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통 올리느라 교실은 난장판이 됐죠

[동무들의 악다구니 15] 난로와 도시락이 있는 풍경

등록 2006.02.24 16:45수정 2006.02.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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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부럽던 일순이


서로 올리려고 교실을 뒤집어 놓았던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서로 올리려고 교실을 뒤집어 놓았던 그시절이 그립습니다.sigoli 고향
든든한 배경을 갖고 있는 일순이는 선생님이 매를 때리려고 하면 얼른 빼앗아 분질러서 밖에 내다버리곤 했다. 선생님께서는 "허허" 웃기만 할 뿐 내버려뒀다. 우리도 그 덕에 매를 맞지 않았으니 한동안은 일순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동창생 일순이 아버지는 겨울이 시작되면 꼭 학교에 다녀가신다. 아홉이나 열 살 때 보내던 깡촌에서 큰딸을 일곱 살에 학교에 보냈던 터라 걱정이 됐을 법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여느 아버지보다 훨씬 젊은 친구 아버지는 매년 하루 2번 오리나 되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벽지 중에서 가장 산 밑에 있던 마을 평지에서 잘 마르고 반듯한 장작을 잔뜩 지게에 지고 내려와 학교 뒤편에 있는 선생님 관사 앞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점방에서 선생님과 막걸리 한 잔을 걸치고 집으로 가셨다.

우리도 저렇게 젊은 아버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샘이 나기도 했다. 그 아이만 빼고 한 한 학년에 남녀 40여 명의 학생들이 아침마다 가방을 둘러메고 손에는 그날 땔 장작을 한 꾸러미씩 챙겨 집을 나선다.

장작은 참나무가 최고지요. 숯까지 남기니 참나무인가 봅니다. 그 다음 주로 소나무를 땠는데 타고 나면 재가 많습니다. 그대도 직접 패놓은 것은 가져가지 못했답니다.
장작은 참나무가 최고지요. 숯까지 남기니 참나무인가 봅니다. 그 다음 주로 소나무를 땠는데 타고 나면 재가 많습니다. 그대도 직접 패놓은 것은 가져가지 못했답니다.sigoli 고향
이르게 난로를 놓고 5월초까지 끼고 살았다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는 산을 헤매 발로 툭 차 그루터기가 쏙 뽑히는 장작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생고생을 했던가. 집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장작을 만에 하나 축냈다가는 호된 꾸지람을 듣곤 했으니 까까머리 학생이 손수 마련하는 게 당연했다.

그 시절 아버지는 무얼 하셨기에 우리가 그 일을 했느냐고 의문이 들겠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에서 땔 나무를 하고 길쌈하고 복조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리 학교는 다른 지역 학교처럼 소사 아저씨가 저학년이라고 따로 장작을 마련해 놓지도 않았다.


지리 공부를 좀 한 사람이면 참 희한하고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화순하면 남부 지방에서 무연탄을 꽤나 생산하는 큰 탄광이 있었는데 왜 너희들은 연탄이나 조개탄, 갈탄을 때지 않았어?" 답은 간단하다. 땔나무는 많이 했어도 그걸로 방을 따뜻하게 할 돈이 없어서다.

여기는 난로가 있는 교실, 풍금 하나와 아코디언, 멜로디언, 피리, 탬버린, 캐스터네츠, 북과 소고가 있는 아담한 시골학교 교실이다. 얼굴은 석달 열흘을 밀어도 빠지지 않을 때 국물이 살갗과 공존하는 마흔두어 명이 한 반이자 한 학년을 구성하고 있는 벽지마을 학교로 돌아왔다.

이르게 겨울이 찾아오는 곳이라 10월 말에 선생님과 소사 아저씨는 바닥에 함석판을 놓고 위에 난로를 설치한다. 둥근 양철 연기통을 밖으로 빼내기 위해 유리창 한 개를 유리칼로 자른다. 몇 군데 못을 박고 단단히 고정하였다. 우리도 한 몫 거들었다. 1, 2, 3분단은 모래를 퍼오고 4분단은 물을 떠와 방화사와 방화수 통을 채운다.

연탄 난로를 땔 수 있던 곳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우리 고향에선 연탄 구경은 한 번도 못하고 바로 석유 보일러 시대로 넘어갔답니다.
연탄 난로를 땔 수 있던 곳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우리 고향에선 연탄 구경은 한 번도 못하고 바로 석유 보일러 시대로 넘어갔답니다.sigoli 고향
기쁜 마음으로 하교 길에 산으로 가는 아이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싸늘한 냉기만 가득할 뿐 난로를 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내빼려는 아이들에게 선생님께서 희소식을 전해줬다.

