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 망각의 해법으로 해결할 수 있나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 해 오월…1·2>를 읽고서

등록 2006.03.03 11:17수정 2006.03.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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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1권과 2권이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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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노태우가 자식을 잃어 봤어? 지기들이 자식이 죽은 부모 심정을 알기나 해? 그놈들도 그것이 얼매나 사람 환장허게 맹그는 것인지 알아야 써. 우리가, 내가 그동안 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는지, 지기들은 죽어도 모를 것이여. 내가 그놈들 이름만 들어도 이가 갈리고, 분해서 참을 수가 없당게. 갈갈이 찢어서 도청 분수대에 매달아 놔도 분이 안 풀릴 것이여. 근디, 시방 그놈들은, 그놈들은 암시랑토 않게 두 발 쫙 뻗고 잔단 말이여. 시상에 하늘이 이렇게 불공평헌가? 아이고…."

이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이 찌른 대검에 의해 죽어간 아들 기남용을 두고 울부짖는 아버지 기충호씨의 절규다. 그때로부터 2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아버지 기충호씨는 칠순의 나이가 됐다. 그런데도 아들이 묻혀 있는 망월동 묘지에 갈 때면 그날의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머릿속에서 뚜렷하게 떠오르니, 그 원통하고 분한 원한을 무엇으로 갚을 수 있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꽃다운 나이의 손옥례는 그야말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참상을 당했다. 1980년 5월 28일 도청 앞 상무관에서 합동수사본부 검시관들이 작성한 그녀의 사망원인은 좌유방부 자창, 우측흉부 총상, 하악골 총상, 좌측골반부 총상, 대퇴부 관통총상, 우흉부 관통총상이었다.

유언비어로만 떠돌던 그 끔찍한 일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포악하고 무도한 계엄군들이 순진하고 꽃다운 여고생의 젖가슴을 잔인하게 도려낸 것이다. 감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짐승만도 못한 짓을 그들은 저질렀던 것이다. 계엄군이 5·18 민중항쟁 기간에 자행한 업무가 명백한 학살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그런데 그 끔찍한 일은 손옥례 혼자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은 가족들 모두에게 이어졌다. 그토록 끔찍한 딸의 사체를 본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실신해 이듬해 병상에서 눈을 감았다. 어머니 역시 딸과 남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반신불수로 살다가 1986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더욱이 손옥례의 유일한 피붙이인 오빠 손병섭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는 여동생을 찾으러 시내에 갔다가 공수부대에 붙잡혀 현장에서 구타를 당하고 실신했다. 깨어나니 국군통합병원이었고, 곧바로 통합병원 계엄분소로 끌려가 또다시 모진 구타를 당하고 나서야 석방이 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온몸에 피멍이 들었고, 그들이 찌른 칼에 그의 대퇴부는 10센티미터 이상이나 찢겨 나갔다. 이 얼마나 참혹하고 억울한 일들인가?

죽음으로 쓴 5ㆍ18 민중항쟁의 증언록


이와 같은 실상들은 5·18 민주유공자유족회가 구술하고 5·18 기념재단에서 엮은 <그 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1·2>(한얼미디어·2006)에 낱낱이 실려 있다. 이른바 죽음으로 쓴 5·18 민중항쟁의 증언록인 셈이다.

여기에는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항쟁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5월 영령 151명의 죽음에 관한 기억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 1권에는 79명의 영령들이 남긴 이야기가, 2권에는 72명의 영령들이 남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들 5월 영령 가운데에는 환갑이 넘은 백발의 노인 김명철씨도 있고, 자전거를 몰고 가다 죽어간 동신중학교 3학년 학생 박기현군, 스물셋 나이로 광천동에 있는 무기고를 지키다 시위대에 합류하여 죽어간 방위병 김정선씨, 열여덟 살 때까지 고아로 자라 구두닦이로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이곳저곳 많은 도움을 베풀며 살았던 김재형씨도 있다.

또한 학생도 시위대도, 그렇다고 광주시민도 아니었던 해남 사람 김인태씨가 있는가 하면, 막노동 일을 하면서도 처자식만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했던 서른여섯 살 김안부씨, 어려서 앓은 뇌막염으로 청력을 잃어 계엄군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해 결국 죽어간 김경철씨, 계엄군이 쏜 총알로 인해 아무 이유도 없이 2층 방에서 그대로 거꾸러져야 했던 이매실 할머니, 일산방직의 힘겨운 노동자로 살다가 온몸이 처참히 찢겨 죽은 고영자씨도 있다.

이들 5월 영령들의 죽음에 관한 기억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계엄군의 행위는 감히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만행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 아니, 개나 돼지 같은 짐승이라 할지라도 이토록 무참하게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뒷조사와 미행, 묘지 이장…다양한 회유책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당시 군부독재의 중심에 있던 자들과 그 하수인 노릇을 톡톡히 했던 자들이 대단히 악랄하고 치졸한 방법으로 유족들을 매수하고 회유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앞에서는 국민을 안정시키고 뉘우치는 기색을 엿보였지만, 뒤에서는 유족들에게 극심한 탄압과 회유책을 병행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동대를 동원해 유족들을 끌고 가서 감금해 두기가 일쑤였다. 뒷조사와 미행은 밥 먹듯이 행한 일이었다.

또한 관광을 빙자해 무작정 끌고 가서 아무 데나 내려놓는 등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행동을 일삼았다. 더 악랄하고 교묘한 수법은 유족들이 5월 영령들의 묘지를 이장하면 좋은 곳에 취직을 시켜 주겠다, 생활비를 대 주겠다고 유혹한 것이었다. 그들은 앞모습과 달리 뒤로는 온갖 유혹의 말로 유족들을 분열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던가. 뭐든지 그냥 잊고 덮어두는 망각의 해법과 그것을 되살려 내는 기억의 해법. 우리의 과거 역사를 들여다보건대 이 두 가지 가운데 대부분은 망각의 해법을 택하여 왔던 듯하다. 불행한 역사라 들쑤셔서 좋을 게 없으니, 그냥 묻어두고 화해하는 것.

하지만 5월 영령들의 넋과 유족들의 한을 어찌 망각의 해법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필요하다면 벌집을 내서라도 진실에 기초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만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요, 그것이 제대로 된 과거청산일 것이다. 그때에만 불행했던 과거를 바르고 말끔하게 청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정수만 회장은 망각의 해법보다는 기억의 해법을 지금껏 택해 왔음을, 앞으로도 그것을 찾는 데에 모든 노력과 시간과 정성을 쏟겠다고 밝히는데,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기억의 해법이었습니다. 개별 보상과 유형적 기념사업으로 망각을 유도했지만,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은 망각되거나 덮어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너무나 명백합니다. 바로 이 증언록에 기록된 이들의 주검이 망월동에 누워 진실과 정의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해 5월 1

이병주 지음,
한길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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