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위에 떠 있는 망월산성

충북의 명소 <청풍문화재단지>를 둘러보며

등록 2006.03.06 19:24수정 2006.03.0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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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가 노닐었다는 박달재를 넘어가면 제천시 청풍면에 자리잡고 있는 <청풍문화재단지>가 나온다. 명월산 기슭에 병풍처럼 자리잡고 있는 이 문화재단지는 그야말로 충북의 문화재 보존 가치가 가장 큰 곳이다.

사실 1983년에 충주댐 건설을 할 때만 해도 많은 문화재들이 물 속에 잠길 뻔했다. 그것들을 3년 동안 이곳으로 옮겨 그대로 복원한 것이 많다. 그 가운데에는 한벽루와 청풍석조여래입상이 있고, 팔영루와 청풍향교, 금병헌와 응청각, 금남루 그리고 오래된 고택 4동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지방 기념물로 지정된 망월산성과 지석묘를 비롯해 생활유물 1900점이 있다. 제주도에 가면 '제주민속박물관'이 있는데, 그야말로 이곳은 충북민속박물관에 해당되는 곳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팔영루' 모습입니다. 이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용맹스런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인듯 싶구요, 왼쪽으로 청풍호반의 모습을 기꺼이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팔영루' 모습입니다. 이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용맹스런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인듯 싶구요, 왼쪽으로 청풍호반의 모습을 기꺼이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나 싶습니다.권성권
이곳 단지를 들어가는 입구는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산 아랫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매표소가 그 하나의 입구이고, 다른 하나는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팔영루(八詠樓)가 그것이다. 둘 다 매표소이긴 하지만 팔영루는 조금은 색다른 곳이다.

팔영루는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으로 숙종 28년에 창건된 곳이다. 팔영루라 새겨져 있는 현판은 당시 부사였던 민치상이 직접 쓴 글씨이고, 출입문 천장에는 멋진 호랑이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당시 재난을 막기 위해 그렸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대부분 산 아래쪽 매표소보다는 이곳 팔영루로 드나들곤 하는데, 아마도 이곳으로 드나들면 왠지 호랑이처럼 자신의 기상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인지 모르겠다.

가까이 보이는 게 금남루(錦南樓)이고, 저 멀리 보이는 게 금병헌(錦屛軒)이다. 금남루는 조선 순조 때에 창건되어 1985년에 이곳 문화재 단지 안에 이전되었고, 명월정 또는 청풍관이라고도 하는 금병헌은 숙종 7년에 창건된 목조건물이다.
가까이 보이는 게 금남루(錦南樓)이고, 저 멀리 보이는 게 금병헌(錦屛軒)이다. 금남루는 조선 순조 때에 창건되어 1985년에 이곳 문화재 단지 안에 이전되었고, 명월정 또는 청풍관이라고도 하는 금병헌은 숙종 7년에 창건된 목조건물이다.권성권
그 팔영루를 출발점으로 돌면 산 아래자락에 똬리를 틀고 있는 SBS 촬영 세트장이 있고, 위쪽으로 올라올라 가면 수몰될 뻔했던 여러 가지 돌기둥들이 나란히 서 있는 지석묘를 볼 수 있고, 그곳을 조금 지나면 한벽루와 금병헌 그리고 고개 넘어 망월산성을 볼 수 있다.

망월산성(望月山城)은 해발 373m의 높이를 자랑한다. 청풍 대교 남쪽 망월산 정상부와 지맥을 둘러싼 지대에 세워진 작은 성인데, 지금은 서남 편에 있는 것들만 원형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이 망월산성 내에는 한때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토기들도 많이 발견됐다고 한다.


망월산성 모습입니다. 이곳이 이 문화재단지 내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 위에서 보면 사방이 트여 있고, 또 뒤로 보면 멋진 청풍호반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산성인 줄 착각하게 된답니다. 그만큼 멋진 곳이죠.
망월산성 모습입니다. 이곳이 이 문화재단지 내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 위에서 보면 사방이 트여 있고, 또 뒤로 보면 멋진 청풍호반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산성인 줄 착각하게 된답니다. 그만큼 멋진 곳이죠.권성권
놀라운 것은 이 산성이 이 단지 내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최정상인데, 그 때문인지 이곳 산성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모든 게 환하게 트여 있음을 알게 된다. 더욱이 산기슭 반대편을 둘러보면 청풍 호반이 그대로 펼쳐져 있어서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그곳 망월산성을 한 바퀴 돌고 오면 필히 들러보아야 할 곳이 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충북의 고가(古家)를 자랑하는 여러 집들이다. 여기에는 "ㅁ"자형도 있고, "ㄱ"자 형도 있고, "-"형도 있고, 그리고 "ㄷ"자형도 있다.


그 고택들을 한 발 한 발 천천히 둘러볼 무렵, 때마침 경주에서 여행 온 할아버지들이 한 집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분들을 인솔하고 이것저것 안내해 주는 분도 따로 있었는데, 그 분은 마이크를 잡고서 몇 가지 해설도 곁들이고 있었다. 그 분들을 따라서 나도 귀를 쫑긋 세워 보았는데, 참 재미난 이야기 하나를 해 주고 있었다.

