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되로 받아 말로 주며 살아온 인생

등록 2006.02.28 18:54수정 2006.03.0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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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천 둔치에서 뻥튀기 아저씨 부부를 만났습니다. 아저씨 부부는 트럭 위에 뻥튀기 기계 둘을 싣고 옥수수는 물론 쌀이며 콩까지, 심지어는 말린 떡에 누룽지도 받아서 곱절로 튀겨주며 살아왔습니다. 장날이면 벌이가 더 좋지만 그렇지 않는 날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찾는다며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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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손님들이 튀길 곡식을 가지고 오면 아주머니가 받습니다. 튀기기에 적합한 것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것도 아주머니입니다. 제대로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튀기면 기계에 달라붙어 낭패를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떡이나 누룽지를 가지고 오면 아주머니는 손으로 부러트리고 입으로 씹어보면서 튀기기에 적당한지 여부를 평가합니다.

"이 떡도 튀겨 줘요?"
"잘 말랐나요?
"그럼요."

마음씨 좋은 아저씨는 손님 되돌려 보내기 미안해서 어지간하면 그냥 튀기자고 하지만 아주머니는 꼼꼼하게 챙깁니다. 까딱 잘못해서 기계에 떡이나 누룽지가 달라붙어버리면 반나절은 그냥 공친다고 합니다. 다행이 이번 손님이 가지고 온 떡은 아주머니 마음에 들 정도로 잘 말랐습니다.

옥수수를 가지고 오는 손님이 가장 많습니다. 어릴 때 추억 속에서도 옥수수를 튀긴 강정 한 자루만 있으면 겨우내 간식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들에서 뛰어놀다 돌아와서 옥수수 강정을 두 손 가득 담아서 입에 넣고 우물거렸습니다. 때로는 자루에 머리를 박고 먹고 또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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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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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뻥이야!"


아저씨가 소리칩니다. 곧이어 아저씨 소리보다 몇 곱절 더 큰 소리가 나며 하얀 옥수수 강정을 쏟아냅니다. 제 할 일을 마친 기계는 허공을 향해 허연 김을 토해내며 헐떡입니다. 쏟아진 옥수수 강정을 바구니에 담아 반쯤 잘라낸 페트병으로 슬슬 문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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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그냥 담아 주시지 왜 문지르세요?"
"깔끄러운 껍질 떨어내서 드릴라고요."
"예전엔 그냥 줬는데."
"서비스가 좋아야 또 오지요."


사람 좋은 아저씨 얼굴에는 웃음이 늘 붙어 다닙니다. '맛 좀 보시라'며 한 줌 집어 건네주어 입에 넣었습니다. 따뜻한 옥수수 강정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습니다. 고소한 맛이 어릴 때 먹던 그 맛 그대로입니다.

골고루 뒤적이며 한참을 문지르던 아저씨는 커다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손님에게 건네주었습니다.

"푸짐하죠?"
"네, 정말 많네요."
"되로 받아 말로 주는 게 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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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아저씨는 줄지어 선 깡통 중에 제일 앞에 있는 걸 집어 기계로 가지고 갑니다. 턱도 없는 욕심 부리지 않고 땀 흘려 벌어들인 만큼의 삶을 살아온 아저씨 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힘과 권력 이용해서 거들먹거리며 저지른 죄 값도 치르지 않고 피해가는 이들의 모습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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