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더보기 저는 입학식의 기억이 없습니다. 유치원은 입학하지 않아서 당연히 기억이 없고, 입학을 하였다 하더라도 너무 어려서 기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분명히 입학은 했는데도 입학식에 대한 기억은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 입학식을 치르고 입학을 하였을 텐데, 왜 기억이 없을까를 생각해보니, 입학식이 당시의 저에게 어떤 깊은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입학식이 새내기들에게 기억되게 하는 어떠한 의미도 학교에서 제공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그 의미를 학교에서 주고자 하였으나 새내기들의 가슴 속에 남기에는 어림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올해 제 큰 아이가 중학교를 입학하게 되어, 졸업식에 가 주지 못했는데 입학식도 가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시간을 내어서 입학식에 참석해 보았습니다. 갑자기 온 봄샘 추위로 난로 몇 개를 가지고는 도무지 데워지지 않는 넓은 체육관에서, 학부모에게 배정된 자리가 너무 적어서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벌벌 떨면서 입학식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 입학식은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차렷, 열중 쉬엇'이나 '신입생 일어서', '앉아' 하는 명령형의 구령도 똑같고, 국민의례는 한 치의 변화도 없었습니다. 또한 지루하게 이어지는 '축사 메들리', 교장 선생님과 동창회장 축사 등에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경례하는 권위주의적인 모습도 똑같으며, 입학 허가 선언이나 선후배 상견례(상견례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등도 어김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아이들은 경직되었고, 때로 잡담하고 눈치를 보는 정도였습니다. 따뜻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이것이 유독 저만의 느낌이었을까요? 저러한 입학식을 나도 겪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우울해졌습니다. 저기 앉아 있는 제 아들도 새로운 출발의 선에 서있는 불안한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지 못하고, 학교의 철학과 지향점을 새내기들에게 아름답게 각인시켜주지 못하는 형식적인 입학식은 아마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사진보기 ▲아름답게 꾸며진 대안학교의 입학식장정일관 그러나 대안학교의 입학식은 달랐습니다.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가 3월 2일 오후 2시에 가진 입학식은 단순한 행사가 아닌 깊은 만남으로 이루어냈기 때문입니다. 소중하게 행사장을 꾸며 우선 편안하게 입학식을 맞이하게 하였습니다. 입학식을 시작하기 전에 새내기들을 한 명씩 불러 입장을 시키며, 사회자가 그 새내기에 대한 간단한 소개말도 대중들에게 들려주고, 입장한 새내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장미꽃 한 송이에 입학 축하의 글을 매달아 건네주며 환영해 주었습니다. 새내기들은 입학식장에 입장을 하면서 이미 따뜻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큰사진보기 ▲새내기들에게 선사할 장미송이들. 선생님들의 마음이 스며서 향기가 날 것 같다.정일관 그리고는 새내기 생활 훈련 때 찍은 사진들을 재구성한 화면을 시청하며 꿈틀거렸던 새내기들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확인하는 시간도 가졌고, 축하 공연 순서를 두어 선배가 후배에게 플루트를 연주해 주었고, 새내기 중에 오카리나를 잘 하는 아이가 있어 연주도 하게 하였습니다. 큰사진보기 ▲한 명씩 입장하는 새내기에게 장미 송이를 주면서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다.정일관 저도 마음을 내어 축시 <보물 같고, 새봄 같고, 아침 햇살 같은>을 힘주어 낭송하면서 입학식장에서 만난 새내기들이 서른다섯 명의 보폭으로 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음을 축하하였고, 토론하고, 생각하고, 협동하면서 살아가자고 아이들에게 요청하였습니다. 그 축시는 곧 저의 마음이었고, 소망이었고, 기도였습니다. 큰사진보기 ▲밝은 표정으로 입학 축하의 글을 주고 받는 교장 선생님과 새내기 대표정일관 원경고등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나와서 새내기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많이 웃겠습니다" "많이 감사하겠습니다" "많이 사랑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사랑의 퍼포먼스를 하면서 온몸으로 아이들을 맞이하였습니다. 큰사진보기 ▲선생님들의 새내기 환영 퍼포먼스. "여러분, 사랑합니다."