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어떤 맛인지 아십니까?

겨울의 끝자락, 비닐하우스를 개업하다

등록 2006.02.27 14:29수정 2006.02.2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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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로 만든 비닐하우스를 개업했습니다. ⓒ 송성영

밭일을 하다말고 흙을 만져 봅니다. 겨울내 얼었던 흙이 포슬 포슬 부드러워졌습니다. 오랜만에 흙을 만지고 있자니 겨울잠에서 이제 마악 깨어난 기분입니다.

흙은 순수한 생명덩어리입니다. 한참동안 흙을 만지고 있노라면 내가 흙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흙, 그 생명덩어리가 나를 어루만져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생명덩어리 흙은 겨우내 잠들어 있던 나를 일깨웁니다.

나는 흙을 파헤치고 흙은 나의 뼈속 깊숙한 곳까지 부드럽게 애무해 줍니다. 흙을 어루만질수록 굳어 있던 몸이 풀려갑니다. 하지만 흙과 함께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온종일 흙과 함께 하다 보면 온몸이 아픕니다. 그 아픔을 견뎌내는 순간 흙은 온갖 잡스러운 것으로 채워져 있던 머리 속까지 비워 줍니다.

지난 가을, 대나무를 쪄 일주일에 걸쳐 지어 놓은 비닐하우스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대나무 비닐하우스가 무슨 관광상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랑삼아 주절거렸습니다.

"이거유, 일주일 걸렸슈, 동네 사람덜이 혀를 차더군요, 요즘 대나무로 하우스 세우는 사람이 없잖유, 3년도 못쓰고 새로 만들어야 하니까, 한심했겠쥬, 그래도 나는 좋습니다, 저번에 눈이 엄청 내렸잖유, 비닐하우스 무너져 내릴까봐 새벽에 장화 신구 나와서 눈 치우는데 환장 허것더라구요, 한 쪽 면을 쓸어내리고 돌아서면 다시 쌓여 있고…."

어쩌구 저쩌구 푼수처럼 말잔치를 늘어놓다가 이런 쓰잘떼기 없는 말들은 이제 그만 해야지 굳게 결심해 놓고 또 다른 누군가가 찾아오면 예의 그 비닐하우스 타령을 늘어놓기 일쑤였습니다.

겨우내 거름을 내겠다고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놓고는 내내 입방아만 찧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한심스러웠습니다. 그만큼 사는 게 따분했습니다. 겨울잠 자는 곰 새끼 마냥 늘 반복되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왼종일 컴퓨터 앞에 있다가 부시시한 모습으로 키 낮은 사랑방 문을 열고 나오면 아내가 그럽니다.

"어휴, 곰 한 마리가 굴 속에서 나오네"

그동안 비닐하우스 안에 상추 한 가지 심어 놓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것조차 잘 크지 않았습니다. 냉해를 핑계 삼아 아예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땅을 그냥 내버려 둔 것은 참 잘한 짓이었습니다. 땅도 쉬어야 하질 않겠습니까?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며칠 전 부터 흙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밭 가장자리 둠벙에는 아침나절 여전히 종이장 같은 살얼음이 둥둥 떠 있었지만 한나절 비닐하우스 안은 후덥지근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 였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오후에 일을 했습니다. 비닐하우스 문짝을 활짝 열어 놓고 부지런히 봄맞이 준비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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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엽토에 쌀겨를 버무려 놓으면 마치 시루떡 같습니다. ⓒ 송성영

먼저, 산에서 부엽토를 거둬와 쌀겨와 버무려 거름을 만들었습니다. 부엽토와 쌀겨를 고루 섞다 보면 노란 콩가루를 버무려 만드는 시루떡 같습니다. 하루 이틀 정도 지나면 흰 시루떡, 백설기처럼 됩니다. 허옇게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하고 김이 모락모락 오릅니다.

이 거름이 사나흘 지나면 섭씨 60도까지 열이 올라갑니다. 냄새도 좋습니다. 불쾌한 퇴비 냄새가 나질 않습니다. 우리 집의 새로운 식구, 곰순이(중국견 차우차우) 녀석이 혀를 낼름거리며 이름 하여 '시루떡 거름'(내가 만든 이름, 보통 유기농 하는 분들은 '섞어 띄움 비료'라 하더군요)을 먹겠다고 달려들 정도로 구수한 냄새가 납니다.

우리집 아이들조차 코를 벌름거리는 이 거름은 일테면 흙을 좀 더 맛있게 해주는 양념이라 할 수 있는데 화학 조미료가 아닌 순수한 자연 조미료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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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여 '시루떡 거름' 냄새가 구수하다보니 곰순이 녀석이 혀를 낼름거리고 달려듭니다. ⓒ 송성영

작년에도 그랬듯이 올해도 역시 미생물이 왕성한 이 '시루떡 거름'을 부지런히 만들어 온갖 작물들을 다 키워 낼 것입니다. 올해는 특히 야채를 많이 심어 상품화 시킬 요량입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밭을 갈아놓고 나의 사부님, 아랫집 유씨 할아버지의 조언을 받아 배추씨와 알타리 무, 청경채 씨를 뿌렸습니다. 그러다가 욕심이 생겨 3월 중순에 파종해야 할 오이씨를 시험 삼아 종지에 넣어 놓고 다시 사부님을 찾아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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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초액에 담궈 놓은 토종, 조선 오이씨와 종묘상 오이씨 ⓒ 송성영

"비닐하우스에 심었는디두 안 될까유? 하우스 안에다가 따로 비닐을 덧씌우면 안될까유?"
"에이, 아무리 하우스 안이라지만 너무 일러, 2월에도 먹다만 김장독이 얼어터진 다는 옛말이 있는디…."
"오이씨를 반만 심었쓴께, 20일쯤 더 있다가 나머질 심으면 되겠네요."

