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알 아부지나 드싯쇼. 안 묵을라요"

개구리 알 먹으라던 어른과 매운탕 먹고 설사해대던 조카들

등록 2006.02.27 17:37수정 2006.03.0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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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펀하게 싸놓은 개구리 알을 지난주 월요일 2월 21일 곡성 관음사 입구에서 만났다. 이런 걸 먹어보라는 어르신 말씀을 처음으로 거역할 수밖에 없었다.
질펀하게 싸놓은 개구리 알을 지난주 월요일 2월 21일 곡성 관음사 입구에서 만났다. 이런 걸 먹어보라는 어르신 말씀을 처음으로 거역할 수밖에 없었다.sigoli 고향
바짓가랑이 나풀거리게 하는 봄바람이 분다고 장독대 깨질 리 만무하다. 꽃샘바람 용솟음쳐도 오는 봄을 막지는 못한다. 더딜 뿐 기어이 오고야 마는 게 봄이다. 바야흐로 생동하는 계절, 변화의 중심에 놓여 있다. 감정이 다소 서먹서먹하더라도 두 팔 벌려 용기 있게 맞이하자. 개구리도 우리와 마음이 한가지일 게다.


얼었던 개울물이 얼음과 자갈, 흙으로 분리된다. 얼음끼리 팔짱을 꼭 끼고 있다가도 봄볕보다 봄바람 훈풍에 못 이겨 마침내 물이 된다. 들릴 듯 말 듯 똑똑 떨어진 작은 물방울이 한 점 두 점 모여 돌돌돌 흐르며 조약돌을 실어 나른다.

개밥나무 버들강아지 배불러오고 천둥번개 몰아치니 봄을 알리는 신호에 땅 속에 칩거하던 개구리도 경칩(驚蟄) 무렵엔 놀라지 않고 배기랴.

봄나물이 깨어날 때 논바닥 독새기 풀도 파릇파릇 깨어난다.
봄나물이 깨어날 때 논바닥 독새기 풀도 파릇파릇 깨어난다.sigoli 고향
신기하다. 인간 상식으로 보면 며칠간 영양분을 섭취하여 회복기를 거쳐야 하건만 작년 여름과 첫서리 오기 전 머금었던 자양분만 가지고 참개구리는 많지도 않은 물, 방죽이나 둠벙에 알알이 씨알을 박아 흐느적거리는 생명을 까놓았다.

어찌 이토록 신비한가. 작은 물길 돌 틈바구니엔 도롱뇽이 더 큼직하고 잘록한 새끼씨앗을 자루에 담아 자르르 깔아놓았다.

“한얼아, 미리야 우리 깨구리 나왔는가 보러 가자.”
“삼촌 깨구리가 뭐야? 어디로?”
“개구리를 깨구리, 깨구락지라고 했어. 어제 비가 왔으니까 저 아래 수로에 가면 개구리가 폴짝폴짝 뛰어놀고 있을 거야.”


13년 전 두 조카를 데리고 개구리 구경을 나섰다. 풀숲에서 한 마리, 자작자작 고인 물에서 세 마리를 만났다. 아직 쌀쌀하고 산마을에 마이동풍(My 東風)이 몰아치니 어린애들을 아래까지 데려가지 못하고 학습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도롱뇽 알도 개구리 알과 때가 같은데 겉에 보호막이 쳐져서 떨어져나가지 않게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생명이 놀라운가.
도롱뇽 알도 개구리 알과 때가 같은데 겉에 보호막이 쳐져서 떨어져나가지 않게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생명이 놀라운가.sigoli 고향
잠시 기다렸더니 오전에 나간 셋째형이 차대기에 돼지와 닭에게 삶아 준다며 개구리를 가득 담아 돌아왔다. 진한 갈색 낙엽 색깔로 변한 200여 마리 개구리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비료부대 안에서 발버둥을 치며 소란을 떨고 있었다.


“삼촌 머할라고?”
“응, 닭 모시 줄 게 없어서….”
“그거 닭이 잘 먹어?”
“삶아서 주면 잘 먹지. 보약이란다.”
“그렇구나.”
“너도 먹을래?”
“어떻게?”