정일관 입학식이 끝나고 이어진 것은 새내기 환영회입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난 후 강당에 모여, 서로 어색한 선후배 관계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강사의 유능한 진행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눈치만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첫 만남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의 마음이 엿보여 안타까웠습니다. 큰사진보기 ▲즐거운 어울림. 사랑의 풍선 던져주기정일관 그러나 그 다음날로 이어진 새내기 환영회는 관계가 훨씬 부드러워져서 오전에는 강당에서 함께 '노래 배우기'를 하며 '동전 옮기기', '빙고 게임', '풍선 터트리기', '범인 찾기' 놀이를 하면서 놀았습니다. 특히 발에 매달아놓은 풍선을 발로 터트리는 게임을 하며 아이들은 많이 밝아진 듯 하였습니다. 큰사진보기 ▲우리 단단히 얽혀서 한덩어리가 됩시다.정일관 그리고 오후에는 운동장에서 '굴렁쇠 릴레이', '단체 줄넘기', '여왕벌 닭싸움', '다수결 OX 퀴즈' 놀이를 하며 즐거운 오후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굴렁쇠를 제대로 굴리지 못해 엉거주춤하였지만 좋은 체험이 되었다고 했으며, 단체 줄넘기는 매우 재미있는 경기가 되어 아이들이 숫자를 외치는 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큰사진보기 ▲터질 듯한 아이들의 웃음.정일관 새내기 환영회 마지막 프로그램은 저녁 시간에 갖는 '촛불 의식'입니다. 선배와 후배가 각각 짝을 지어 서로 손을 잡고, 촛불을 들고 들어와 둥글게 앉은 다음 각자의 소망을 생각하는 명상을 하였습니다. 미리 준비한 명상의 말씀이 오직 촛불의 힘으로 밝아진 강당에 울려 퍼져 아이들로 하여금 숙연하게 자신의 내면과 미래와 관계를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명상이 끝난 후, 선배가 후배에게 찹쌀떡을 선물하였고, 늘 아름다운 합창 <사랑으로>를 함께 부르며 새내기 생활 훈련과 입학식, 그리고 새내기 환영회로 이어지는 프로그램들이 모두 끝났습니다. 큰사진보기 ▲굴렁쇠 굴러가듯, 우리의 학창 시절도 잘 굴러 가야 안되겠니?정일관 대안학교의 새내기들은 이렇게 환영을 받으며 학교로 들어와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 일주일 간 공동체 생활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이 정도면 대안학교의 새내기들은 먼 훗날에도 입학식을 기억할 수 있겠지요? 자신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기 위해 애쓴 선생님들과 선배들의 정성을 느끼며 가슴 따뜻해질 수 있겠지요? 큰사진보기 ▲우리 모두의 소망과 기원을 안고 타오르는 아름다운 촛불이여!정일관 저는 운동장에서 벌써 선후배가 어울려서 농구도 하고 축구도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인권을 생각합니다.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 아이들이 동원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행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교육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간절함과 정성스러움과 훈훈함이 더 소중한 교육의 본질이 아닐까 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추천1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정일관 (jasimmita) 내방 구독하기 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가습기살균제가 죽인 딸... 저는 '4등급' 아버지입니다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명태균, 김영선에게 호통 "김건희한테 딱 붙어야 6선... 왜 잡소리냐" [단독] 김태열 "이준석 행사 참석 대가, 명태균이 다 썼다" [단독] 윤석열 모교 서울대에 "아내에만 충성하는 대통령, 퇴진하라" AD AD AD 인기기사 1 전국 최고 휴게소 행담도의 눈물...도로공사를 향한 외침 2 쌍방울 법인카드는 구속된 김성태를 따라다녔다 3 엄마 아닌 여자, 돌싱 순자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4 "꽝" 소리 나더니 도시 쑥대밭... 취재기자들도 넋이 나갔다 5 '윤석열 퇴진' 학생들 대자보, 10분 뒤 벌어진 일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새 출발, 입학식과 그 언저리 풍경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인기기사 전국 최고 휴게소 행담도의 눈물...도로공사를 향한 외침 쌍방울 법인카드는 구속된 김성태를 따라다녔다 엄마 아닌 여자, 돌싱 순자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꽝" 소리 나더니 도시 쑥대밭... 취재기자들도 넋이 나갔다 '윤석열 퇴진' 학생들 대자보, 10분 뒤 벌어진 일 "관광객들, 경치는 좋은데 물은 똥물이라고..."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임신한 채 회사 다닌 첫 직원" 유명 회계법인 부대표에 오른 비결 [단독] 홍준표 측근, 미래한국연구소에 1억 빌려줘 "전화비 없다고 해서" 국회 앞에서 100명 동시 삭발... 왜?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