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좋아 하시네, 땅 투기지"

투기꾼들 땅놀음에 뒷산 노루 숲이 사라졌습니다

등록 2006.03.03 12:28수정 2006.03.0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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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노루의 숲에서 아이들과 진돗개 갑순이와 함께 ⓒ 송성영

"웨에엥! 왜에에 앵앵! 엥엥!"

갑자기 우리 집 옆구리에 우뚝 솟은 산자락을 도려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엔진 톱 소리가 분명했습니다. 방문을 열고 옆 산자락이 잘 보이는 뒷밭으로 부리나케 뛰쳐나갔습니다. 대나무 비닐하우스 저만치 산 능선에서 푸르게 서 있던 덩치 큰 소나무 한 그루가 맥없이 쓰려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슴이 불안하게 뛰고 두 다리의 힘이 쏙 빠져나갔습니다. 산을 까뭉개고 택지 조성을 하겠다는 땅 투기꾼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우두커니 서서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소나무 한 그루가 내 가슴을 때리며 '우두둑' 소리를 내며 무너졌습니다.

"저런 쌍…."

욕설이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하지만 나무를 베는 품꾼들이 뭔 죄가 있겠습니까? 멀쩡한 산을 까뭉개고 땅 투기 바람을 일으켜 땅값을 올려놓는 투기꾼들이 못된 인간들이지요.

투기꾼들이 땅 값을 올려놓게 되면 우리 동네에서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식구를 포함한 우리 동네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남의 땅에 얹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왱왱! 에엥, 앵앵엥!"

톱날이 비명을 질러댈수록 속 깊이 박혀 있던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습니다. 내 안에 기분 나쁜 불안감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우리 식구가 거주하고 있는 연기·공주 지역이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확정 발표되던 그 무렵이었습니다. 행정수도를 옮기느니 마느니 할 때 잠시 주춤했던 투기꾼들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투기꾼들은 먼저 우리 식구들의 안식처이기도 했던 '노루의 숲'을 노렸습니다. 아침 산행을 하다가 가끔씩 노루와 마주치게 되는 숲, 언젠가는 수북하게 알이 담긴 청동 오리 둥지까지 발견하기도 했던 숲, 산딸기가 즐비했던 그 '노루의 숲'이 무참히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무참히 사라진 숲 공터엔 노루의 발자국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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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노루의 숲이 사라져 버리고 노루 발자국만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 송성영

말끔하게 정리된 빈 공터에는 노루들의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잃게 된 노루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적어도 운동장처럼 너른 공터를 신나게 내달리지는 않았을 것이었습니다.

보금자리를 잃은 노루들을 위해 내가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저 노루의 숲을 파헤칠 때 나온 장단지 굵기만한 몇 가락의 칡뿌리를 끌고 힘없이 산을 내려올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돌담장을 끼고 산에 오르는 땅 투기꾼들로 짐작되는 사람들을 뒤쫓아 갔습니다. 그 며칠 사이 쓰레기를 버리고 마늘밭을 함부로 짓밟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마늘 밭을 밟고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니들 오늘 잘 걸렸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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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노루의 숲 근처에 버려진 쓰레기들 ⓒ 송성영

"야 양반들아! 거기 함부로 밟으면 어떡혀! 마늘 심어 놨는디."
"안 보여서."

"그럼 땅 속에 있는 마늘이 보이남, 근디, 저 산 너머 땅 당신들이 샀슈?"
"그런데요?"

"당신들 그 땅 사놓고 투기 하려는 거 아뉴?"
"투기는요, 거기다가 밭 좀 일궈 먹으려구 샀습니다."

전혀 농부처럼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다짜고짜 시비조로 물었더니 '노루의 숲'을 구입해서 까뭉갠 이유가 농사를 짓기 위해서였답니다.

"밭을 일궈요? 산 속에다가 밭을 일궈 먹는다구유?"
"나중에 집이나 한 채 짓고 조용히 살려구요."

"아무것도 없는 산 속에서 밭 일구고 살겠다고요? 그리고 거긴 길도 나지 않는 맹지라서 집을 짓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는디, 나야 말로 조용히 살고 싶응께 그만 덜 들추고 다니셔."
"에이 왜 그러십니까? 이웃이 생기면 좋잖습니까?"

"이웃 같은 소리 마슈, 댁들 같은 이웃 필요 없응께."
"사실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데요, 이곳에 투자 좀 할까 합니다."
"투자? 투자 좋아하시네, 뭔 놈의 투자요 투자는, 순전히 땅 투기지."

