이러한 재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교훈도 얻고 스스로의 삶도 깨우친다. 이미 나열되어 있는 권장 도서는 사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대부분 죽은 책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책을 억지로 읽히려고 한다. 욕심이다. 꼭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 있으면 먼저 그 책을 읽고 아이들과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의 공감을 얻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칼의 노래

김훈 지음,
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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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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