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권을 시민에게 돌려드립니다"

[정치 톺아보기 120] 민주당 광주시당 '시민공천' 실험, 성공할까

등록 2006.02.22 18:46수정 2006.02.26 15:07
0
원고료로 응원
a 지난 10일 전남 구례에서 열린 '민주당 2006년 5·31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및 주요당직자 워크샵' 대회. 이날 행사가 끝난 뒤에 가진 뒤풀이에서 공천개혁에 반대하는 일부 당원들이 유종필 위원장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도 아예 '심판'을 시민에게 맡기는 '공천개혁'의 승부수를 던지게 한 요인이다.

지난 10일 전남 구례에서 열린 '민주당 2006년 5·31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및 주요당직자 워크샵' 대회. 이날 행사가 끝난 뒤에 가진 뒤풀이에서 공천개혁에 반대하는 일부 당원들이 유종필 위원장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도 아예 '심판'을 시민에게 맡기는 '공천개혁'의 승부수를 던지게 한 요인이다. ⓒ 민주당


"이제 공천권을 시민에게 돌려드립니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광주광역시당(유종필 위원장)의 공천개혁 실험이 정치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민주당 광주시당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민배심원단의 후보검증에 의한 시민공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유종필 위원장은 지난 14일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 "시당과 지역운영위원장, 중앙당의 권한을 축소하고 시민들의 참여의 폭을 확대하는 '시민공천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해 정치권의 관심을 끌었다.

이어 민주당 광주시당은 20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시민공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시민공청회를 갖고 투명하고 깨끗한 공천을 바라는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했다.

전국 유일 '시민배심원단의 후보검증에 의한 시민공천제' 추진

a 유종필 민주당 광주광역시당위원장은 이 지역 지방선거 후보 공천심사에서 정당선거 사상 처음으로 '시민배심원제' 도입을 추진중이다.

유종필 민주당 광주광역시당위원장은 이 지역 지방선거 후보 공천심사에서 정당선거 사상 처음으로 '시민배심원제' 도입을 추진중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날 정창교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수석전문위원이 발제한 '시민공천제'의 요체는 '시민배심원단'에 의한 후보 사전검증과 후보를 결정하는 공천심사특별위에 외부 인사를 절반 이상 참여시키는 것이다.

'시민공천제'의 뿌리는 2002년 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정당 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국민참여 경선제'이다. 정창교 전문위원은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정세분석실 국장으로서 '국민참여 경선제'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당시 노무현 국민경선후보의 대변인이었던 유종필 위원장도 "시민배심원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정창교 위원이 내게 민주당에서 한번 '시범사업'으로 해보라고 던진 것을 내가 시당위원장이 되어서 채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2002년의 대선에서의 '흥행대박'을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번 성공해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참여 경선은 국민적 관심이 큰 대선후보나 광역단체장의 경우에는 성공가능성이 높지만 유권자 입장에서 별다른 정보가 없는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 후보 선출과정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각 정당이 지역을 대표하는 자질있고 능력있는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가장 큰 전제는 후보자와 유권자의 상호소통인데 우리나라는 사전선거운동 제한 등 규제위주의 선거법으로 이러한 상호소통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각 정당이 공천에 당원뿐만 아니라 국민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실시하는 여론조사 경선도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후보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 현역의원이나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조사결과에서 높은 지지도를 얻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 광주광역시당이 '더피플'에 의뢰한 여론조사(표본 738명, 오차범위 - 신뢰구간 95%± 3.61)에 따르면 구청장 출마자에 대해서 이름과 경력 등을 인지하고 있는 유권자는 13.8%, 시의원 출마자의 경우는 13.1%, 구의원 출마자의 경우는 9.6%에 불과했다.

정 위원이 이러한 여론조사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시민배심원단제'의 도입이다.

국민참여·여론조사 경선의 한계를 넘어서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미국의 재판에서 판사는 공정한 재판의 주재자이며, 평결은 배심원이 하게 되어 있다. 배심원들은 그 지역 주민의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로 사전에 몇 배수 이상의 풀(pool)이 형성되어 있다. 실제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들은 이들 가운데 철저한 보안 속에 선정되어 재판 내내 외부와 격리된 상태에서 심리에 참여하게 된다.

결국 '시민배심원단제'는 미국식 배심원제를 공천심사에 활용해 판사에 해당하는 시당 위원장은 공정한 공천심사를 주재만 하고, 결정은 시민배심원단이 주도하도록 한 것이다. 시민배심원단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을 공천과정에 도입하려면 우선, 시민배심원단 공모 사업을 광범위하게 진행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지난 2002년 국민참여 경선 때처럼 지방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예를 들면 한 선거구에 시민배심원단 공모에 1천명이 참여했다면 그 중에서 성·연령·지역별 비율에 따라 20명 정도를 추첨으로 선정한다. 최소 단위인 기초의원 선거구를 20명으로 하면 광역의원 선거구는 40명, 기초단체장 선거구는 80명 등으로 선정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례대표 기초의원 선정단에도 이러한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

선정된 시민배심원단은 후보자들이 연줄이나 돈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심사 당일에 명단을 확정하는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후보자 청문회에 참여하게 한다. 청문회는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되며 시민배심원단은 공직후보자 심사특위 산하기구로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구체적인 평점을 공개한다.

