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의 인물들은 동시대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거세된 대신, 유사 어른의 모습으로 솔직한 욕망의 판타지를 대변한다.iMBC
<궁>의 매력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키워드는 '퓨전'이다. 처음부터 이 작품의 장르나 색깔을 하나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21세기를 배경으로 한 황실스토리라는 점에서는 퓨전시대극, 엽기 발랄한 여주인공의 좌충우돌 모험담에선 학원코믹물, 왕위계승을 둘러싼 갈등구도에서는 음모와 암투의 궁중사극, 주인공 네 사람의 엇갈린 사각관계와 신데렐라 스토리에서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느낌을 풍기기 때문.
<궁>의 원작이 자유로운 상상력을 모태로 하는 만화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얼핏 보면 그저 유치찬란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할 욕망을 자유분방한 상상의 힘을 통해서나마 대리만족하고자 하는 인간의 표현 욕구가 숨어있다. 이 황당한 가상의 세계 속에서는 처음부터 '좌우당간'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
주인공 채경은 황실과의 정략결혼을 통해 일약 신분상승의 판타지를 이루는 전형적인 신데렐라다. 원치 않는 정략결혼에 희생당하는 것처럼 보이고 귀여움과 천진무구함으로 미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황태자비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얻은 부와 명예를 만끽하려는 현실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황태자 신(주지훈)은 요즘 트렌디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싸가지 없는 왕자'의 전형이다. 그러나 용서가 되는 것은 그가 말 그대로 '진짜 왕자'이기 때문이다. 극중 대사에서도 나오듯 재벌 2세나 상류계층이 '진골'이라면, 신은 '성골'이다. 이신은 진골조차도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성골로서 왕자병이나 이유 없는 반항조차 일종의 특권처럼 자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지나치게 '만화적인' 느낌을 주는 장면은 사라지기도
<궁>의 등장인물들은 분명 청춘의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10대 선남선녀들이지만, 이들에게서 동시대의 현실적인 고뇌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황태자와 황태자비라는 예정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신과 채경, 역시 상류층인 율(김정훈)과 효린(송지효)에게 그 시기 청춘들이 의례 겪을 법한 소소하고 일상적인 성장통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어른의 얼굴과 생각을 품은 채 왕위계승을 둘러싼 음모와 암투, 엇갈린 애증으로 둘러싸인 사각관계에 더 집중한다. 성인과 미성년, 친구와 연인의 경계선에 서 있는 10대 커플 신과 채경의 밀고 당기는 연애담이 십대들의 결혼에 관한 성적 판타지를 부채질한다면,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빼앗아서라도 되찾아오겠다는 야심에 불타는 율과 효린은 젊은 세대의 현실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이처럼 <궁>의 근간은 원작 만화가 지니고 있던 장점들에 십분 기대고 있다. 다만 부분적인 각색은 있다. 원작에서 존재하던 코믹한 감초 공내시가 드라마에선 근엄한 공내관으로 바뀌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던 채경의 할아버지가 드라마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또 일부 주·조연급 캐릭터의 역할이나 비중이 변경되었고 주인공인 신과 채경의 수학여행이나 학교 축제, 합방 장면 등 과장된 신경전이나 소동극으로 지나치게 '만화적인' 느낌을 주는 장면들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구성과 캐릭터, 에피소드를 통틀어 원작의 흐름과 분위기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의 전통미에 대한 현대적 재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