이틀이 멀다하게 땅 보겠다고 오락가락하는 인간들에게 질려 있던 나는 그들을 아예 땅투기꾼으로 몰아세웠습니다. 시골 생활 9년, 나는 이미 꼬장꼬장한 동네 아저씨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넘 동네에서 허튼 짓 했다가 잘못 걸리면 용 코 없이 당하게 되는.

"저 산 너머 땅 아저씨가 살래요? 거기 사 놓으면 몇 년 안에 큰 돈 됩니다."

"맹지라는데 무슨 큰돈을 번다고, 내가 촌놈이라고 사기 치지 마슈!"
"지금은 맹지지만 그 앞산에다가 주택단지를 조성할 예정인데, 주택단지 들어서면 자동적으로 그 땅하고 연결되니까, 그때 가서는 맹지가 아니지요, 싸게 해 드릴게, 우리가 구입 한 거에서 한 삼 백만 붙여주쇼."

"이 양반들이! 당신들이 땅을 구입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걸로 아는데 삼 백을 더 달라고?"
"그래도 심부름 값은 내셔야지."

"땅 한 평 살 돈도 없지만, 당신들 투기꾼들 맞구먼."
"우린 법적으로 하자 없으니까, 그런 소리 말아요."
"법적으로 하자 없다고? 좋소, 만약 법적으로 하자 있으면 당신들 알아서 하슈."

사실 법적인 하자가 있다 하여도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투기꾼으로 짐작되는 부동산 업자들이 낯선 사람들을 몰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집 옆 산을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 말대로 우리 집 옆 산에 주택단지를 조성한다면 우리 집 옆 개울에서는 더 이상 반딧불이며 가재며 다슬기를 볼 수 없게 될 것이었습니다.

투기꾼들에게 생명은 한 푼 어치의 가치도 없을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들 역시 산을 까뭉개고 개울을 사라지게 하는 대신에 거기다가 정원수를 심고 연못을 만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나무들과 연못 속의 생물들의 가치는 단순히 자본의 가치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게 될 생명들은 그저 땅이나 집의 가치를 높이는 자본의 노리개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뻔질나게 드나들던 부동산 업자들의 발길이 한동안 뜸했습니다. 옆 산을 사겠다고 나서는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부동산 업자들도 포기했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푸르게 서있던 소나무들이 댕강댕강...

그 불안감은 현실화 되었습니다. 사흘 전, 옆 산자락을 베는 엔진 톱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던 것입니다. 옆 산 능선에 늘 푸르게 서 있던 소나무들을 댕강댕강 베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벌목을 마치고 내려오던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우리 집 옆으로 흐르는 개울을 둘러보더니 선심 쓰듯 내게 말했습니다.

"여기 복개 공사를 하면 좋겠네요."
"뭐요? 어딜 복개 한다구요?"

"노깡 묻어서 복개해주면 아저씨도 좋잖아요? 다니기도 편하고"
"복개 공사 같은 소릴 하구 있네!"

나는 엔진 톱 소리에 머리끝까지 올라와 있던 화를 토해냈습니다. 그렇잖아도 몇 년 전 마을 앞개울을 복개 공사하는 바람에 그 많던 물고기들이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해 멸종 위기에 놓여 있는데 아예 개울을 뒤덮어 버리겠다니, 참으로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습니다.

"누구 맘대로 복개 공사를 한다는 거요, 우리 집 앞을!"
"나도 산을 오르내리려면 필요하고요."

"그럼 당신이 이번에 저 산을 산 사람요? 투기꾼 놈들이 고새 팔아먹었구먼, 저 산 까뭉개고 주택 단지 만든다면서요."

"에이, 아녀요. 행정수도 들어오는 연기군에 사는데요. 2억 보상 받아 가지고, 1억 5천에 저 산을 샀어요, 컨테이너 박스라도 놓고 살아 보려고."
"컨테이너 박스 놓고 터는 무슨 터를 잡아요? 땅 투기하려고 그러면서…."

부동산 업자들이 결국 산을 팔았던 것이었습니다. '노루의 숲' 역시 그가 샀다고 합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땅 주인이 뒤바뀐 것이었습니다. 빈 공터가 되어 버린 '노루의 숲'에는 은행나무를 심겠다고 합니다.

노루의 숲에는 지난 가을 무렵, 짐작컨대 땅 투기꾼들이 '위장술'로 보리를 심었습니다.(농사지으며 조용한데 집짓고 살아보겠다던 인간들이 보리가 한 뼘도 올라오기도 전에 땅을 팔아 치웠으니 투기꾼들이 아닙니까?) 그나마 노루들의 싱싱한 먹을거리가 있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그마저 사라져 버릴 위기에 놓였던 것입니다.

