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아닌 김영완에게서 촌지 받았다"

촌지 받은 언론사 간부들 파기환송심서 진술 번복...검찰 '꿰맞추기' 비판 받을 수도

등록 2006.02.28 18:40수정 2006.03.0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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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6월 대북송금 특검팀에 소환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지난 2003년 6월 대북송금 특검팀에 소환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오마이뉴스 권우성
현대비자금 150억원 수수의혹과 관련, 검찰에서 "전직 무기거래상 김영완씨(해외도피중)의 계좌에서 나온 수표를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으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한 K씨(전 중앙일보 정치부장대우)가 28일 법정에서 이를 부인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4년 11월 12일 대법원이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한 이 사건은 검찰 측이 부실한 '꿰어맞추기 수사'와 무리한 증인신청 등으로 파기환송심 재판을 15개월 넘게 끌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K씨는 이날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이재환) 심리로 열린 박지원씨에 대한 '현대비자금 150억 수수' 혐의 파기환송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검찰에서 박지원씨로부터 받은 것으로 진술한 300만원은 박씨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김영완씨로부터 받은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K씨는 2004년 3월 검찰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받을 당시에는 "술에 취해 잘 기억은 안나지만 박지원 전 장관과의 회식 자리에서 인사불성이 되어 집에 돌아왔는데 나중에 처가 양복 주머니에 수표 3장이 있다고 얘기해 그런 줄 알았다"는 취지로 진술했었다.

검찰이 '박지원 돈' 받은 것으로 지목한 언론인 4명 모두 '연관성' 부인

이처럼 검찰에서는 다르게 진술한 것과 관련, K씨는 "검찰에서 조사받을 당시는 누구한테서 내가 돈을 받았는지 딱히 생각도 안나고 검찰에 계속 시달릴 것이 신경쓰여서 그냥 받았다고 시인해줘 버렸다"면서 "박 전 장관과 식사를 한 차례 한 적은 있지만 잘 알지도 못하고 돈 받은 일도 없다"고 말했다.

K씨는 이날 법정에 출두하기 전에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도 "지난해 재판부로부터 증인출석요구서를 받았을 때 법정에 나가 이 같은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하고 싶었으나 그때는 개인 신상문제가 걸려 있어서 법정에 나오지 못했다"면서 "이번에는 그런 문제가 없으므로 법정에 나가 사실대로 진술할 것"이라고 밝혔다.

K씨는 당시 국방홍보원장으로서 임기 만료 및 재계약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K씨도 이날 법정에서 "당시는 온통 재계약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법정에서 진술할 경우 재계약에 불리할 것으로 판단해 출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박 전 장관이 150억원 가운데 김영완씨로부터 수표 20∼30억원을 포함해 110억원 가량을 받았으며, 이 돈이 언론인 등에 건네졌다는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렵게 됐다. K씨뿐만 아니라 검찰이 김영완씨 계좌추적을 통해 김씨 계좌에서 나온 수표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한 다른 언론인들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당초 검찰은 김영완씨 계좌에서 나온 수표(100만원권 1∼5장)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언론인 4명으로부터 "(문제의 수표를) 박지원 전 장관으로부터 받은 것 같다"는 진술을 확보했었다. 그러나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언론인들은 법정에서 한결같이 진술을 번복하거나 박 전 장관과는 무관한 돈이라며 이를 부인했다.

이를테면 박씨 돈을 받은 것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언론인인 지방언론사 사장 P씨(전 동아일보 편집국장)도 재판부에 보낸 불출석사유서에서 "김영완씨 계좌에서 나온 돈과 관련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전제하고 "김영완씨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거나 벤처 투자를 권유받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P씨는 이어 "(김씨에게) 투자하고 돌려받지 못한 돈도 있다"면서 "검찰에서는 박지원씨한테서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으나 실은 편집국장을 그만둘 무렵에 (위로금으로) 김영완씨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했다. 김영완씨는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전 명예회장과 해외여행을 함께 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따라서 P씨 또한 사주와 가까운 김씨와 골프를 치는 등 함께 어울렸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완씨 조·중·동 간부들에게 100∼500만원 '촌지' 제공

또 지난해 4월 파기환송심 재판에 처음 증인으로 출석한 W씨(전 월간조선 편집위원)는 "김영완씨의 차명계좌에서 나왔다고 하는 100만원짜리 수표를 박 전 장관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2000년 말 김영완씨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밝혀 검찰에서의 진술을 번복했다.

