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 가면 닭갈비? 닭발도 있어요!

춘천의 숨은 맛, 닭발과 갈매기살의 환상적 조화.

등록 2006.03.13 09:36수정 2006.03.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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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매콤한 양념이 쏘옥 배어 있는 닭발 볶음. 특히 부드럽게 뜯기는 맛이 일품이다.

매콤한 양념이 쏘옥 배어 있는 닭발 볶음. 특히 부드럽게 뜯기는 맛이 일품이다. ⓒ 나영준

호수, 안개, MT, 완행열차, 이외수, 그리고 드라마 <겨울연가>. 모두 춘천하면 떠오르는 단어와 영상들이다. 춘천은 사람들 기억 어느 곳에 머무르고 있을까. 첫사랑의 아픔을 떨쳐내고자 서둘러 집어탄 기차가 머무는 종착역, 상처 난 가슴에 독주를 들이부어 서투른 응급처치를 취하던 푸른 날의 기억들….


그렇게 춘천이라는 도시는 단순히 강원도의 도청소재지라는 지정학적 위치보단, 마음속 한 구석 텅 빈 그리움이 만들어낸 이상향에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고향을 떠난 이들이 한잔 술에 낮은 시골집 담장을 그리워하듯, 불현듯 턱없는 지난날의 추억이 떠오를 때면 누구라도 기억의 골목을 빠져나와 남실대는 소양강 물빛을 엿보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춘천의 대명사 중 한 가지 빼 놓은 것이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울 것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전 국민의 먹을거리 '춘천 닭갈비'가 있지 않을까. 지난 3일(금) 취재 차 춘천으로 향하는 길, 기꺼이 마중약속을 해준 그 지역의 박병순 시민기자를 떠올리며 저녁은 100% 춘천 닭갈비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가는 길 내내 '냠냠' 입맛을 다셨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소양강이 내려다보이는 호젓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치니 시간은 어둑히 저녁으로 향했고 어느덧 뱃속은 "배고파!"와 "닭갈비!"를 동시에 부르짖고 있었지만 그는 별 말 없이 <겨울연가>, 아니 닭갈비의 거리 춘천 명동을 휘적휘적 지나치고 있었다.

"배고파 죽겠는데 웬 닭발?", "일단 드셔보시죠"

a '서비스'로 내주는 맛 난 주먹밥,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양념에 찍어 먹어야 '제대로'다.

'서비스'로 내주는 맛 난 주먹밥,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양념에 찍어 먹어야 '제대로'다. ⓒ 나영준

"닭갈비 안 먹나요?(배고파 죽겠는데, 막국수도 먹고 싶단 말야)"
"어, 닭갈비도 맛있지만 그건 너무 빤하잖아. 닭발 어떨까? 좋은 집이 있는데."
"예, 그러죠, 뭐.(젠장, 그거 별로 뜯을 것도 없잖아…)"


툴툴대며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중심가 명동을 지나 강원도청과 시청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곧이어 지척 거리의 도심인데도 변방처럼 느껴지는 허름한 건물들이 숨은 그림처럼 하나둘 생겨난다. 어느 골목에선가 80년대의 노동가요가 태연히 흘러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슬며시 낯설음이 가시고 있었다.

a 가장 중요한 건 정성이라던 주인 아주머니.

가장 중요한 건 정성이라던 주인 아주머니. ⓒ 나영준

도착한 곳에선 '륭림숯불닭발'이라는 다소 낯선 상호가 기다리고 있다. 식당 안은 마당을 없애고 그 자리를 테이블이 차지한 듯하다. 입구 쪽,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았지만 잠시 부풀었던 기대가 아무도 없는 썰렁한 가게분위기에 다시 가라앉는다.


그래도 박 기자는 가끔 소주 생각이 날 때면 언제나 이곳을 찾는다는 귀띔을 하며 "여긴 원래 밤 장사다. 음식이 제법 괜찮으니 기대했던 닭갈비가 아니라고 서운해 하지 말라"며 마음을 들여다(?)본 듯 위로를 한다. 조만간 '자리'를 깔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닭발과 갈매기살 그리고 잔치국수 세 가지를 한꺼번에 주문했다. 먼저 식탁에 올려진 것은 닭발이다. 그런데 무언가 다르다. 보통의 닭발 요리를 보면 양념 바른 닭발을 숯불에 구워 먹지 않는가. 그런데 이곳에서는 다르다. 두툼한 무쇠 냄비에 담겨 나온다. 게다가 넉넉하고 벌건 고추장 양념도 흥건한 것이, 볶았는지 끊여 냈는지 구분조차 모호하다.

모든 음식이 그렇겠지만 닭발 요리만큼 양념이 맛을 좌우하는 것이 또 있을까. 두 끼를 건너뛴 시장기도 있었지만 새빨간 양념을 보고 있자니 입에 넣기도 전에 눈으로 보는 맛이 강렬한 유혹으로 느껴진다.