"투기는 무슨 투기를 한다고 그럽니까? 나도 여기서 농사져서 먹고 살려고 그럽니다."
"농사요? 뭐 땜에 농사짓는 사람이 비탈진 산을 사요, 까뭉갤라구 그러지."
"밤나무 좀 심어서 먹고 살려고..."

"저 산에 멀쩡한 밤나무가 많은데 거기다 또 밤나무를 심겠다구요?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하슈, 그리고 밤나무 몇 그루 심어놓고 먹고 살겠다는 말을 나보고 믿으란 말유? 혹시 투기꾼들 대리로 나선 거 아뉴? 당신들 멀쩡한 산 까뭉개고 투기할 생각 마슈, 가만히 안 있을테니께."

나의 협박은 그렇게 싱겁게 끝났습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났습니다. 더 이상 옆 산 능선에서 나무 찢기는 엔진 톱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희준이네 외할머니집 쪽 산 아래, 우리 집에서 보면 왼편, 좌청룡 쪽에서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습니다.

멀쩡한 밤나무가 많은데 또 밤나무를 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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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왼편 희준이 외할머니네 주변, 가재가 살고 있는 개울에 커다란 콘크리트 관을 설치하고 대나무숲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마저 까뭉개고 있습니다. ⓒ 송성영

가재가 살고 있는 멀쩡한 개울을 메우고 복개 공사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개울에 커다란 콘크리트 관을 묻고 좀 더 길을 넓혀 차량이 쉽게 다닐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말로는 그냥 길을 넓히는 것이라 하지만 산을 까뭉개기 위한 1차적인 시도가 분명했습니다. 산을 까뭉개 택지를 조성하기 위해 공사도로를 만들겠다는 심보였습니다. 개울을 건너 대나무 숲 사이로 아주 작은 오솔길이 이쁘게 들어서 있었는데 그마저 무자비하게 허물고 있었습니다.

"어휴, 사람들이 땅을 엄청 못살게 하네!"

초등학교 5학년인 큰 아이조차 학교 길을 나서면서 불안한 낯빛으로 한마디 툭 던져놓았습니다. 나 역시 가슴이 허물어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수십년, 아니 수백년 전부터 살았을지도 모르는 개울의 가재들, 그들은 단 몇 시간만에 땅 투기꾼들의 탐욕을 닮은 육중한 콘크리트 관에 짓눌려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산을 까뭉개려면 법적인 조건을 갖춰야 하기에 땅 투기꾼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 동네를 감싸주고 있는 좌청룡 우백호 산자락은 지금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을 조여 오는 투기꾼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다.

투기꾼들의 뒷조사를 해가며 피 터지게 승산 없는 싸움을 벌여나갈 것인가, 아니면 숲을 빼앗긴 노루처럼 집 주변을 빙빙 돌다가 좀 더 안정된 보금자리를 찾아 떠날 것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짐짓 도인 흉내를 내며 코 앞에서 산이 까뭉개질 때까지 뒷짐지고 살다가 그때 가서 결정할 것인가.

대부분 땅 한 평 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동네 사람들의 봄은 그렇게 '자본주의 만만세'를 외치는 포크레인의 무자비한 굉음에 짓눌려가고 있었고 나는 점점 보금자리 숲을 잃고 있는 노루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원고를 올리고 나면 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급자족하기 위해 밭에 나설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땅 투기꾼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땅 투기꾼이라고 함부로 단정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부동산 업자가 농사를 짓겠다고 산을 구입해 놓고 불과 반년만에 산을 팔아 치웠다는 것. 2억 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농부가 농사지어 한 해 소득 백 만 원도 채 안 되는 비탈진 산을 1억 5천만원에 구입했다는 것. 거기다가 백만원도 채 안 되는 수입을 위해 농로를 만들려고 복개 공사까지 하겠다니 이걸 믿어야 합니까? 땅투기꾼들이지.

덧붙이는 글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땅 투기꾼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땅 투기꾼이라고 함부로 단정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부동산 업자가 농사를 짓겠다고 산을 구입해 놓고 불과 반년만에 산을 팔아 치웠다는 것. 2억 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농부가 농사지어 한 해 소득 백 만 원도 채 안 되는 비탈진 산을 1억 5천만원에 구입했다는 것. 거기다가 백만원도 채 안 되는 수입을 위해 농로를 만들려고 복개 공사까지 하겠다니 이걸 믿어야 합니까? 땅투기꾼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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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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