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완도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장보고의 고향, 남해 완도 남망산 신흥사를 가다

등록 2006.03.10 17:41수정 2006.03.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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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당에 들어가 문짝을 활짝 열면 완도읍은 물론 바다 주변에 섬돌처럼 떠있는 크고 작은 섬들까지 한 눈에 들어옵니다. ⓒ 임윤수


승과 속을 어우르는 도서 속 임해가람

어드메뇨 어드메뇨, 이 땅 끝이 어드메뇨?
업 쌓느라 허겁지겁 연 맺느라 우왕좌왕.
악업인지 적덕인지 구분조차 못하면서
아등바등 쌓노라니 윤회고의 짐 일진데,
짐 되는 줄 모르면서 연 매듭을 좇는구나.

가도 가도 뭍이더니 이제 겨우 땅 끝일세.
한숨 한 번 크게 쉬니 대교건너 섬이구나.
연도 맺고 업도 쌓은 번뇌의 땅 벗어나니
그곳이 어드메뇨 남도의 끝 완도로다.

갈매기는 끼룩끼룩 속절없다 울어대고
철썩이는 파도소린 하릴없는 염불소리!
넘실대는 물굽이엔 속세청춘 실려 가고,
불어오는 삭풍 속에 섬 전설이 실려 있다.

피어나는 동백꽃에 부처님의 자비 담겨,
불어주는 해풍 따라 천길만길 홍포하니,
어드메뇨, 어드메뇨 자비도량 어드메뇨?
자비의 향 피어나고 부처님이 계신도량,
남망산에 있다기에 아름아름 찾아가니,
자비도량 거 있구나. 임해가람 신흥사가.

마음한번 가다듬고 마음에 눈 떠서보니
사바세계 어우르는 임해도량 바로일세,
멀어서 못 갈거나 턱이 높아 못 넘겠나.
산책하듯 올라서니 남망산 위 청정도량.
승가인가 속가인가 어림하기 쉽잖구나.

한 걸음에 다다르니 속가인 듯 착각하나
속가혼잡 막연하니 산중 도량 틀림없다.
굽어보는 저만치에 속세 완도 한눈이고
바라보는 저만치에 남해도서 올망졸망.

아옹다옹 사는 소린 속세인들 일상생활
목탁소리 또독 똑똑 승가 도량 염불소리.
승과 속을 어우르는 임해가람 예 있으니
그 말이 딱 이로다. 신흥사를 일컫는 말.

/ 임윤수
어줍지만 땅 끝에 꼬리를 달고 있는 전남 완도 신흥사엘 들렸다 돌아오는 내내 머리에 떠올리던 풍경이며 소회입니다. 섬에 있는 임해가람이라고 해도 철썩이는 파도가 보이고, 오고가는 연락선이 보이며, 끼룩대는 갈매기 소리가 들리는 절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섬에 있는 산중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섬에 있는 절엘 가더라도 오가는 길엔 바다를 볼 수 있지만 정작 법당에서는 여느 산사처럼 산중기도를 해야 하는 게 일반입니다.

그러나 완도 신흥사 경내에 들어서면 마음의 체증이 뻥 뚫리듯 눈길이 후련해집니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바다에 있는 또 다른 섬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완도읍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고가는 연락선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눈길이 뻥 뚫리니 침침하도록 회색건물에 갇혔던 몸과 마음도 그 후련함으로 내닫기를 하는 모양입니다. 언제 이렇듯 한 도읍지를 눈 아래로 볼 수 있었던가? 언제 이렇듯 맑고 깨끗한 도서 속 풍경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가 싶습니다.

완도도 이젠 연륙교가 완공되니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다가갈 수 있는 뭍 꼬리 섬이 되었습니다. 섬은 섬이되 뭍에 연륙교 꼬리를 달았으니 뭍섬이라 해도 될 듯싶습니다. 국토가 넉넉지 않으니 작은 땅덩이 국토라 말들 하지만 땅 끝까지 가는 길은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닙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국도를 달리려니 무수한 산을 지나고 강을 건넙니다. 휙휙 지나는 고개고개에 눈길이 멈춥니다. 돌아가는 굽이굽이에 눈도장을 찍느라 마음이 분주합니다. 땅 끝에 산이 있고, 산 끝에 하늘이 맞닿아 있습니다. 지평선을 배경으로 들녘 저만치에 올망졸망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완도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신흥사는 완도군 완도읍 성내리 168번지 남망산(南望山) 중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932년 김성렬 스님이 불로사(不老寺)라는 절로 창건했으나 중간에 신흥사(新興寺)로 절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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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는 국토의 땅 끝에 꼬리처럼 이어진 대교를 지나 들어가는 완도읍내에 있습니다. ⓒ 임윤수

커다랗게 '장보고의 고향 완도'란 글씨가 써진 아치형 입간판을 지나 대교를 건너면 완도로 들어서게 됩니다. 섬에 난 도로들은 바닷가를 따르기도 하고, 산을 넘기도 하며 아리랑 춤이라도 추듯 구불구불 휘어지고 굽었습니다. 대교를 건너 20여분 그렇게 내달리니 완도 선착장에 도착합니다.

