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자 탈세 방지'가 공염불인 까닭

[세금논쟁 ⑨] 국세청의 계획이 실현될 수 있을까?

등록 2006.02.17 14:24수정 2006.02.21 17:55
0
원고료로 응원
최근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의 탈세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들의 탈세를 효과적으로 막는 방법이 없을까?'

언뜻 생각나는 것은 국세청이 열심히 세무조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두 가지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국세청 세무조사 인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고소득 전문직 세무조사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세무조사 기법 및 국세청의 정보망 수준에 비추어 세무조사를 하더라도 탈세를 제대로 적발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결과, 국세청직원과 납세자간의 협상을 통하여 추징세액이 결정되는 방향으로 세무조사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국세청직원은 서류를 샅샅이 뒤져야 하는 고생을 하지 않아서 좋고, 납세자는 탈세액의 일부만 내놓아도 되니까 좋고. 이런 세무조사 결과에 대하여 '잘못을 저지른 대가'라고 승복할 납세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재수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깨지지 않는 한 세무조사의 탈세 예방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납세자들에게 '탈세하면 반드시 걸린다'는 의식이 심어져야 한다. 선진국 국민이 좀처럼 탈세를 하지 않는 이유는 선진적인 납세의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촘촘히 짜여진 국세청 정보망과 수준 높은 세무조사 기법으로 인하여 탈세의 대부분을 적발해내기 때문이다.

최근, 국세청이 고소득전문직과 자영업자의 5년간 재산변동 상황을 개인별로 관리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세무조사의 기법을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진작 시행했어야 할 조치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세청 정보망 수준을 고려할 때 그 실효성에 대하여는 의문이 든다.

국세청의 계획이 정치권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될 수도


a

ⓒ 오마이뉴스 한은희

특정인이 벌어들인 소득은 일차적으로 소비로 지출되고, 나머지는 재산으로 증식된다. 지금까지 국세청은 주로 ①소득발생 관련 자료를 이용하여 탈세 여부를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②재산변동 자료를 탈세 여부를 판단하는데 추가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인이 지난 1년간 신고한 소득은 5천만원인데 재산이 1억원 늘었다면 이는 탈세 혐의가 매우 짙은 것이다.

국세청의 이러한 계획이 현실화되려면 두 가지 과제가 먼저 선결되어야 한다.


현재, 국세청이 특정인의 금융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이 매우 한정되어 있는데, 이를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개정되어야 한다. 자금세탁방지법에는 국세청이 조세범칙사건에 한하여 금융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과세자료제출법에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조세탈루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금융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결국 국세청의 계획대로 고소득 전문직 및 자영업자의 재산변동 상황을 상시적으로 체크하기 위해서는 위의 두 법률이 개정되어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다. 보수진영 및 금융자산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돈이 제도금융권을 빠져나가 금융시장 혼란이 초래된다’는 협박론이 대두될 것이고, 이에 국민이 현혹된다면 없던 얘기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국세청에게는 훌륭한 핑계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를 방지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런데, 정치권의 비협조로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니 어쩌란 말이냐?"

국세청의 계획이 여론무마용 '정치권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편, 위 법률이 국세청의 계획에 맞게 개정되었다고 하더라도 관행화된 차명거래를 막지 못하면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개인의 재산은 크게 부동산, 예적금, 유가증권으로 구성될 것이다. 부동산의 경우는 부동산실명법 시행으로 차명거래가 상당부분 근절되었다. 그런데, 예적금 및 주식 거래가 문제이다. 현행 법률과 판례 하에서는 얼마든지 차명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적발할 것인가?

홍길동은 최근 송사(訟事)에 휘말려 변호사 수임료를 500만원 지급해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 탈세를 언론을 통하여 자주 접한 홍길동은 500만원을 지급하면서 현금영수증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사무장은 현금영수증을 받으려면 부가가치세 50만원을 추가로 내야한다고 한다. 한푼이 아까운 홍길동은 현금영수증을 안받고 500만원을 지급했다. 사무장은 이를 변호사 친구 명의의 차명계좌에 입금시켰다.

차명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들

1. 금융실명법을 개정해야 한다.

흔히 금융실명법이 차명거래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금융실명법이 가명거래를 막을 수는 있지만, 차명거래를 막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또한, 현재의 대법원 판례는 금융자산의 명의신탁 효력을 강하게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A가 B의 이름을 빌려 예금거래를 한 경우, 실소유자인 A가 B에 예금 반환을 청구한 경우 B는 A에게 예금을 돌려주도록 판결하고 있는 것이다.