달궈진 냄비에 지글 지글 끊어 오르는 닭발을 작은 집게를 이용해 입에 넣는 순간, 그야말로 오묘한 맛에 사로잡힌다. 숯불에 양념이 타면서 익은 불 맛 하고는 분명 다르다. 맵지만 동시에 부드럽고 편안하게 입 안에 녹아든다.

코흘리개 시절, 놀이 후 먹던 떡볶이의 그 맛

a 일일히 손으로 다진 마늘로 간을 한 갈매기살 역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맛이다.

일일히 손으로 다진 마늘로 간을 한 갈매기살 역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맛이다. ⓒ 나영준

문득 어린 시절, 논에 물을 채워 넣은 스케이트장에서 혀가 빠지게 하루해를 보내고 먹던 떡볶이가 떠올랐다. 빈속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소주를 들이키게 만드는 맛이 과연 '중독' 급이다. 이어 등장한 접시를 보고서야 넉넉한 양념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주먹밥이다. 찰조를 섞어 참기름을 두른 주먹밥을 흥건하고 매콤한 닭발양념에 찍어 먹는다. 맛도 일품이지만 주인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이 밀려온다. 술만 들이키지 말고 쓰린 빈속을 달래라는 따스한 마음씨가 입안을 풍성하게 만든다.

술과 요리로 정신없이 주린 배를 채우니 그제야 세상이 '정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요리 비법을 아주머니(박정자·60)께 물으니, 처음 닭발을 식단으로 추가 하고 일품요리를 선보이겠다는 일념으로, 유명하다는 곳은 서울이며 지방 곳곳을 수소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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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영준

a 찌그러진 냄비에 내 주는 미역국을 포함 해 떡 벌어진 한 상. 왕후의 찬이 부럽지 않다.

찌그러진 냄비에 내 주는 미역국을 포함 해 떡 벌어진 한 상. 왕후의 찬이 부럽지 않다. ⓒ 나영준

1년 동안 그렇게 쏟아낸 돈이, 놀라지 마시라. 무려 일천이백만 원이란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엉뚱함과 오기가 발동, 독자적인 양념개발로 지금의 맛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비결은 '일급비밀'이란다. 그러나 닭발 하나하나에 칼집을 넣어 양념이 쏙쏙 배어들게 하는 정성만큼은 필요하다고 강조를 한다.

이어 숯불과 함께 갈매기살이 식탁에 오른다. 별 생각 없이 구워내니 자꾸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입맛이 그리 까탈진 편은 아니지만 평소 고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전혀 지루하지 않게 젓가락질이 이어진다.

그 맛의 비결이 무엇일까. 그랬다. 고기를, 기계에 간 것이 아닌 일일이 손으로 빻은 마늘에 버무린 것이다. 마늘의 향이 강해 자칫 고기 본래의 맛을 못 낼 수 있을까 싶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달큰하며 본래의 맛은 살린 반면 느끼함과는 '안녕'이었다. 어느덧 닭갈비 대신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에 대해 고개가 끄덕여졌다.

a 깊은 육수 맛의 국수로 마무리를 해 준다면 금상첨화.

깊은 육수 맛의 국수로 마무리를 해 준다면 금상첨화. ⓒ 나영준

마지막은 '즐거운 고문'이었다. 푸근한 멸치 육수에 말아 낸, 예쁜 빛깔의 잔치국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국물 색이 뽀얀 것이 마치 사골 육수에 담아 내온 듯하다. '이러면 안 돼!'라고 외치면서도 그릇째 들고 쉼 없이 들이마신다. 2차(?)를 생각하면 속을 조금 비워놓아야 되는데 싶으면서도 기어이 '꿀떡꿀떡' 마지막 국물까지 깔끔이 비워낸다.

춘천, 기차로 향하던 그 곳...

너무나 즐거운 식사와 기분 좋은 한잔의 부딪힘이었다. 이어 나긋한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천천히 거닐었고, 큰돈을 벌지 못해도 작은 작업실과 술 한잔의 행복에 기뻐한다는 초로의 화가를 만나 집념이 담긴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서울로 향하는 차 안. 등을 기댄 채 소양강과 맛난 만찬의 기억을 떠올리며 무심히 흐뭇해 하다, 순간 '아차'싶어 무릎을 쳤다. 일정의 모든 것이 좋았지만 단 하나를 빼놓았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a '소양강 처녀' 동상이 서 있는 소양 2교의 모습.

'소양강 처녀' 동상이 서 있는 소양 2교의 모습. ⓒ 박병순

그것은 오가는 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기차가 아닌 고속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젠가 춘천에 다시 가게 되면 열차를 통해 쓸쓸한 군불 냄새 나는 추억을 맛보리라는 다짐을 잊고, '조금 편하고 빠르다'는 이유로 버스 좌석에 몸을 기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한참을 입을 쩍쩍거리다, 다음엔 기필코 기차를 통해 춘천의 기억에 닿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맛나던 전날 만찬의 포만감을 고마워하다 까무룩 창가에 고개를 기대고 다시 춘천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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