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떨어져나간 자리가 마치 생채기처럼 남았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울지 않았을 것입니다.김형태
오늘, 밖에 나가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고목 같은 겨울나무들, 그러나 고목(枯木)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습니다. 나무는 겨우내 알몸으로 추위에 떨면서도 새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 떠나보낸, 어쩌면 시간과 추억까지도 훌훌 털어버린 빈 가지라서 홑몸인 줄 알았는데,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달걀 안의 병아리처럼 그 여리디 여린 가지 끝에서 새봄이 아지랑이처럼 꼼지락거리며 부화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명자나무 등 나뭇가지마다 봄을 준비하는 꽃망울이 마치 여인의 젖가슴처럼 탐스러웠습니다.
작년 가을,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잎새와 꽃과 열매들을 다 떠나보내고, 더불어 나비와 꿀벌과 새들까지 모두 떠나버린 후, 하얀 된바람에 속절없이 울었을 나무…. 그러나 나무에게는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꽃사슴처럼, 또는 북극곰처럼 이미 몸 안에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알몸으로 혹독한 겨울을 넉넉히 이겨낸 것도 어쩌면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