W씨는 법정에서 "김영완씨와는 1989년부터 알기 시작해 해마다 한두 차례 만남을 가진 사이"라며 "2000년 말에 회사 옆 찻집에서 만나 김씨로부터 '연말 잘 보내라'는 말과 함께 1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W씨는 "(김씨 계좌에서 나온 수표를) 박 전 장관으로부터 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에 대해서는 "법원의 증인출석 요구를 받고 당시 수첩을 꼼꼼히 확인한 결과, 박 전 청와대 공보수석(당시)으로부터는 98년에 50만원을 10만원짜리로 5장 받았을 뿐, DJ 정부 출범 뒤엔 받은 일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한편 검찰에서 김씨 계좌에서 나온 수표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또 다른 K씨(K라디오방송 사장·목사)의 경우, 박지원 전 장관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박 전 장관과는 무관한 교회 헌금'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무기거래상 출신의 김영완씨는 평소 '친분'이 있는 조·중·동 간부들에게 각각 100∼500만원의 '촌지'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 부장 출신인 K씨는 원래 국방 전문기자였고, 월간조선 W 전 편집위원도 방위산업 관련 기사를 쓴 것을 계기로 무기거래상 김씨와 친분을 갖게 되었다.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P씨는 사주와의 친분관계 때문에 김씨를 알게 되었다.

언론인 촌지를 '연결고리'로 한 검찰의 '막판 뒤집기' 사실상 무산

결국 검찰이 김영완씨 계좌에서 나온 수표를 박지원씨한테서 받아 사용한 것으로 지목한 전현직 언론인 4명이 모두 재판에서는 "김영완씨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진술하거나 "박 전 장관과는 무관한 교회 헌금"이라고 진술함에 따라 검찰은 무리한 '꿰어맞추기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또 이에 따라 ▲평소 언론인들과 술자리가 잦은 박 전 장관이 김영완씨를 통해 고(故) 정몽헌 현대 회장에게 돈을 요구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으로부터 CD 150장(150억원)을 받아 ▲김씨에게 맡겨두면서 수표 20∼30억원을 포함해 110억원 가량을 가져다 썼으며 ▲김씨 계좌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한 일부 언론인들이 사용한 수표는 박지원씨로부터 받은 것임을 입증해 '막판 뒤집기'를 하려던 검찰의 계획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설령 이들이 모두 김영완씨의 계좌에서 나온 수표를 박 전 장관으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하더라도 그 사례가 소수(4건)이고 금액도 소액(150억원 중 수백만원)인 만큼, 그것이 박씨의 유죄를 입증하는 직접적 인과관계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박씨의 변호인 소동기 변호사도 이날 "검찰은 김영완씨 계좌에서 나온 100만원짜리 수표 1404장을 포함한 총 수표 1800여장을 추적해 그 가운데 언론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난 11장을 가지고 박 전 장관 혐의의 '연결고리'로 삼고 있는데 오히려 그것이 박 전 장관과 김영완씨 간에 돈거래가 없음을 입증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이날 법정에서 그 '연결고리'마저 깨짐에 따라 대법원이 2004년 11월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한 박지원씨 현대비자금 150억원 수수의혹 사건은 무죄로 종결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박 전 장관은 지난 2003년 6월 대북송금 특검에 구속된 이후, 그동안 일관되게 "김영완씨로부터는 어떠한 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다음 공판은 4월 4일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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