이번에 심은 오이씨는 작년 가을 마곡사 어디쯤에서 얻은 조선 오이씨였습니다. 물과 300분의 1로 섞은 목초액에 씨를 불려 종지에 넣었습니다. 종지에 사용한 상토 역시 직접 만들었습니다. 완전 발효된 '시루떡 거름'과 '밭 흙', '아궁이에서 나온 재' 거기다 부엽토 아래 고운 흙을 버무려 만든 상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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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녀석들도 한몫을 단단히 합니다. ⓒ 송성영

우리 집 아이들도 한 몫을 단단히 했습니다. 산에 올라가 부엽토를 한 자루씩 긁어 왔고 그것을 쌀겨에 뒤섞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씨를 뿌릴 밭에 작은 돌들을 골라내기도 했습니다.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표정 밝은 녀석들에게 물었습니다.

"흙 만지니까 기분좋고 재미있지?"
"재미있어."
"학교 가는 것보다?"
"응, 더 재미있어."

뱃속 편하게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인데, 그냥 이렇게 아이들과 재미있게, 기분좋게 살면 그만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땀에 절은 몸을 기분 좋게 씻었습니다. 기분 좋게 땀을 흘리게 되면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집니다. 밥맛 역시 끝내 줍니다. 땀 흘리지 않고 거저먹고 사는 인간들, 남 등쳐먹고 사는 인간들은 뭔 맛으로 밥을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그렇듯이 오늘도 역시 우리 집 밥상은 1식 3찬, 소박하고도 조촐했습니다. 하지만 밥맛 하나만큼은 최고였습니다. 손모를 심어 수확한 쌀과 콩으로 지은 콩밥에 김치, 밭 가장자리에 성급하게 올라온 벌금자리 겉절이와 시래기국, 밥상 위의 먹을거리 모두가 우리 식구가 직접 구한 것들었습니다.

삽질 몇 번 했던 녀석들은 시래기국을 더 먹겠다고 빈 그릇을 내밉니다.

"봄에는 입맛이 거시기 하다던디, 이놈들 입맛이 히얀허네, 잉."

적게 벌어 가난하지만 이 맛으로 삽니다. 땅을 돈으로 환산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맛볼수 없는 기묘한 맛입니다.

덧붙이는 글 | 밭일을 하던 며칠 동안 얼굴이 뚱뚱 붓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온몸이 욱신욱신 쑤셔왔습니다. 사실 밭일 때문에 얼굴이 부어 오른 것이 아니라 얼굴은 이미 부어 있었습니다. 겨우내 컴퓨터 앞에 앉아 온갖 잡머리만 굴리고 있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흙을 만지면서 얼굴이 뚱뚱 붓고 있다는 느낌은 얼굴에 몰려 있던 독소가 빠져나가는 현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온몸이 욱신거린 것은 굳어 있던 근육들이 풀려나가는 현상이었고요. 마치 얼었던 흙이 부드럽게 풀려나갈때 온갖 생명들이 생동하듯이 말입니다. 흙을 대하지 않았다면 내 몸 상태를 잘 몰랐을 것입니다. 3급수에 살아가면서도 1급수로 착각하며 끄떡없이 잘 살아가고 있듯이 말입니다.

머리가 찌끈거리고 온몸이 굳어 있다면  부드러운 흙(농약을 치지 않은 살아 있는 흙)을 대하며 땀을 흘려 보십시오. 제 경험으로 불 때 분명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단 생명을 대한다는 기분좋은 마음으로 일해야 좀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밭일을 하던 며칠 동안 얼굴이 뚱뚱 붓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온몸이 욱신욱신 쑤셔왔습니다. 사실 밭일 때문에 얼굴이 부어 오른 것이 아니라 얼굴은 이미 부어 있었습니다. 겨우내 컴퓨터 앞에 앉아 온갖 잡머리만 굴리고 있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흙을 만지면서 얼굴이 뚱뚱 붓고 있다는 느낌은 얼굴에 몰려 있던 독소가 빠져나가는 현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온몸이 욱신거린 것은 굳어 있던 근육들이 풀려나가는 현상이었고요. 마치 얼었던 흙이 부드럽게 풀려나갈때 온갖 생명들이 생동하듯이 말입니다. 흙을 대하지 않았다면 내 몸 상태를 잘 몰랐을 것입니다. 3급수에 살아가면서도 1급수로 착각하며 끄떡없이 잘 살아가고 있듯이 말입니다.

머리가 찌끈거리고 온몸이 굳어 있다면  부드러운 흙(농약을 치지 않은 살아 있는 흙)을 대하며 땀을 흘려 보십시오. 제 경험으로 불 때 분명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단 생명을 대한다는 기분좋은 마음으로 일해야 좀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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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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