여객선과 고깃배들이 이웃해 있어 주변이 조금은 혼잡합니다. 선착장 근처가 완도의 제일 번화가며 군 소재지입니다. 이따금 입출항을 알리는 여객선들이 뿌~뿌~ 거리며 고동을 불어댑니다. 아무래도 여객선 터미널 근처는 활동적입니다. 차들이 빵빵거리고 시간에 촉박한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칩니다.

복작거리는 부두에서 산 쪽에 자리한 완도군청을 지나 경사진 언덕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신흥사입구 표지가 보입니다. 급하게 꺾어지는 왼쪽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서면 신흥사 경내로 들어서게 됩니다. 입구 양쪽에 서 있는 동백나무는 때깔 좋은 초록색 이파리에 빨간 동백꽃들이 빼곡해 장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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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을 맞아 빨갛게 피어난 동백이 소담스럽게 피었습니다. ⓒ 임윤수

노란 꽃술을 가득 담고 있는 빨강색 동백꽃이 소담스럽게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원색의 초록 이파리에 빨강 꽃 그리고 노란 꽃술이 갓 칠한 단청만큼이나 산뜻합니다. 몇 걸음 더 들어가 경내로 들어서면 승속의 경계점에 서게 됩니다. 왼편 아래쪽은 속세의 도심지며 오른편 산 쪽은 부처님 도량이니 깎아지른 듯한 비탈이 승속을 경계합니다.

완도읍에서 신흥사를 가려면 산 중 깊숙한 산사를 찾을 때처럼 걸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차를 이용해도 되지만 군청에서 20여분만 걸으면 되는 거리니 어떤 방법이든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곳입니다. 도심서 가깝다니 도심 속 혼잡함을 떠올리기 쉬우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도심에 가까우나 속세의 혼잡함과 번거로움은 단연코 떨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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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는 승가와 속가를 어우를 듯 도심이면서도 도심이 아닌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임윤수

경내 마당으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한 계단 높게 대웅전이 있습니다. 대웅전은 팔작지붕 전각으로 그리 오래 되진 않은 듯 단청이 산뜻합니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에는 쌍사자 석등과 3층 석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대웅전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셨고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을 좌우 협시불로 모셨습니다.

완도사람이 때론 통곡하듯 기도하고 뒹굴 듯 매달리는 의지 대상인 석가세존이 봉안된 법당입니다. 기쁠 땐 감사한 마음으로, 간절할 땐 애절한 마음으로 찾아들어 기도하고 염불하던 수행의 공간입니다.

법당 한쪽엔 영가(靈駕)된 이들의 사진이 나란합니다. 어찌되었건 죽음세계로 들어가니 원통한 마음이니, 그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던 자식이거나 부모 또는 아내거나 남편의 무상한 기도가 머무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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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는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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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천불전에는 목불보살상도 모셔져 있었습니다. ⓒ 임윤수

대웅전 어간문을 열면 하심당(교육관) 추녀와 완도 앞바다가 조우해 있습니다. 다섯 문짝이 달린 백색회벽에 얹혀진 맞배지붕의 흑색기와 골 주름이 바다를 배경으로 나란히 줄을 맞췄습니다. 하심당 용마루야말로 승속의 경계를 가르는 경계선입니다. 경내 쪽으로 내린 빗줄기는 도량으로 흘러들지만 바깥쪽으로 내린 빗물은 기왓장 골 주름을 타고 읍내 쪽 속세로 떨어질 듯합니다.

