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생활 9년, 가장 절망적인 순간

나무들을 대신해 땅 투기꾼들을 고발합니다

등록 2006.03.06 09:53수정 2006.03.0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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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톱 소리는 전주곡에 불과했습니다. 밭 가장자리 둠벙 쪽에서 쿵 소리가 났습니다. 뛰쳐나가보니 포크 레인이 옆 산을 까뭉개는 작업 도중에 큰 바위덩어리 하나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였습니다. 요즘 한창 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을 키우고 있는 둠벙 바로 옆 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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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좋아 하시네, 땅 투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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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 작업하는 산 위에서 갑자기 우리 밭 옆 개울로 바위덩어리 하나가 쿵 떨어졌다. ⓒ 송성영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엔진 톱 소리 요란하게 소나무들을 베던 다음날,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포크 레인이 쳐들어왔던 것입니다. 밤나무가 심어져 있는 밤나무 산에 멀쩡한 밤나무를 베고 거기다가 몇 그루의 어린 밤나무를 심기 위해 산허리를 까뭉개 길을 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무를 심겠다더니 이 양반들이 시방 뭐하는 짓거리 들여!”

멀쩡한 밤나무들이 뚝뚝 부러지고 뽑혀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비탈진 산허리를 까 나중에 산사태라도 나면 어쩔 것이냐며 소리소리 질러댔습니다. 산사태가 나면 우리 집은 한순간에 흙더미로 뒤덮여 버릴 것이었습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산주인은 손으로 한 삽 한 삽 파헤쳐 일궈 놓은 밭으로 포크 레인을 끌고 들어왔습니다. 포크레인은 밭을 아스팔트처럼 딱딱하게 다져놓고 개울을 막은 바위덩어리를 힘겹게 꺼내놓았습니다. 나는 산주인으로부터 관리기로 우리밭을 다시 원상 복귀 해놓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산 주인이라는 사람이 손에 뭔가를 챙겨들고 불쑥 나타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토종닭인데요”
“뭐요! 당장 가져가요!”

이번에는 잠바주머니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습니다.

“이 아저씨가 징말! 뭘 착각해도 한참 착각했구먼...”
“아 왜 이러십니까? 그냥 받아 주세요!”

“그거 주머니에 다시 넣지 않으면 사진 찍어서 확 고발해 버릴 거니까, 당장 여기서 나가요! 쌍욕 나오기 전에...”

“닭이라도...”
“닭 같은 소리 말고, 더 이상 산이나 까뭉개지 말아요.”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나는 포크레인으로 짓깔아뭉갠 밭을 왜 원상 복귀 시키지 않고 있냐고 따져 묻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돈까지 챙겨 온 걸 보면 분명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말했습니다.

“어제 포크 레인으로 길 낸 옆 산 있잖아,부동산 업자들이 둘러보더라.”
“작년부터 뻔질나게 드나들던 그 땅 투기꾼들?”
“그 사람들인 것 같았어.”

산을 까뭉개던 그 날 저녁, 1년 전부터 오락가락했던 부동산 업자들이 찾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이라크를 폐허로 만들고 난 자리에 시찰 나온 미국의 부시처럼 휘휘 둘러보고 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이미 산 주인이 따로 있는데 그들이 둘러볼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밤농사를 짓겠다는 산주인이 밤도 심기 전에 하루 이틀 사이에 그들, 땅 투기꾼으로 짐작되는 부동산 업자들에게 다시 산을 되팔겠다고 내 놓았을 리는 만무하잖습니까? 결국 나는 산 주인이라는 사람과 부동산 업자는 한 패거리일 것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인간들이 혹시?”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들어왔습니다. 전날 포크레인 작업으로 흉측하게 변해 버린 옆 산으로 작은 아이 인상이와 함께 단숨에 뛰어 올라 갔습니다.

옆 산에는 뒷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작은 오솔길에는 솔향 짙은 소나무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었고 땅 바닥에는 솔잎들이 두툼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 길은 나뿐만 아니라 노루며 토끼, 그밖에 알 수 없는 그 어떤 수많은 뭇 생명들이 다닙니다. 어쩌다 아랫집 유씨 할아버지가 지게 작대기를 앞세우고 나무하러 다니는 길이기도 합니다.