차명거래를 금지하고 금융자산의 명의신탁 효력을 무효로 하는 방향으로 금융실명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 경우, A가 B에게 명의신탁을 근거로 예금 반환을 요구하지 못하며 요구하더라도 B가 거절하면 A로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리스크로 인해 차명거래를 꺼릴 것이다.

재경부에서는 금융실명법에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조항을 만들더라도 은행직원이 일일이 실명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금융실명법을 개정하자는 취지는 은행직원에게 실명확인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차명거래를 막자는게 아니라, 명의신탁 효력을 무효로 함으로써 실소유자에게 차명거래의 리스크를 안도록 하여 차명거래를 방지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은행직원 문제가 끼어드나?

일부 법률전문가는 금융실명법에 명의신탁 효력을 무효로 하더라도 민법상 부당이익반환 청구를 할 수 있으므로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차명거래가 적발된 경우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한다면 차명거래 방지의 효과가 있다. 부당이익반환을 청구하려면 실소유자 본인이 차명거래를 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경우 과징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2. 금융소득종합과세를 강화해야

금융소득종합과세가 강화된다면 차명거래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예금이자에 대한 소득세 납세의무가 원천징수로 끝나게 된다면 예금 명의를 빌려줘도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차명거래가 큰 제약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예금이자가 종합과세 대상이 된다면 예금명의자의 이자소득과 다른 소득(근로소득 또는 사업소득)이 합산되어 소득세가 계산되기 때문에 불이익이 따를 가능성이 많으므로 명의를 빌려주기 꺼리게 된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개인 기준으로 금융소득이 4000만원 이상(부부합산 기준으로 8000만원)인 경우이다. 지금의 금리를 고려할 때 개인 기준으로 평균 8억원 정도는 보유해야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될 자격(?)이 있다. 지나치게 높은 기준으로 대상자수는 1만9천명에 불과하여 거의 실효성을 잃은 상태이다. 이를 대폭 강화함으로써 형평성과 차명거래 방지기능을 제고해야 한다.

3. 상장주식 거래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

현재 대주주를 제외한 개인투자자의 상장주식 거래로 인한 이익에 대하여는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개인투자자의 주식 거래 내역과 주식보유현황에 대하여 국세청이 파악하고 있지 못하며, 이를 틈타 주식시장이 자금세탁, 탈세 등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들 개인투자자의 주식거래규모는 거래량 기준으로는 전체의 80% 이상, 거래액 기준으로는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상장주식 거래의 투명성에 큰 구멍이 생긴 것이다. 이 구멍을 메꾸지 않고 고소득 자영업자의 재산변동 상황을 파악하겠다고 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 독을 채우겠다는 것과 같다.

자신신고제도 한계 극복하려면 국세청 전산망에 모든 정보 집약돼야

국세청은 전문직의 탈세를 방지하는 대책으로서 변호사 등이 보고하는 수임료의 내용을 세분화하겠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는 보고 내용을 복잡하게 하면 거짓말을 하기가 복잡해지고 그러면 아무래도 거짓말과 탈세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기대에 의한 대책으로 보인다.

국세청의 기대가 얼마나 효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자진신고에 의존하는 국세행정을 탈피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대책이 못되는 것은 분명하다. 복잡한 거짓말도 잘하는 사람은 여전히 탈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경우는 자진신고에 의존하지 않고 국세청이 개별 납세자의 소득과 납부할 세금을 미리 결정하여 통보한다. 이는 국세청 정보망이 각 개인의 거래와 재산보유 현황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강심장은 없을 것이다. 미국의 국세청 정보망 역시 촘촘히 짜여져 있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내가 나를 아는 것 보다 국가가 나를 더 잘 안다’는 격언까지 나왔을까?

진정으로 탈세 없는 투명한 사회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발가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나의 거래정보는 베일 속에 계속 숨도록 하고 추상적인 개념의 고소득 자영업자만 발가벗기라는 주장은, ‘내 정보는 프라이버시, 남의 정보는 투명성’의 이중 잣대로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기능을 강화하여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를 방지하는 것이 생각만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금융거래정보를 비롯한 각종 거래 정보가 국세청 전산망과 연결되도록 법과 제도가 정비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진보는 투명성과 탈세방지를 주장할 것이고, 보수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주장할 것이다.

'국세청이 열심히 뛰면 탈세문제는 다 해결될 것'이라고 편안하게 생각했던 국민들에게는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조세정의와 복지국가를 원한다면 귀를 세우고 논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4. 4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