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에도 초가집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민속마을을 찾아

등록 2006.02.16 08:46수정 2006.02.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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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사람이 살고 있는 초가집을 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요즈음 사람이 살고 있는 초가집을 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서종규
무엇인가 계속 꼬리를 물고 뒤따르고 있었다. 아니 내 기억의 그림자를 밟고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다가와서 간직하고 싶은,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싶은 나의 소중한 기억을 자꾸 파헤치려고 하고 있다.

그곳에 가서 엄마의 품속 같은 포근함 속을 거닐었다. 그 때는 지붕 위에 무엇을 많이 말려 놓았다. 애호박을 썰어서 펴 널어놓기도 하였다. 아침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조심스럽게 널어놓았다가 해질 무렵에 걷어 왔다. 그런데 사다리를 오르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 요란한 새마을 운동에도 초가집이 잘 보존된 것은 기적입니다.
그 요란한 새마을 운동에도 초가집이 잘 보존된 것은 기적입니다.서종규
곶감을 깎고 남은 껍질도 널어 말렸다. 껍질이 말라갈 즈음엔 달짝지근한 맛에 이끌리어 몰래 지붕 위에까지 서리하러 간다. 눈치를 살살 보며 사다리를 지붕에 대고 잽싸게 올라간다. 사다리 아래에서 멍멍이가 난리다. 그것도 엄마에게 들키는 날에는 혼쭐나니, 멍멍이를 잘 구슬려야 한다.

지붕의 썩은 짚들을 잘못 밟으면 쑥 빠졌다. 비틀하는 몸을 가까스로 바로잡고 바짝 긴장하여 사다리에 달라붙어서 내려 왔다. 그런데 한 겨울이 지나면 썩은 짚들로 뒤덮여 있던 지붕이 새 옷을 입는다. 아주 예쁜 새신랑 머리 같이 된다.

저 골목 어디에서 어머니께서 마중 나오실 것 같죠?
저 골목 어디에서 어머니께서 마중 나오실 것 같죠?서종규
새지붕이 되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지붕에 올라가 뒹굴고 싶은 것이다. 올라가 뒹굴다가 잠이라도 들면 새가 되어 날아갈 것이다. 참새가 깃들었던 처마 밑 새집에서 솟아 나와 푸른 하늘로 훨훨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를 것이다.

그러나 지붕 위에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만약 고약한 잠버릇 때문에 나돌다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붕 위에 누워 있다가 엄마께라도 들키고 나면 감당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늘 올라가 누워보고 싶은 지붕이었지만 지붕 위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 나갔던 초가집이다.

요즈음 웰빙시대라고 시래기 된장국이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어요.
요즈음 웰빙시대라고 시래기 된장국이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어요.서종규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모든 꿈은 사라졌다. 새마을 운동은 초가집을 없애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효과가 만점인 것이다. 초가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붉은 색, 파란 색 온통 시골 마을은 색색이 요란한 지붕들로 변하였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자.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가꾸세.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새마을 운동> 노래 중에서

그래, 초가집을 없애는 것이 새마을 운동이었다. 석면이 주는 재앙도 모른 채 모두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향을 잃어 버렸다. 모두 서울로 몰려들어 잘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찾아 몸부림쳤다. 부자마을을 만들자던 동네 스피커의 울림을 환청으로 들으면서.


보름이 지나면 손 없는 날 저 장독대에 장을 담그겠지요.
보름이 지나면 손 없는 날 저 장독대에 장을 담그겠지요.서종규
보름을 이틀 앞 둔 2월 10일(금) 오후, 초가집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민속마을을 찾았다. 낙안읍성은 마한의 옛터로서 백제의 파지성, 고려 태조 때 낙안군으로 개칭되면서 이어져 내려온 고을이었다. 조선 태조 때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토성을 쌓았고,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석성으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낙안읍성의 특징은 관청과 민가가 성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한 때는 객사의 터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거의 방치되었으나 정비가 이루어져 동헌, 객사 등이 되살려졌고, 중요 민속 가옥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는 초가집들이 많다. 대부분이 초가집들이다. 그 요란한 새마을 운동에도 잘 보존된 것은 기적이다.

