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황새울 사진관을 아세요?

[인터뷰] 평택 대추리로 간 사진가 노순택

등록 2006.03.14 11:07수정 2006.03.1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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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새로운 이주민들이 운영하는 찻집 벽에 걸린 마을 주민 사진들. 사진가 노순택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사진관을 열고 이 곳 대추리 마을 주민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새로운 이주민들이 운영하는 찻집 벽에 걸린 마을 주민 사진들. 사진가 노순택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사진관을 열고 이 곳 대추리 마을 주민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 심은식

올해 36살인 사진가 노순택씨. 그는 얼마 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 사진관을 열었다. 이름하여 황새울 사진관. 간판도 없고 변변한 시설도 없다. 집주인이 떠난 빈집에서 그저 배경천 하나 걸고 사진을 찍을 뿐이다. 더구나 사진 값도 제대로 받지 않고 찍다 보니 인화비며 액자 값 걱정도 일쑤다.

처음에는 분단의 흔적과 영향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으로 대추리를 찍었지만 이제는 아예 마을 주민이 되어 사진을 찍고 있는 그. 과연 그는 왜 이 마을로 오게 되었을까?


작업의 대상에서 함께하는 이웃으로

그가 사진관을 연 이곳 대추리 마을은 현재 미군부대 확장과 이주를 위한 강제수용예정지다. 강제수용예정은 말 그대로 현 주민이 땅과 집을 팔지 않겠다고 해도 강제로 매입해 처리한다는 뜻.

맨손으로 갯벌을 메워 만든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이들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통지는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자기 고향, 자기 집에 사는 일이 이제는 불법이 되어 드나들기만 해도 7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 진다고 한다.

a 대추리를 포함 미군부대 이주를 위한 추가 예정지는 모두 349만평에 이른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저 땅에 아무것도 심을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대추리를 포함 미군부대 이주를 위한 추가 예정지는 모두 349만평에 이른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저 땅에 아무것도 심을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 노순택

결국 살던 사람들마저 정책에 등을 떠밀려 마을을 떠나는데 그는 왜 거꾸로 이 마을로 들어와 그런 위험을 자처하고 있을까? 노순택씨는 그 이유를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 함께 참여하고 싸워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는 사진기로 마을 어르신들의 영정 사진과 일상의 모습들을 찍었다. 긴박한 상황과 극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그분들의 일상과 고운 모습들도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웃 마을은 출장을 가서 찍기도 했다.


a 대추리에 사는 일흔아홉 살 강귀옥 할머니. 그는 이런 평범하고 순박한 마을 사람들을 투사로 만드는 현실에 대해 한탄했다.

대추리에 사는 일흔아홉 살 강귀옥 할머니. 그는 이런 평범하고 순박한 마을 사람들을 투사로 만드는 현실에 대해 한탄했다. ⓒ 노순택

"처음에는 이런 (연출)사진을 찍어보지 않아서 몹시 어려웠어요. 가능하면 웃는 모습을 찍어 드리고 싶은데 웃지 않으시니 어쩌겠어요. 재롱도 피우고…."

말을 흐리며 멋쩍게 웃는 그의 선한 마음이 통했던지 그는 이제 마을 주민들 한분 한분과 안부를 주고받을 만큼 친해졌다. 아내도 딸 아이가 방학을 하자 함께 내려와 사진관 일을 돕고 주민분들의 사연을 글로 다시 정리하기도 했다.


대추리는 우리 모두의 상처

그는 이곳 대추리 문제를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추리의 상처는 곧 우리 모두의 상처라고 말한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곳 주민들만의 일이 아니에요. 찬성과 반대, 가해자와 피해자, 분단 현실의 상황에서 그런 구분은 의미가 없어요. 미군부대 재편을 통해 앞으로 벌어질 위기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가 이런 거시적인 측면에서만 사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아주 단순하고 직접적인 시선으로 묻고 있다.

"주민들이 바라는 건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에요. 그저 자기 땅에서 농사짓고 살겠다는 건데 그런 사람들을 쫓아내다니 말이 안 되죠. 한 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에요. 미군을 위한 정책이 자국의 정직한 사람들의 소박한 꿈을 불온한 것으로 만들고 있어요."

a 노순택씨는 사진을 통해 평범한 노인의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게 만드는 세상이 과연 제정신인지 묻는다.

노순택씨는 사진을 통해 평범한 노인의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게 만드는 세상이 과연 제정신인지 묻는다. ⓒ 노순택

그가 주민들과 함께 벌이는 싸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이들도 있다.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는, 이른바 국익을 위해 작은 것은 희생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하지만 그는 바로 반박한다.

"저분들에게 국익이란 단어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거예요. 또 이것이 정말 옳은 일이라면, 또 필요한 일이라면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정든 고향을 자의로 떠나도 마음이 아픈데 현재 이곳의 상황은 비열한 방법으로 주민들을 이간질해 수십 년 된 이웃공동체를 파괴하고 증오를 키우게 만들고 있어요."

마을을 함께 돌아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진다. 그의 지적처럼 마을 곳곳에는 먼저 떠난 사람들이 정부측의 압력에 의해 자신들이 살던 집을 파괴한 것으로 추측되는 집들이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다. 운동가들이 거주하지 못하게 부수고 떠나도록 종용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한마디로 분단 상황이 만들어낸 블랙 코미디라 정의한다.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7살 난 딸 노을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줄 수 있기를 소망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싸운 덕분에 마을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너도 작은 몫이지만, 소중한 역할을 했다", "그때 우리 가족은 마을을 지키려는 주름진 얼굴들과 그 얼굴들이 들려주는, 웃음 나고 울음도 나는 이야기를 필름과 공책에 담았다, 참 재미도 있고, 애도 썼다"고 말이다.

나 역시 그의 소중한 바람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노순택은 누구?

대학에서 정치학을, 대학원에서 사진학을 공부했다. <교수신문>과 <오마이뉴스> 기자를 거쳐 다큐멘터리 웹진 <이미지프레스>(imagepress.net)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국제민주연대(Korean House for International Solidarity)와 월간 <말> 편집위원을 맡고 있으며, 한국전쟁의 흔적과 사회적 폭력의 문제를 필름에 담는 '코메리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개인전 '분단의 향기'(2004 김영섭화랑)를 비롯, '영속하는 순간 - 한국과 오키나와, 그 내부의 시선'(2004 뉴욕 근대미술관MoMA 별관 PS1 갤러리), '리얼링15년'(2004 사비나미술관), '금지된 상상력'(2004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갤러리), '한국 일본 오키나와에 관한 기록과 기억'(2003 오키나와-오사카-도쿄-서울 순회)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홈페이지 : http://nohst.simspa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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