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철없는 어른들을 나무라다

[현장] 유쾌·발랄 초등학교 성교육 현장... "어른들은 왜 그래요?"

등록 2006.03.12 19:54수정 2006.03.1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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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초 6학년 5반 아이들 42명이 예절실에서 성평등 수업을 듣고 있다.
이호초 6학년 5반 아이들 42명이 예절실에서 성평등 수업을 듣고 있다.오마이뉴스 이민정

"여학생 친구들은 곧 월경을 경험하게 돼요."
"그럼 피 나요?"
"남학생들, 발기하나요?"
"발기가 뭐예요?"


9일 오후 경기도 안산 이호초등학교 4층 예절실. 6학년 5반 아이들 43명이 성평등 교육을 받고 있다. 선생님의 '노골적인' 질문에 학생들의 '천진난만'한 답변이 이어진다.

"'성'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냐"고 묻자 아이들은 "여자·남자" "임신" "아기"부터 "여장 남자" "변태" "성희롱", "성추행" 등 다양한 답변을 쏟아냈다. 월경, 발기도 모르는 아이들이 언제 '성추행'이라는 말까지 알았나 싶다.

"섹스(sex)라는 것도 있다"고 선생님이 말하자 아이들은 "아∼"하며 수줍어한다. 선생님의 입에서 '몽정' '음경' '자궁' 등의 단어가 튀어나오자 아이들의 수줍은 탄성은 조건반사처럼 터져나왔다. 뭔지도 모르면서 뭐가 그리 수줍은 것일까.

노란색 물감으로 나타낸 생리혈, 연두색 점토로 빚은 남자성기

기자의 초등학교 시절 성교육 시간을 떠올려봤다. 당시에는 '성평등 수업'이라는 용어도 쓰지 않았다.

남녀 학생들을 갈라 여학생들은 검은 커튼이 쳐진 시청각실에 모았다. 필름의 노후 탓인지 빗물같은 것이 주룩주룩 내리던 스크린이 어렴풋이 떠오르고, 거기에는 여성의 자궁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내용만 성교육이지, 상영 분위기로만 봐서는 딱 음란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2006년. 성평등 수업을 하는 교실은 햇볕이 밝게 들어왔다. 담임인 이정선 교사가 일회용 생리대를 펴자 "기저귀다"라며 개구쟁이들이 크게 웃는다.

교직 생활 13년째인 이 교사는 "어른들이 쓰는 거니까 기저귀는 아니지"라고 수정한 뒤 여자의 자궁에서 왜 한달에 한번씩 피가 나는지 설명했다. 노란색 물감으로 생리혈을 나타내자 사내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엄마가 시켰던 생리대 심부름의 뜻을 알겠다는 것일까.


이 교사가 형광 연두색 칼라믹스(고무찰흙과 비슷한 탄력적인 점토)로 남성의 성기 모형을 만들기 위해 주물럭거리자 아이들은 산만하다. 몇몇 아이들은 외면하며 끼리끼리 떠들었고, 재잘대던 여자 아이들은 고개를 숙인다. 가장 앞줄에 앉아있던 김문영양은 "남자 성기를 (모형으로) 보여줘서 놀랐다"고 말했다.

기자마저 다소 민망한 성평등 수업을 감행한 이 교사의 심정은 무엇일까.

"생리를 처음 했을 때, 나이드신 부모님은 '오빠들 옆에 가지 마라' '남자랑 손도 잡지 마라'고 걱정하셨다. 그게 올바른 성교육인가? 비디오테이프나 책만 보여주면서 아이들을 방치하기보다는 마음을 열고 소통하면 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 교사는 또 "아이들이 성추행·성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성만 기억하고, 성기 중심인 음란물을 교과서처럼 흡수하면 성에 대한 부정확한 지식만 갖는다"고 우려했다. 이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변화에 잘 대처하고, 당당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앗! 제 꽃 망가뜨리지 마세요"

9일 이호초등학교 6학년 5반에서 실시한 성평등 교육중, 반 아이들이 소중한 것 네가지를 적은 종이꽃을 칠판에 붙였지만, 담임인 이정선 교사가 손으로 구겨버렸다. 이교사는 소중한 자신의 몸이 다치면 남도 똑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했다.
9일 이호초등학교 6학년 5반에서 실시한 성평등 교육중, 반 아이들이 소중한 것 네가지를 적은 종이꽃을 칠판에 붙였지만, 담임인 이정선 교사가 손으로 구겨버렸다. 이교사는 소중한 자신의 몸이 다치면 남도 똑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했다.오마이뉴스 이민정
성장기의 신체변화·남녀간 성관계 등에 대한 내용으로 수업 한 시간을 채울 무렵, 성폭력에 대한 이 교사의 설명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 교사는 아이들에게 네 개의 꽃잎이 달린 종이꽃을 한 송이씩 나눠줬다. 아이들은 꽃 중앙에 자신의 이름을 쓴 다음 각각의 꽃잎에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썼다.

아이들의 쓴 것은 나, 가족, 생명, 친구, 우정 등이다. 간간이 돈이라고 쓴 글씨도 보였다. 이 교사는 색색깔의 종이꽃을 칠판에 붙인 다음 갑자기 양손으로 종이꽃 하나하나를 구겨버린다. 앉아있던 아이들은 놀라 "악" 하며 한참동안 고함을 질러댔다.

이 교사의 돌발행동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남에 의해 망가졌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직접 느끼라고 한 것. 피해 정도를 체험해야 가해자도, 제2의 피해자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욕 나와요" "너무 불쌍해요", "엄청 짜증나요"라고 반발했다.

이 교사는 아이들에게 "강제로 성교를 하자는 것은 명백한 성폭행"이라며 "살해와 똑같은 범죄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는 "성의 소중함에 대해 알면, 성폭력 예방교육은 쉽다"며 "내 몸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성평등 교육도 결국 인권을 가르치는 내용으로 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성의 소중함 알면 성폭력 예방교육은 쉽다"

이날 수업으로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됐다"는 이정훈군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삼가주세요"라며 '철없는' 어른들에게 따끔하게 경고했다. 성평등 수업의 '약발'을 제대로 받은 셈이다.

도근범군도 최근 불거진 성범죄 사건에 대한 소감을 묻자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거 안 해도 잘 살잖아요"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 교사는 "어린 아이일수록 성평등 교육에 익숙해지면 성추행이나 성폭력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면서 "저학년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치면, 한국의 성폭력 사건이 줄어들 것"이라고 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초·중등학교의 경우, 매년초 교육부에서 '성폭력 범죄와 처벌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성평등 교육 실시를 권고하고 있지만, 수업자료나 교사 대상 성교육 미비로 사정은 여의치가 않다. 체계적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는 못하고 대부분 학교가 보건시간이나 담임에게 부여된 재량수업 시간을 통해 근근히 성평등 교육을 이어가는 실정.

이 교사는 "나이드신 선생님들은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 일부 교사들은 마땅한 교재가 없어서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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