누구나 추억을 만나면 동심으로 돌아가는가 봐요.
누구나 추억을 만나면 동심으로 돌아가는가 봐요.서종규
성곽도 온전하게 복원되어 1.4km의 성곽을 한 밟는데 많은 시간이 들지 않는다. 성문도 낙풍루인 동문, 서문, 쌍천루인 남문 등이 있으며, 신문고 역할을 하였다는 낙민루, 임경업 장군의 비각, 연자방아간, 물레방아 등 민속자료들이 많다.

특히 낙안읍성이 소중한 것은 많은 100여 가구의 초가집에서 사람들이 직접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전래의 토속적인 민속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고, 세시풍속과 의례 등 전통생활문화 양식을 간직해오고 있는 주민들이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민박을 하면서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따뜻한 구들장에서 말이다.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엔 100여 가구의 초가집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네요.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엔 100여 가구의 초가집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네요.서종규
보름을 대비하여 달집을 세워 놓고 있었다. 달집에는 수많은 쪽지들이 꽂혀있었는데, 이 쪽지들에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적어 놓은 각종 소망들이 가득하였다. 달집을 태우면서 타오르는 이 소망의 쪽지들이 모든 사람들의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낙안읍성에 들어서자 마음이 평안해 졌다. 그냥 차분하여 졌다.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지붕과 지붕이 이어져 있는 초가집이 말끔하게 새로 지붕을 얹었다. 골목은 그대로 수많은 세월을 간직한 돌담의 돌에 이끼가 끼어 있었다.

샘에 있어야 할 바가지가 처마 밑에서 그대로 썩어가네요.
샘에 있어야 할 바가지가 처마 밑에서 그대로 썩어가네요.서종규
처마 밑엔 아직도 시래기 말림이 그대로 걸려 있었고, 보름이 지나야 시작되는 메주도 주렁주렁 걸렸다. 지난 가을에 수확한 바가지가 처마 밑에 그래도 걸려 있었고, 마루 밑엔 가지런하게 쌓아 놓은 장작들이 보기에 좋았다.

동헌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사또와 이방, 그리고 사령, 사또 앞에 꿇어 있는 죄인, 모두 재미있는 형상이었다. 그런데 사또 앞에 꿇어 있는 죄인의 얼굴이 너무나 처량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동헌에서 사또에게 심문받는 죄인의 표정을 보면 분명 죄가 없는 것 같은데
동헌에서 사또에게 심문받는 죄인의 표정을 보면 분명 죄가 없는 것 같은데서종규
성곽을 따라 한 바퀴 성밟기를 하였다. 남문 밖 논에는 푸른 보리들이 자라고 있었다. 둥근 초가지붕에 푸른 보리밭은 더욱 마음을 평화롭게 하여 주었다. 초가집과 보리밭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렜다.

그 보리밭, 보리밭 가득 갈가마귀떼들이 날아들기 시작하면 고무신을 두 손에 쥐고 쫓아나 날려보냈던 어린 시절, 신발을 신고 뛰다가는 어느새 벗겨진 신발을 찾지 못하고, 밤이 되어도 집에도 들어가지 못해 문 밖에 서성거렸던 기억, 그래도 하루 종일 뛰어 다닌 다리는 저녁밥도 다 넘기기 전에 쓰러져 잠자리에 들었던 따뜻한 구들장의 아랫목.

그 보리밭 가득 갈가마귀떼들이 날아들기 시작하면 고무신을 두 손에 쥐고 쫓아 보냈던 어린 시절.
그 보리밭 가득 갈가마귀떼들이 날아들기 시작하면 고무신을 두 손에 쥐고 쫓아 보냈던 어린 시절.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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