대웅전 뒤쪽은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마당 우측엔 야트막한 황토 요사가 있습니다. 머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그 처마가 야트막합니다. 바람 많은 섬이기에 그리 얕게 지었는지, 드나들며 몸 낮춰 하심(下心)하라고 그리 낮췄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하나 내려다보이는 싱글 지붕이 마음을 걸터앉아 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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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당과 종각 저 너머로 남해 바다와 완도읍이 있습니다. ⓒ 임윤수

마당에 있는 범종루도 야트막하니 참 인상적입니다. 거반 정사각형에 팔작지붕을 하였으니 그동안 보았던 장방형의 팔작지붕 전각들에 비해 남다른 느낌입니다. 음통도 묻지 않았지만 예서 울리는 범종소리는 산으로 바다로 너울지며 퍼질 겁니다. 그 울림 속에 완도읍이 들어가니 범종의 음통은 뱃사람 가슴이나 아낙들 심성에 묻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울려주는 범종소리는 희망의 종소리입니다. 저녁에 들려오는 범종소리는 노곤함 달래주는 위안의 종소리가 될 겁니다. 고기잡이 나가는 어부들에겐 만선의 풍악이며 무사귀환의 기원소리입니다. 속앓이 하는 아낙들에겐 친정어머니나 오누이의 마음처럼 도닥거려주는 손길이나 마음으로 다가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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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당으로 들어오는 햇살에는 대웅전 부처님의 커다란 가르침도 함께 할 듯합니다. ⓒ 임윤수

종루가 야트막해 범종이라도 치려면 허리 굽혀 드나들어야 하겠습니다. 범종루 뒤쪽, 대웅전 왼쪽에 있는 무단청 전각은 약사천불전입니다.

하심당에 들어앉아 덧문까지 열고나니 예가 바로 천하제일의 명당입니다. 바다에 섬이 있고 섬 주변에 바다가 있습니다. 섬 건너에 섬이 있고, 섬과 섬을 연결해 주는 또 다른 육교가 반듯하게 뻗어 있습니다.

완도사람들은 좋겠다는 부러움이 생깁니다. 이 좋은 도량, 벼르지 않아도 조금만 마음내면 언제든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도량이 지척에 있으니 말입니다. 사랑방처럼 들락거리며 마음 닦고 근심 덜어줄 도량이 지척이니 말입니다.

가끔, 아주 가끔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절도 있습니다. 큰맘을 먹어야 찾아갈 수 있는 먼 거리 때문에 먼 절도 있지만, 지척에 있으나 마음을 열어주지 않아 멀게만 느껴지는 절도 없지는 않습니다.

신흥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도량이 열렸고 찾는 이의 마음조차 활짝 열어줍니다. 그러기에 신흥사에서는 자칫 시끄러울 수도 있는 아이들에게 매년 '장보고 학교'를 열어줍니다. 어린이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니 그들에게 그들의 공간을 돌려주는 셈입니다.

신흥사는 완도의 전망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완도 전망뿐 아니라 야경도 볼 수 있습니다. 맑은 날이면 저 멀리 신지나 대둔산의 경치도 볼 수 있고, 어둠 박차고 올라오는 검붉은 태양의 떠오름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여럿스님이 신흥사서 수행하셨는데 현재 백양사(白羊寺) 방장이신 수산 지종 큰스님이 주석하셨음을 안다면 그 규모나 사세에 비해 역량 있는 사찰임을 느끼게 될 겁니다.

오금이 저리도록 쪼그린 마음, 오리무중인 듯 답답한 마음이면 길 한번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땅 끝에 섬이 있고 그 섬에 후련하게 마음 텅 비워줄 임해가람, 신흥사가 있습니다. 비운 마음에 찾아드는 건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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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주변이 한눈에 들어오듯 신흥사엘 가면 눈길도 마음도 후련해집니다. ⓒ 임윤수

덧붙이는 글 | 3월부터 방영이 시작된 TV드라마 '봄의 왈츠'가 촬영지는 완도의 부속도인 청산도입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채로 봄의 향연이 펼쳐질 청산도에 가려면 완도선착장에서 배를 이용하여야 합니다. 청산도에를 갈 계획이라면 신흥사도 함께 들려 완도읍을 한눈에 넣어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신흥사 찾아가는 길>1)서해안고속도로 → 목포 → 해남 → 완도 → 신흥사
2)경(중)부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광산IC → 국도 13번 도로 이용 → 나주 → 영암 → 해남 → 완도 → 신흥사

537-800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693 (061)554-2634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에도 실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3월부터 방영이 시작된 TV드라마 '봄의 왈츠'가 촬영지는 완도의 부속도인 청산도입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채로 봄의 향연이 펼쳐질 청산도에 가려면 완도선착장에서 배를 이용하여야 합니다. 청산도에를 갈 계획이라면 신흥사도 함께 들려 완도읍을 한눈에 넣어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신흥사 찾아가는 길>1)서해안고속도로 → 목포 → 해남 → 완도 → 신흥사
2)경(중)부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광산IC → 국도 13번 도로 이용 → 나주 → 영암 → 해남 → 완도 → 신흥사

537-800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693 (061)554-2634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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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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