큰형 가족이 형 병을 고치기 위해 2년간 시골에 내려와 살았던 때다. 마흔 마리를 따로 꺼내 깔끔하게 씻고 매운탕을 끓이기로 했다. 고사리와 고구마줄기를 물에 담가놓고 고추와 들깨를 갈아 따로따로 받아뒀다.

배가 홀쪽한 개구리를 먼저 넣고 푹 고듯 삶고 나서 갖은 양념에 푸성귀를 넣자 근사한 매운탕이 되었다. 개구리매운탕은 보신탕이나 흑염소탕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미리와 다섯 살 한얼이와 아버지, 형들까지 둘러앉아 맛있게 먹고 20여 분이 지났다.

“삼촌….”
“왜? 뭐가?”
“나올라 그래.”
“삼춘 나도 배 아파.”
“뭐, 너도? 자자 이리 와라. 한얼이는 바깥 마당에서 누고 미리는 얼른 변소로 들어가.”

변변찮은 반찬에 밥만 먹던 아이들이 갑자기 고단백 고칼로리 음식을 먹으니 설사를 쫙쫙 해대는 건 당연했다. 인삼 뇌두를 자르지 않고 아이에게 해먹였다가 머리까지 돌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지만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지금도 어른이 다 된 조카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 배꼽을 잡고 웃는다.

알 덩어리가 부풀어 오르면 곧 생명이 태어난다.
알 덩어리가 부풀어 오르면 곧 생명이 태어난다.sigoli 고향
더 오래 전 봄 경칩이 다가오면 동무들과 방죽에서 몇 날 며칠 진을 친다. 썩은 지푸라기나 나뭇가지 속에 들어 있는 벌레를 뽑아내 낚시를 하기 위해서다. 때론 물을 뿜어내 미꾸라지와 날피리 따위를 잡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깊은 수렁에 가보면 누군가 포도를 먹고 게워낸 듯 질퍼덕하니 깔려놓았다. 퇴비를 내던 날도 그랬다. 뭐 이런 징그러운 게 다 있나 싶다. 본체만체 지나칠라치면 어른들은 너저분한 알 무더기를 두 손에 가득 퍼올려서 “후루룩 훕!” 하고 마신다.

“약되니까 묵어봐라.”
“예? 쩌걸 어치코롬 묵는다요?”
“묵어놔. 다 몸에 보신이 된당께.”
“싫어라우. 어매 쩌 던지러운 것을 묵으라그요. 아부지나 드싯쇼. 안 묵을라요.”

무슨 약일까 보냐. 먹을 게 없던 시절 부황이나 들지 말라고 고기대신 단백질 보충이라도 하라는 거였겠지만 참으로 속이 미식미식 곧 넘어올 듯한 느낌을 아직도 지울 수 없다.

개구리 알, 도롱뇽 알을 보고나서 씨암탉에게 달걀을 품으라고 넣어주고 이제나 저제나 깨어 나올까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봄날 춘곤증에 빠져 어린 나도 비실비실 졸았다. 심심하고 무료하여 골짜기로 방죽으로 둠벙으로 가보면 오돌토돌 상처 난 곳에 새살이 돋듯 부풀어 갔다. 새 생명이 탄생하기 직전이다.

올챙이를 볼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남녘 어디엔가는 벌써 나왔을 지도 모르겠다.
올챙이를 볼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남녘 어디엔가는 벌써 나왔을 지도 모르겠다.sigoli 고향
햇병아리 한두 마리 껍질을 깨고 나오는 3월 초순이 되면 어김없이 정말로 틀림없이 수만 마리 올챙이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나를 반겼다. 신발에나 그릇에 담아와 키워보겠노라고 욕심을 부리다 결국 물 갈아주기도 귀찮아지던 어느 날 닭이 마루에 올라 있으매 “워~” 하고 쫓으니 놀라 푸드득 날며 그릇을 날갯죽지로 건드려 엎지르고 말았다. 그날로 암탉 먹이로 선사하고 말았다.

그 추억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작년 아들 솔강이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올챙이를 키우자며 장난감에 담았지만 계곡을 떠날 때 바로 부어주었다.
작년 아들 솔강이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올챙이를 키우자며 장난감에 담았지만 계곡을 떠날 때 바로 부어주었다.sigoli 고향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고향신문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을 시민, 농민과 함께 만들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고향신문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을 시민, 농민과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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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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