명성왕후로 간택된 그 청풍 김씨의 고택입니다. 'ㄷ'자형 집인데,  참 아늑하고 그윽하지요. 경주에서 올라 온 할아버지들이 마이크를 들고 해설하는 분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했던지 간간히 박수도 쳐 주고 있는 모습이예요.
명성왕후로 간택된 그 청풍 김씨의 고택입니다. 'ㄷ'자형 집인데, 참 아늑하고 그윽하지요. 경주에서 올라 온 할아버지들이 마이크를 들고 해설하는 분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했던지 간간히 박수도 쳐 주고 있는 모습이예요.권성권
그것은 조선왕조 17대 왕인 세자비 간택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안내를 하는 분은 그것이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전해 오는 이야기임을 밝혔는데, 그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현종은 지방 나들이로 청풍 호반을 택하여 거닐게 되었고, 그 비경에 도취한 나머지 그곳에 살고 있는 청풍 김씨의 집에 하룻밤 묵게 되었다. 청풍 김씨는 낯모르는 선비와 그를 따르는 식솔들을 지극 정성으로 대접했다. 그러나 현종은 이미 그 집 살림살이가 변변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그런데도 그 청풍 김씨와 딸아이는 자신들을 너무나도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정성어린 사랑의 대접에 감동 받은 현종은 훗날 세자비 간택할 일이 있을 때에, 그 딸아이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미모도 빼어났을 뿐 아니라 총명과 덕스러움이 가히 현종의 마음에 꽉 들어찼기 때문이다.

그 뒤 세자비 간택할 날이 닥쳐오자, 현종은 각 팔도에 암행어사를 보낸다. 암행어사로 하여금 팔도에서 가장 빼어나고 현숙한 처녀를 물색하여 왕실로 들이도록 했던 것이다. 청풍 김씨의 딸도 팔도의 8명중 한 명으로 뽑혀, 왕실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그 당시 조정 신료들은 팔도에서 올라 온 처녀들에게 세 가지 문제를 내게 된다. 첫째는 무슨 꽃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가, 둘째는 동네마다 고개가 있는데 무슨 고개가 가장 험준하고 힘든 고개인가,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보석 중에 가장 빛나는 보석은 어떤 보석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 질문을 들은 팔도 처녀들은 저마다 자기 생각을 대답한다. 꽃들도 저마다의 여러 꽃들을 입에 올렸고, 각 지방에서 가장 험준한 고개들도 나름대로 이야기를 했고, 그때까지 보아 온 가장 멋진 보석들도 서로들 입에 올리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청풍 김씨는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것 같은 엉뚱한 대답을 곧잘 한다. 첫 번째 꽃 가운데 가장 예쁜 꽃은 '목화'요, 두 번째 고개 중에 가장 힘든 고개는 '보릿고개'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가장 빼어난 보석은 '소금'이라고 답을 했다.

'대망'과 '장길산'을 찍은 촬영 세트장입니다. 집들이 눅눅해 보이지만 그래도 아늑하고 한껏 아담한 것 같지 않나요.
'대망'과 '장길산'을 찍은 촬영 세트장입니다. 집들이 눅눅해 보이지만 그래도 아늑하고 한껏 아담한 것 같지 않나요.권성권
조정 신료들은 한 바탕 웃으면서도 뭔가 깊은 게 담겨 있을 것 같아서 그 연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청풍 김씨는 나름대로 조리 있고, 더욱 공손한 대답을 한다.

목화는 꽃이 소담하고 예쁠 뿐 아니라 추위에 무릎 쓴 사람들에게 따뜻한 털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가장 예쁘고 가장 값진 꽃이고, 팔도마다 나름대로 힘든 고개들이 있겠지만 자신이 겪은 가장 힘든 고개는 배고픔과 굶주림에 치를 떨었던 '보릿고개'이고, 그리고 '소금'이란 오래도록 있어서 그것이 금처럼 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음식의 맛을 내는 데에도 가히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귀한 것이라는 대답을 한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 주는 그 분은 이야기 말미에, 그 청풍 김씨의 딸이 결국 세자비로 간택되었는데 그녀가 바로 명성왕후(明聖王后)였다는 것까지 밝히고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명성왕후가 이곳 청풍에서 태어난 여인이었다니, 더욱이 이곳 고택에서 자란 여인이었다니, 실로 가슴이 쿵쿵 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 놀란 가슴을 끌어안고, 나는 단지 아래에 있는 촬영장 세트를 둘러보았다. 이 세트장은 SBS특별기획드라마인 <대망>과 <장길산>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이 세트장을 세울 때만 해도 산뜻하고 푸릇푸릇 활기가 넘쳤건만, 지금은 세월과 함께 그 빛이 누렇게 뜬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집들과 주막들이 한결 고풍스럽고 더 아늑해 보이는 면도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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