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범죄학자, '곤충소년'과 맞서다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세번째 <곤충소년>

등록 2006.03.02 08:45수정 2006.03.0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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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에 첫 장을 여는 것은 책 위에 올라서는 것과 같다. 책은 춤을 춘다. 올라선 사람은 본능대로 평행을 유지하려 한다. 이때부터 사람과 책은 대결을 한다. 책이 뻔하다면, 사람은 어렵지 않게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의 승리는 기쁨을 주지 않는다. 되레, 실망감을 맛볼 뿐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어떨까? 사람은 패배하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지고도 웃게 만드는 것인데 또 한번 그런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법의학 스릴러의 대명사인 '링컨 라임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곤충소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곤충소년>의 춤은 어떤가?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것 하면서 잡히지 않는다. 리듬이 사람을 희롱하고 마침내 사람은 주저 않을 수밖에 없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닌, 숫자를 세기조차 어려운 반전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본 컬렉터>와 <코핀 댄서>에서 전신마비환자임에도 탁월한 두뇌로 희대의 범죄자들을 잡는데 한 몫 했던 링컨 라임. 그는 미국 남부로 떠난다. 수술을 받기 위해서다.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에 명콤비 아멜리아 색슨과 조수 톰을 데리고 남부에 온 것이다. 그런데 명사는 어디 가나 눈에 띄기 마련이다. 지역경찰이 살인, 납치, 강간을 일삼는, '곤충소년'이라고 불리는 범죄자 때문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링컨 라임이 상대해야 할 범인은 누구인가? 범인은 불리는 그대로 소년이다. 이 대목에서 상대가 범인이라는 것이 다소 의아스럽게 여겨질 수 있다. 시리즈인 만큼 전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살인기계라고 할 만한 '본 컬렉터'나 게임의 룰을 파괴하면서 '본 컬렉터'를 조무래기로 만들어 버렸던 '코핀 댄서'에 비하면 소년의 무시무시함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별명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코핀 댄서'가 선과 악의 대결에서 게임의 룰을 파괴할 줄 아는 지능적인 범인이었다면 '곤충소년'은 게임의 룰 자체가 적용이 안되는 범인이다. 괴상한 외모와 성격 때문에 양부모에게도 미움을 받던 그는 버려진 늪과 숲 속에서 곤충에 빠져있는 소년이다. 더욱이 인간보다 곤충이 낫다고 믿기에 행위는 모두 곤충의 것을 닮았다. 물론 범죄 또한 예외는 아니다.

소년은 곤충처럼 냄새를 이용해 적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말벌과 같은 곤충들을 이용해 상대를 공격한다. 또한 곤충처럼 숨을 줄 알고, 곤충처럼 먹잇감을 유인할 줄 안다. 굳이 정리해보면 사마귀처럼 인내심이 있고, 나방처럼 낮게 엎드릴 줄 알고 벌처럼 자신을 공격하는 적에게 위협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껏 이런 범인이 어디에 있었던가? 또한 모두가 두려워하는 늪과 어두침침한 숲도 그에게는 또 하나의 방과 같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더욱이 <곤충소년>에서 링컨 라임은 '물을 벗어난 물고기' 신세다. 무슨 뜻인가. 링컨 라임은 수술을 하기 위해 온 것인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때문에 북부인은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남부인들 사이에 끼어들어야 한다. 또한 그의 두뇌를 확실하게 보좌해주던 장비들도 없다. 단서가 있어도 분석할 여건이 열악하다. <본 컬렉터>와 <코핀 댄서>와는 싸울 무대부터가 다른 셈이다. 게다가 범인은 게임의 룰이 통하지 않는, 상식을 벗어난 인물이니 링컨 라임으로서는 아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제프리 디버는 <곤충소년>에서 얄궂은 상황을 만들었다. 증거를 믿는 링컨 라임과 사람을 믿는 아멜리아 색슨이 서로 대치하도록 만든 것이다. 서로에게 몸과 머리가 돼주었던 이들, 서로를 좋아하는 이들이 상대보다 먼저 고지를 점령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니 얄궂어도 이런 얄궂음은 없다. 링컨 라임으로서는 범인과 동지를 상대해야 하는 이중의 적을 만난 셈이다.


링컨 라임에게는 미안한 일이겠지만, 본래 추리소설은 주인공이 곤경에 처할수록 맛깔스러운 법이다. 전작보다 링컨 라임의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 많은 만큼 전작과 다른 맛이 가득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코핀댄서>처럼 강력한 한방의 스트레이트로 다져진 반전이 아니라 빠른 손놀림으로 사방을 치고 들어오는 반전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전작과 다른 재미를 맛보게 해준다.

타지 사람인데다가 똑똑하다고 거만한 전신마비 환자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남부에서, '곤충소년'과 동지들을 상대해야 하는 물을 벗어난 물고기는 과연 제 기량을 보여줄 수 있을까? 또한 '장애' 때문에 더딜 수밖에 없는 아멜리아 색슨과의 로맨스는 진척될 수 있을 것인가? 할 수 있는 말은 오로지 '추측금물'이라는 것 뿐, 그저 리듬에 몸을 실으라는 것뿐이다. 추리소설 특유의 번쩍하는 황홀감을 만질 수 있을 테니까.

곤충 소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3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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