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70회

등록 2006.02.17 08:13수정 2006.02.1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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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원장이 원을 몰아내고 대명을 세운 것에 박수갈채를 보냈다고 했다. 가난한 자, 헐벗고 굶주림에 지친 자, 한 뙈기의 땅에 의지해 입에 풀칠을 하고 사는 농민들을 위한 나라를 만들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라 했다.

하나 함께 전장을 누볐던 동료들까지도 서슴없이 베었던 주원장에 실망한 그는 자신이 꿈꾸는 나라를 세우기로 마음먹었고,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주원장을 몰아낼 수 있는 세력이 있다면 그 어디와도 손을 잡았고, 스스로 역시 그러한 조직에 가입했다고도 했다.


모든 사실이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천동의 광세기연을 얻은 자는 모용화천이었다. 그는 천동의 무학을 얻고는 오랜 기간동안 그가 꿈꾸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준비해왔을 것이다. 그 저변에는 자신이 황족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자부심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무림을 지켰던 천동이 한 인물에 의해 무림과 중원을 지배하려는 야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는 백련교와 천지회, 중원의 무림문파와 세가들, 그리고 황실에 까지 자신의 조직을 심으면서 만반의 준비를 해왔을 것이다.

“그렇군. 그러고 보니 이제 마지막 조각까지 맞추어지는군.”

백결은 고개를 끄떡였다. 백결은 백련교 뿐 아니라 천지회에도 몸을 담았던 인물이다. 그 이상한 기류를 파헤치기 위해 움직였던 인물이다. 그의 뇌리로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천지회 내부에서 일어났던 의문의 살인사건과 유곡의 축출. 백련교 내부에서 일고 있는 음모와 형제간의 대한 배신. 그리고 황실 내에서 은밀히 움직이던 역모(逆謀)의 움직임. 모용수의 배신.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발작적으로 괴소를 터트렸다.


“크큿..... 그랬어..... 그 동안 무수한 위험을 겪으면서 알게 된 천교(天敎)의 존재...... 그 천교가 바로 천동의 다른 모습이었군.”

“무슨 말이오?”


“그 동안 나는 천지회나 백련교 내에서 일고 있는 이상기류에 대해 그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노력해 왔네. 그리고 은밀하게 그러한 모든 조직을 장악하고 이용하는 하나의 비밀단체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 그것이 천교였네. 그리고 그 천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 모용화천임을 알게 되었네. 사실 나만큼 그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 걸세. 나는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모르는 척 했다네. 천교에 파고들기 위해서 그들의 뜻대로 움직였지.”

처음에는 그것이 백련교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달탄의 태사(太師) 아로태(阿魯台)와 만났다네. 중원을 위해서는 할 짓이 아니었지만 그들을 중원에 끌어들임으로서 현 주씨 황실을 흔들고 거병하려는 계획이었지. 솔직히 달탄을 다녀오는 사신 일행을 죽인 원흉이 나라네.”

달탄을 준동시켜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백련교의 봉기가 쉬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백련교의 조직으로는 손쓸 수 없는 어려운 일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찾고자 했던 비밀조직이었다. 그는 오히려 그 비밀조직에 파고들려 노력했다.

“그들은 나를 받아들이는 듯 했네. 하지만 나를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는지 모르지. 아니면 이제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하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네. 전월헌을 시켜 나를 제거하려 했던 것이네.”

“그렇다면 강중장군이 죽어가면서 남기려 했던 천(天)의 의미란 것이 천교, 아니 천동의 존재란 말이오?”

“그럴 것이네. 강중장군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 아니 어쩌면 자네의 부친 역시 천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네. 그렇지 않았다면 균대위에서 그토록 모용화천을 죽이려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네.”

당시만 해도 가장 완벽한 정보망을 가진 곳이 균대위였다. 그렇다면 균대위의 수장인 부친은 완전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 않았을까?

“자네 이제는 괜찮겠는가?”