문제는 정당 사상 처음 도입하는 제도이기에 시민배심원단을 공모해 선정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공정이 까다로운 만큼 품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유종필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후보를 사실상 결정하는 공천심사특위를 13명 이하로 구성하고 외부인사 7명을 포함시키되 위원장은 외부인사에게 맡기기로 했다"면서 "시민배심원단제는 기술적 공정을 보완해 이번 선거에서 최초로 반드시 도입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시민단체의 압력과 높은 정치의식이 공천개혁 견인

a 지난 1월 21일 부산시의회가 2인 선거구안을 기습 통과시키자 시민단체 회원이 '상식이하의 선거구제 개편'을 규탄하는 플래카드를 펼쳐보이고 있다.

지난 1월 21일 부산시의회가 2인 선거구안을 기습 통과시키자 시민단체 회원이 '상식이하의 선거구제 개편'을 규탄하는 플래카드를 펼쳐보이고 있다. ⓒ 김보성

민주당 광주시당은 왜 이처럼 복잡하고 품이 많이 가는 시민배심원단제를 도입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 배경은 ▲시민단체의 압력과 광주시민의 높은 정치의식 ▲열린우리당과의 치열한 경쟁에 따른 위기의식 ▲공천후유증의 최소화 방안으로 요약된다.

우선 민주당 광주시당은 기초의원 선거의 경우, 유능한 신진 정치세력의 기초의회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한 선거구에서 2∼4인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의 도입 취지를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켜낸 모범사례로 꼽힌다.

물론 광주시의회 내에서도 4인 선거구의 분할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참여자치21 등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잇따라 성명를 발표하는 등 분할 움직임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19명의 광역의원 중 12명을 점유한 민주당이 원안 유지 당론을 결정해 분할을 막을 수 있었다.

'시민공천제' 또한 당원 중심의 하향식 공천으로는 더 이상 광주시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자성에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광주 시민사회에서는 시민배심원단제 대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선거'라는 시대 흐름을 반영하려는 노력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민주당의 위기의식도 시민공천제을 견인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민주당은 광주-전남 모두 정당지지도에서 열린우리당을 앞서고 전북 일부지역(고창, 부안, 남원, 임실 등)에서는 접전을 이루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광주지역의 경우,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고정되어 있는 반면에 민주당 지지도는 다소 우세한 가운데서도 부동층의 낙폭과 연계돼 있는 '불안한 우위'이다.

지난 13일 CBS의 광주지역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도 26.6%, 열린우리당 20.5%로 민주당이 6.1%포인트 차이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말 CBS 2차조사 때의 약 8%포인트보다는 좁혀진 것이다(반면에 전남지역은 민주당 지지도 34.2%, 열린우리당 15.8%로 민주당이 곱절 이상 앞섰다).

이에 대해 정창교 위원은 "부동층이 열린우리당 지지로 가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민주당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이라며 "열린우리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모습을 지켜보며 관망하고 있는 것이 광주의 정서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Let's go 시민 속으로!'... 다른 당·지역에도 전파

a 광주지역 정당지지도

광주지역 정당지지도 ⓒ CBS

'박빙의 승부'에서는 공천 불복 등 사소한 시비거리 하나가 승부를 가른다. '시민배심원단제에 의한 후보검증 및 시민공천제'는 정당 중심의 밀실공천에 따른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이미 민주당 전남도당과 열린우리당 광주시당에도 전파되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박주선 민주당 전남도지사 예비후보(전 국회의원)는 이미 "민주당 광주시당이 추진하고 있는 '시민배심원단에 의한 검증' 후 '시민 공천'에 대해 찬성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박 후보는 "현재 공직후보 선출방식은 선거운동이 제한된 현행 선거법상의 한계로 유권자들이 미처 후보를 알지 못하고, 충분한 검증 절차 없이 후보를 결정하게 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한편 민주당이 '시민배심원단제' 도입을 추진하자 열린우리당 광주시당도 지난 21일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후보를 경선을 통해 뽑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자격검증 등 최종 후보 선정은 사실상 위원회에서 하게 될 것"이라며 시민참여 공천경쟁에 합류했다.

열린우리당은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기초의원 후보를 사실상 최종 결정하는 공직후보자 자격심사위원회를 10명 이상 20명 이하로 구성하기로 하고 이 가운데 외부인사를 3분의 1 이상 포함시키기로 했다.

양당이 이처럼 공천단계부터 '시민공천' 경쟁을 벌이는 데는 정당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

시민참여공천 도입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신현구 민주당 광주 서구청장 예비후보(광주서구 운영위원장)는 "전남지역과 달리 광주지역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기 때문에 공천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것이 승부처가 될 수 있다"면서 "시민에게 공천권을 주는 것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당의 입장에서는 객관성을 높여 공천 후유증을 막는 좋은 장치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시민참여 공천으로 공천불복 등 후유증 막는다

지난 10일 전남 구례에서 열린 '민주당 2006년 5·31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및 주요당직자 워크샵' 행사가 끝난 뒤에 가진 뒤풀이에서 공천개혁에 반대하는 일부 당원들이 유종필 위원장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도 '심판'을 시민에게 맡기는 공천개혁의 승부수를 던지게 한 요인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시민배심원단제에 의한 후보검증 및 시민공천제'를 실험하는 민주당 광주광역시당의 5·31 지방선거 캐치프레이즈는 'Let's go 시민 속으로!'이다. 광주의 공천개혁 실험이 2002년 국민참여 경선 때처럼 '흥행대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기대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