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은 참나무가 최고지요. 숯까지 남기니 참나무인가 봅니다. 그 다음 주로 소나무를 땠는데 타고 나면 재가 많습니다. 그대도 직접 패놓은 것은 가져가지 못했답니다.sigoli 고향
이르게 난로를 놓고 5월초까지 끼고 살았다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는 산을 헤매 발로 툭 차 그루터기가 쏙 뽑히는 장작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생고생을 했던가. 집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장작을 만에 하나 축냈다가는 호된 꾸지람을 듣곤 했으니 까까머리 학생이 손수 마련하는 게 당연했다.
그 시절 아버지는 무얼 하셨기에 우리가 그 일을 했느냐고 의문이 들겠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에서 땔 나무를 하고 길쌈하고 복조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리 학교는 다른 지역 학교처럼 소사 아저씨가 저학년이라고 따로 장작을 마련해 놓지도 않았다.
지리 공부를 좀 한 사람이면 참 희한하고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화순하면 남부 지방에서 무연탄을 꽤나 생산하는 큰 탄광이 있었는데 왜 너희들은 연탄이나 조개탄, 갈탄을 때지 않았어?" 답은 간단하다. 땔나무는 많이 했어도 그걸로 방을 따뜻하게 할 돈이 없어서다.
여기는 난로가 있는 교실, 풍금 하나와 아코디언, 멜로디언, 피리, 탬버린, 캐스터네츠, 북과 소고가 있는 아담한 시골학교 교실이다. 얼굴은 석달 열흘을 밀어도 빠지지 않을 때 국물이 살갗과 공존하는 마흔두어 명이 한 반이자 한 학년을 구성하고 있는 벽지마을 학교로 돌아왔다.
이르게 겨울이 찾아오는 곳이라 10월 말에 선생님과 소사 아저씨는 바닥에 함석판을 놓고 위에 난로를 설치한다. 둥근 양철 연기통을 밖으로 빼내기 위해 유리창 한 개를 유리칼로 자른다. 몇 군데 못을 박고 단단히 고정하였다. 우리도 한 몫 거들었다. 1, 2, 3분단은 모래를 퍼오고 4분단은 물을 떠와 방화사와 방화수 통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