말을 하면서도 운공을 하고 있는 담천의를 보고 묻더니 갑자기 백결이 몸을 일으켰다. 한꺼번에 그 동안의 비밀이 풀리자 마음이 급해졌던 것이다.

“이럴 시간이 없네. 한시 바삐 이곳을 빠져나가세.”

허나 담천의는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서두르는 백결과는 달리 담천의는 여전히 가부좌를 풀지 않았다.

“이곳이 천동이라면... 그리고 모용화천이 천동의 주인이라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를 순순히 나가게 해 주겠소?”

무슨 뜻일까? 그 때였다. 그들 가까이서 아주 듣기 편안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는 정말 똑똑한 젊은이군.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네.”

허나 그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갑자기 늘어져 있던 천과 깃발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접혀 올라가기 시작했다.

파다다닥--- 휘리릭-----!

그것은 내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접혀 올라갔는데 언제 그런 것들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더구나 그 천들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이십여 명이 넘는 금색면구를 쓴 인물들이 서 있었고, 백결과 담천의의 앞에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두 노인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 노인은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노인이었다. 허옇게 센 머리는 위로 틀어 묶었고 가슴까지 늘어진 허연 수염과 귀밑까지 늘어진 백미(白眉)만으로도 신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검버섯이 피어있어 매우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아직까지 혈색이 불그레한 것이 매우 건강해 보였다.

또 한 노인은 머리가 윤이 나도록 민 둥근 얼굴의 노인이었다. 반질반질한 정수리에는 아홉 개의 계인(戒印)이 찍혀있어 불문에 든 인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두 노인 모두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가운데 감히 마주보기 어려운 위엄이 물씬 흘러나왔다.

“자네 말대로 보기와는 달리 확실히 똑똑한 것 같군.”

계인이 찍혀있는 노인의 말은 아주 자연스러웠지만 담천의와 백결의 귀에는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웬만한 고수라도 견디기 힘들 정도의 심후한 공력이 담겨있었다. 자칫하면 내부의 진기가 흐트러질 법한 것이었는데 아마 한번쯤 담천의와 백결을 시험하는 듯 했다.

“.............?”

노인의 얼굴에 미세하나마 의외라는 기색이 스쳤다. 백결의 얼굴은 잠시 찌푸려졌지만 담천의의 얼굴에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백결과는 달리 담천의에게는 공력을 실은 자신의 음성이 저항을 받지 않고 물이 모래에 스며들 듯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계인이 박혀있는 노인이 선풍도골의 노인을 바라보며 대견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송(朽松)... 정말 놀라운 일이군.”

후송(朽松)이란 ‘썩은 소나무’란 뜻이다. 세상에 별의 별 명호가 많다지만 후송이라니..... 그 명호를 가진 사람이 미쳤거나, 아니면 그 명호를 부르는 사람이 상대를 지독히 멸시하거나 조롱하는 의미가 아니라면 이런 명호를 가지고 있지 못할 일이었다. 더구나 세속을 벗어난 듯이 보이는 선풍도골의 노인에게 후송이라니.....

사실 사람의 외모란, 더구나 나이를 먹은 후의 외모란 그 인물이 살아 온 인생을 반추(反芻)하게 하는 거울과 같다.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외모의 미추(美醜)와 상관없이 연륜으로 인해 그어지는 흔적은 그가 살아 온 인생을 대충이나마 알게 하는 것이다.

허나 정작 선풍도골의 노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과거에는 아주 고상하고 화려한 명호를 사용한 적도 많지만 이제는 그것 이외에는 다른 것으로 자신을 부를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광와(狂蛙)... 자네도 생각해 보게. 호부(虎父)에 어찌 견자(犬子)가 있겠는가? 저 아이는 지 부친을 매우 닮았군.”

광와(狂蛙)란 명호 역시 괴이쩍었다. ‘미친 개구리’라니..... 득도한 고승처럼 보이는 노인에게 광와란 명호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헌데 후송이란 노인의 말을 들은 담천의는 급히 가부좌를 풀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두 노인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두 분 노인장께서는 뉘신지요?”

(제 87 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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