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욱 장편소설> 762년 - 5회

표류(漂流)

등록 2006.03.06 14:54수정 2006.03.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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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로 건너간 왕영명은 곧바로 군문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줄곧 대황을 달리며 발해의 건국에 장애가 되는 세력들과 싸웠다. 말갈족, 거란족, 그리고 해족들을 차례로 무찌르며 포로를 잡아왔다.

얼어붙은 홍개호를 건너기를 수 차례. 흑수부의 모반으로 발리주로 출병했을 때는 사흘 밤낮을 눈보라 속에서 떨며 진군한 적도 있었다. 이런 왕영명의 업적과 충성심을 높게 산 대조영은 그를 북좌우위(北左右衛)의 대장군으로 임명했다. 그만큼 왕의 신임이 두터웠던 것이다. 왕의 신임은 발해의 건국자인 대조영에 이어 그의 아들 무왕에게까지 이어졌다.


시조 대조영에 이어 왕권을 이어 받은 무왕은 그 영토를 넓히고 발해의 안정적인 기틀을 잡기 위해 군사력을 크게 강화시켰다. 이를 두려워 한 당나라는 발해에 조공을 바치던 흑수부 지역을 흑수주로 만들고 장사(長史)를 책임자로 보내 다스리게 하였다.

이로써 발해 땅인 흑수부가 완전히 당에 편입되어버린 것이다. 무왕은 이 문제를 놓고 신하들과 의논한 끝에 당나라에 소속된 흑수부를 치기로 했다. 출병을 감행한 것이다. 무왕은 동생 대문예에게 흑수부를 치라고 명령했다. 그는 발해의 군세가 당나라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흑수부 정벌을 반대했다.

하지만 무왕은 동생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출병을 독촉했다. 대문예는 어쩔 수 없이 출병을 했지만, 그는 흑수말갈의 경계에 이르러 글을 올려 출정을 중지해달라고 다시 간청했다. 무왕은 종형인 대일하(大壹夏)를 대신 장수로 삼아 보내고 대문예를 불러들였다. 동생이 친 당파라고 생각하여 죽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대문예는 이를 눈치를 채고 길을 바꾸어 당나라로 도망쳤다. 대문예는 당에 가서 발해의 당나라 침입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현중은 그에게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이라는 높은 벼슬을 주었다.

이에 무왕은 많은 재물을 풀어 자객을 모집하여, 암살단을 조직하였다. 은밀하게 대문예를 죽이라고 지시하기 위해서였다. 왕신복의 아버지 왕영명은 자청하여 그 자객단을 이끌고 낙양으로 들어갔다. 그는 오랜 수소문 끝에 천진교(天津橋) 남쪽에서 대문예를 만났다. 왕영명의 칼이 날렵하게 대문예를 찔렀으나 대문예는 죽지 않았다. 칼이 빗맞은 것이다.

현종은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대대적으로 수색을 벌였다. 그는 하남 땅에서 발해에서 온 자객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왕영명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서 발해에 돌아왔지만 그는 이미 실의에 빠져 있었다. 대문예를 암살하지 못했을 뿐더러 자신이 끌고 간 부하들이 모두 죽어버린 것이다.


상심에 빠진 왕영명은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다. 무왕이 간절히 만류했지만, 왕조차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왕영명은 수도와 떨어진 솔빈부의 조그만 마을에서 아들과 함께 지냈다. 그는 발해에 와서도 재혼을 하지 않고 신라에 남겨둔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왕신복 또한 어머니 없이 자라 그 그리움이 간절했다. 하지만 왕영명은 내색하지 않고 강한 모습만 아들이게 보이려고 애썼다.

왕신복은 어렸을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민첩하여 자신도 아버지의 뒤를 잇는 무인이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칼과 활을 잡고 무예를 연마했다. 그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충분히 관직에 나가 무장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각종 무술 대회에 참가하여 관리들의 신임을 받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무관이 되어 발해의 영토를 확장하고 호시탐탐 발해를 노리는 외부의 적을 섬멸하고 싶었다.


그런 부푼 꿈에 차있던 왕신복의 계획에 제동을 건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 왕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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