나는 가끔씩 그 오솔길을 걸으며 정신 나간 인간처럼 나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에 휩싸여 오솔길 앞에서 우뚝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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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때마다 대화를 나눴던 오솔길 주변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 송성영

평화, 그 자체였던 오솔길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엔진 톱이라는 소총 부대가 쳐들어 왔고 이번에는 포크레인이라는 탱크 부대가 쳐들어와 아예 쑥대밭을 만들어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포크레인이 지나친 자리는 마치 미군들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난 자리처럼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 오솔길 따라 잡목 숲을 지나면 ‘노루의 숲’이 나오는데 ‘노루의 숲’ 옆 산까지 완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침략자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 병사들을 홀딱 벗겨놓고 잔혹하게 고문했듯이 작은 산 하나가 홀딱 벗겨져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고문을 당한 나무들이 처참하게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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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하나 통째로 폭격을 맞은 것만 같다. ⓒ 송성영

내가 산행을 다니면서 수없이 인사말을 주고받았던 나무들. 이제 나무들은 더 이상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모로 쓰러져 내게 뭔가를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신음소리를 내며 날 원망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내게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습니다.

‘너희들 인간들을 믿고 좋은 기운을 줬더니 보답하는 게 겨우 이거냐! 나쁜 놈들! 너도 똑같은 놈여, 이 나쁜 놈아!’

노루며 토끼, 뭇 생명들은 그래도 몸을 피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겠지만 나무들은 꼼짝 못하고 당했습니다. 폭격을 맞은 것처럼 참혹하게 쓰러져 있었습니다. 뒤틀리고 찢기고 뽑히고 짓이겨져 나뒹굴며 피를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아, 인간들의 탐욕스러움에 치가 떨렸습니다.

‘어떻게 하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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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나는 속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만 몇 번이고 되 뇌이고 있었습니다. 시골로 들어와 9년을 살면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살육할때 처럼 가슴 아프고 화가 나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요즘 시대에 땅값 비싼 산 속에서 화전민처럼 농사짓겠다고 산을 개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건 절대로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남아도는 게 농토인데 왜 하필이면 땅값 비싼 지역을 골라 멀쩡한 산까지 허물어가며 농사짓겠다고 달려들겠습니까? 산을 허물고 입막음을 하기 위해 돈 봉투까지 들고 온 것을 보면 땅 투기꾼들의 소행이 분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돈 봉투를 들고 온 '산주인'이라는 사람은 어쩌면 땅 투기꾼의 꼭두각시에 불과할 것이었습니다. 침략군들이 본격적인 침탈을 위해 꼭두각시 정부를 내세우 듯이 말입니다.

땅 투기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 마치 미국의 부시 정부를 연상케 합니다. 이라크의 석유를 노리고 수많은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전쟁광, 미국의 부시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땅 투기꾼들 역시 수많은 생명들이 숨 쉬고 있는 산을 자본을 앞세워 참혹하게 까뭉개고 턱도 없는 이득을 챙기려 하고 있으니까요.

투기꾼들에게 폭격 맞은 자리에는 군데군데 은행나무 묘목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행나무 묘목은 땅 투기 공략을 위한 전초전일 따름입니다. 물증은 없지만 위장술에 불과할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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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들이 뛰놀던 숲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들이 파헤친 땅 중에는 다른 사람 땅도 포함돼 있다. 어떤 속셈이 있는 것일까? ⓒ 송성영

그들이 까뭉갠 자리 중에는 현재 내가 밭을 갈아 먹고 있는 밭주인의 땅까지 침범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 땅 말고도 또 다른 사람의 땅까지 포함돼 있는지도 모릅니다.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땅을 자신들의 땅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들, 땅 투기꾼들은 자신들의 땅을 좀 더 넓게 보이게 하여 땅을 팔아먹겠다는 속셈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들은 전문적인 땅 투기꾼,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법의 허용 범위를 넘어 산을 함부로 까뭉갠 그들, 나는 전문 땅 투기꾼으로 짐작되는 그들을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고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숲을 빼앗긴 노루며 그 숲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 인사말을 주고받았던 다정한 나무들, 모든 것을 내주는 나무들을 위해. 무엇보다도 앞으로 그들, 땅투기꾼들에게 희생될지도 모르는 또 다른 숲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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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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