"모레부터 난로를 땔 것인께 다들 집에 가서 장작 한 묶음씩 가져오니라. 알았제?"
"예."
"급장!"
"차렷 경례."
"선상님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는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았다. 다리거리에 가방을 매어 두고 산으로 달렸다. 마당바위 쪽 소나무밭으로 가자 재작년에 나무를 베었기 때문에 빨갛던 소나무 껍질은 벗겨지려하고 그루터기 끌텅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아그들아 요쪽으로 와봐."
"거기 많냐?"
"잉~"
"허벌나게 많당께."

아이들이 다가오기 전에 내 몫은 해놓아야 한다. 발로 툭툭 차대니 뿌리마저 위로 올라온다.

"규환아, 몇 개 각고 갈텨?"
"그려도 첫 번째인께 열댓 개는 해야 되지 않겄냐? 냉겨서 담에 각고 가도 되고…."

단박에 스무 개 가량을 뽑아서 한 곳에 모았다. 땀이 뻘뻘 났다. 가까운데 칡이 없어서 웃옷에 묶어 집으로 왔다.

이렇게 활활 타려면 여 선생님과 도시 출신 신출내기 선생님은 꽤 고생을 했습니다.
이렇게 활활 타려면 여 선생님과 도시 출신 신출내기 선생님은 꽤 고생을 했습니다.sigoli 고향
"아부지 녈부터 난로 땐다요."
"그려, 인자 따땃하겄구먼."
"엄니, 당감자 있제라우? 밥도 더 많이 싸줏쇼."
"아직에 먹을만치 내각고 가그라."
"알았어라우."

아침에 일어나 장작을 새끼줄로 예쁘게 묶었다. 쌀이 조금 섞인 보리밥에 김치쪼가리다. 6년 동안 한결같은 '변또'라 불렀던 도시락을 아버지 손수건에 꼭 처매서 집을 나선다.

"학교 댕겨오깨라우."
"그려. 잘 갔다 와."

반장이 일일이 확인하느라 시장판 같다.

"야, 넌 됐어야."
"야, 영희 넌 이게 뭐냐? 딴 애들은 10개씩 각관는디 넌 고작 시개여?"
"없는디 워쩔 것이여?"
"글먼 애기들과 산에 가면 되잖녀."
"야, 치곤이 넌 다 썩은 것만 가져왔네. 짜식이."
"알았어야. 송단이는 다 썩은 나무밖에 없당께."
"알았엄마. 담부턴 신경 좀 쓰라구."

난로에 손을 쬐는 기분 참 좋지요. 나일론 옷과 양말을 신었을 때 참 잘도 빵구가 났지요.
난로에 손을 쬐는 기분 참 좋지요. 나일론 옷과 양말을 신었을 때 참 잘도 빵구가 났지요.sigoli 고향
불 피우느라 애먹는 선생님 곁으로 몰려드는 학생들과 고구마

교실 한쪽에 장작 둥치를 모아두고 당번이 난로 피울 준비를 마쳤다. 조회 시간 전에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불쏘시개가 있다면 좋으련만 신문 종이를 둘둘 마신다. 아래쪽엔 나무껍질과 나뭇가지를 놓고 위에 장작을 하나 둘 쌓아 올린다. 성냥을 확 그어 종이에 불을 붙여 난로 아래 문을 열고 밀어 넣으니 교실 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당번, 창문 좀 열어라."

도시에서 살았던 선생님이 신문을 다섯 장이나 허비하자 간신히 불이 붙었다. 아이들은 한 명 두 명 난로 옆으로 다가왔다.

"야, 따땃하다."
"다들 너무 뽀짝 붙으면 난로 넘어진께 한 발짝씩 물러서라. 그리고 오늘부터 난로 당번은 주번이 하지 말고 성호가 하도록."
"알겄습니다."

난로 하나도 쬐는 데도 순서가 있었다. 공부를 잘하던가 키가 크고 힘이 세야 했다. 그도 아니면 난로 당번과 친하면 가능하다. 후끈한 교실, 이젠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의자를 들고 와 둥그렇게 모여앉아 있다.

그 시각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교시가 끝날 때 아이들은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 위해 공부할 생각을 접었다. 보온 도시락도 화영이 혼자뿐이다.

"누구 고구마 가져온 놈 없냐?"
"슨생님 지가 가져왔어라우."
"그래, 그럼 몇 개만 꺼내봐라."

1교시가 끝날 무렵 교실엔 구수한 냄새로 가득 찼다. 선생님이 계셨기에 별 탈 없이 골고루 나눠먹었다.

