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세계, 이대로 포기해도 되겠습니까?

[서평] 박상익의 <번역은 반역인가>

등록 2006.03.04 12:19수정 2006.03.04 19:53
0
원고료로 응원
a <번역은 반역인가> 겉그림

<번역은 반역인가> 겉그림 ⓒ 푸른역사

종종 번역의 문제점이 발견되곤 한다. 아니, 종종이 아니라 '자주' 목격되곤 한다. 창작에 가까운 번역, 뜻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번역은 낯설지 않다. 오죽하면 '번역의 힘'이라는 냉소적인 말이 생겨났겠는가. 그래서일까? 번역가 박상익의 체험적 보고서 <번역은 반역인가>가 개인의 체험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모두의 이야기로 그 심각성이 남다르게 여겨진다.

번역, 그것은 창작만큼이나 중요하다. 번역이 없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는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외국의 것을 우리 것으로 전환시켜주는 것이기에 번역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박상익은 이 중요한 '번역'에 문제가 많단다. 첫 번째 문제는 번역자들의 처지다. 번역은 가치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번역은 특성상 한 권을 번역하기 위해 몇 배, 혹은 몇 십 배의 책을 참고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사회에서 '쉬운 일'로 취급받는다. 게다가 돈벌이는 어떤가. 생계가 막막할 정도다. 그나마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나 베스트셀러면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문도서의 경우는 그야말로 열악하기 그지없다. '기적적'으로 한 달에 한 권 번역해도 생계문제가 막막하고 사회에서는 알아주지 않으니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심정이라는 건, 그야말로 번역가들을 위한 말일 테다.

하지만 고달픈 환경에도 꿋꿋이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 박상익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인가. 외부 핑계를 대며 '못된 짓'하는 번역가들에 대한 일침이 따끔하다. 특히 상아탑에서 진리를 탐구한다는 대학교수들에 대한 비판의 날이 날카롭기 그지없다. 모두는 아닐지라도 일부 대학교수들이 대학원생들을 일꾼으로 동원한다는 건 자주 언급되는데 번역에서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번역거리를 받은 대학교수는 대학원생들에게 나눠준다. 번역해 오라는 것이다. 여럿이 분량을 나눠 번역한 뒤에 모은 번역본을 상상해보자.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번역이라는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박상익은 그것이 엄밀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장인정신이 실종된 대로 실종된 번역의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번역'을 두고 '반역'이라고 부르는 이 세계에서, 열정을 갖고 뛰어들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격려의 말은 고사하고 되레 말리게 되는 이 세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박상익은 그 답을 소박한 것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에서 찾는다.

먼저 번역가의 대우 문제를 보자. <번역은 반역인가>는 번역가의 가치를 제대로 살려주지 못하는 지금으로서는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장인정신으로 1년 내내 번역 일에 매진한 번역가가 힘이 빠져버리는 일이 없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말인데 십분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주장이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인재들이 투입되기는커녕 빠져나오는 상황을 조장하는 세계라면 정부나 사회단체가 나서서 도와줄 필요가 있다. 창작의 세계처럼 말이다.


또한 '국가'가 앞장서서 번역의 중요성을 일깨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가까운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정부 내에 번역국을 두고 서양 서적을 조직적으로 번역해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서양의 것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접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변함은 없었는데 이는 국가가 그 중요성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이든 서유럽이든 이슬람 문명이든 간에 그들은 외국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국가의 부흥에 도움을 주기 위해 안간힘 썼다는 걸 생각해보면 새삼 우리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박상익은 밖에서 도움을 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안의 세계'도 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특히 요즘은 인터넷 덕분에 독자들과의 피드백이 원활해진 만큼 얼치기 번역가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능력 있는 번역가들이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안과 밖이 함께 개선의지를 보인다면 번역은 온건히 번역이라는 글자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일 게다.


이 시대는 번역에 무관심했다. 쉬운 일이라 생각했고, 오역이나 비문이 보이면 '번역의 힘'을 내뱉으며 그것을 냉소했다. 그러면서도 번역의 중요성을 두 번, 세 번 언급했다. 번역이 왜 중요한지를 묻고 대답하는 데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들은 분명 소중한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박상익의 체험에서 얻은 모두의 문제에 시선을 돌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

중요한 것을 왜 하찮게 다루는가, 그럴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어떻게 해야 그곳을 정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논의가 핵심이 돼야 한다. <번역의 반역인가>의 마지막 문장처럼 "번역은 결코 반역이 아니다"라는 확신이 나올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

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 지음,
푸른역사, 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