연기가 자욱한 교실도 이젠 찾아볼 수 없겠네요. 시골에 아이들이 있어야말이지요.
연기가 자욱한 교실도 이젠 찾아볼 수 없겠네요. 시골에 아이들이 있어야말이지요.sigoli 고향
색 바랜 도시락통 올리느라 난장판이 된 교실

"땡땡땡."

2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자 선생님께서 출석부를 챙겨 교무실로 가시자 난장판이 벌어졌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주전자에 있던 따끈한 물을 붓고 뚜껑을 덮은 채 책상 밑에 손을 넣고 있다가 우르르 일시에 남자애들이 난로로 돌진했다.

"툭!" "툭!" "툭!" "투두둑!"

던지듯 올려 놓은 도시락 스물두어 개가 어지럽게 쌓였다. 어떤 날은 도시락 뚜껑이 열려 바닥에 엎어지는 일도 벌어졌다. 서로 아래층에 놓아 밥을 데우려고 하니 난리가 날 수밖에. 1층부터 2, 3층에 올리지 못한 아이들은 땅이 꺼진 듯 허탈해 한다.

"야 색꺄. 글다가 얼굴 디면 어쩔라고 그냐?"
"내가 역부로 그랬간디."

성호가 놓인 순서대로 정리를 하고 있다. 4단으로도 모자라 한 단은 간신히 걸쳐놓기만 했다. 잠시 뒤 온기라도 쪼일 생각에 힘없는 아이 몇 명과 여학생들이 누런 도시락을 가져와 차곡차곡 쌓았다. 몇몇은 따뜻한 물에 말아먹을 생각인지 보자기를 풀지 않았다.

3교시가 끝나자 아래층에 있던 밥이 타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야, 병주하고 상복이, 육남이 밥 탄가 보다. 규환이 꺼는 괜찮겄는디."

명당 중 명당인 2층에 자리 잡은 내 밥은 1시간 후면 새로 지은 듯 고슬고슬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바닥은 약간 눌러 붙어 있을 게다. 성호가 장작을 더 넣으려고 순서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도시락을 책상에 내리는 동안 맨 아래층에 있는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위치 변동을 꾀한다.

"동관아 니꺼랑 내꺼 바꾸까?"
"그려. 물 좀 더 붓고."

이렇듯 양해각서가 전달되는 건 하늘에 있는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누룽지로도 모자라 깜밥을 먹고 싶은 상복이처럼 원주인이 바꿀 맘이 없으면 사정사정해도 소용없다.

일본말로 '벤또'를 우린 '변또'라 했습니다. 달걀 하나 없는 도시락이었지만 진짜 맛있었습니다. 이젠 추억의 상품으로 행사 때 등장하더군요. 인제빙어축제에서 만났습니다.
일본말로 '벤또'를 우린 '변또'라 했습니다. 달걀 하나 없는 도시락이었지만 진짜 맛있었습니다. 이젠 추억의 상품으로 행사 때 등장하더군요. 인제빙어축제에서 만났습니다.sigoli 고향
드디어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위에 놓인 미지근한 것은 그냥 손으로 들고 간다. 아래에 뜨겁게 데워진 도시락은 개인 마른 걸레나 겉옷을 쭉 빼서 데지 않게 조심히 책상위에 툭 내려 놓아야 한다.

숟가락 끝으로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물도 적당히 빠져 있다. "후훗 후~후~" 불어가며 무 김장김치 한 조각 베먹고 한 숟가락 뜬다.

"아따메 다 타부렀네."

몇몇 아이는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하려고 난로 위에 칠이 다 벗겨진 대물림 도시락을 올려 놓는다. 소독약 냄새 풀풀 나는 미지근하게 식은 주전자 물을 부어서 말아먹는 아이도 있다.

'달걀후라이' 하나 없는 교실에 짜고 매운 정도만 다른 김치 한 가지에 맛있게도 먹는다. 밥을 먹고 나서는 눈을 뭉쳐와 녹이기도 하고 심심하던 아이들은 '땡끼' 지우개를 연통에 쭉 밀자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4학년 때는 처음 나온 백동화를 달궈 친구 얼굴에 붙였던 친구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 시절 교실 훈기가 남아있는 듯 지금은 마흔을 넘긴 아이들이 다시 어릴 적으로 돌아간 듯 선하기만 하다.

난로가 있는 따뜻한 교실이 그리워지면 어서 개학이 되길 기다렸지요.
난로가 있는 따뜻한 교실이 그리워지면 어서 개학이 되길 기다렸지요.sigoli 고향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을 만들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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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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