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욱 장편소설> 762년 - 13회

난파선(難破船)

등록 2006.03.16 17:08수정 2006.03.1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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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신복은 뱃집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멀리 수평선에 눈을 던졌다. 멀리 수평선 위로 햇살이 금빛 휘장을 드리운 가운데 뽀야니 안개가 도는 듯 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두 같은 풍경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수평선. 이런 단조로운 풍경을 얼마나 더 바라보고 있어야 하나? 육지가 그리웠다. 육지의 바위와 흙과 나무가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그는 거무튀튀한 손바닥을 눈썹 위에 얹고 멀리 서남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뱃전에 출렁이는 물결을 굽어보았다.


물결은 조금 전 보다 높아졌고, 배도 미세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태양의 위치를 통해 가늠해 볼 때 남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바다는 푸른 먹을 머금은 듯 맑고 투명했다. 아득한 바다의 깊이. 저 바다 어딘가에 양태사의 육신이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물고기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숱하게 발해와 일본을 왕래하던 그는 결국 바다의 품으로 돌아갔다. 자신을 대신해 목숨을 바쳤던 그의 충절을 왕신복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양태사는 진정한 무인이며 충신이었다. 대문왕께서는 자신과 양태사를 불러놓고 지엄한 분부를 내리지 않았던가? 그는 목숨을 바쳐 그 분부를 지켜냈던 것이다. 새삼 그의 모습이 그립기만 했다. 양태사는 뛰어난 무장일 뿐만 아니라 한시에도 능한 문장가이기도 했다.

가을 하늘에 달빛 비쳐 은하수 밝은 밤
나그네는 돌아갈 생각에 감회가 새로워라
긴 밤을 앉았노라니 수심에 애가 타는데
홀연 들려오는 이웃집 아낙네의 다듬이 소리
끊어질 듯 이어지며 바람결에 실려와
별이 기울도록 잠시도 쉬지 않는군
고국 떠난 뒤 듣지를 못했더니
타향에서 듣는 이 소리, 고향의 소리
그 방망이 무거운지 가벼운지
그 다듬잇돌 평평한지 아니한지
멀리서 가녀린 몸에 땀 흘리고 있겠지
밤늦도록 고운 팔을 지치도록 두드리리
길 떠난 내 홑옷 걱정되어 옷 다듬겠지만
당신 방 안 차지 않을까 나 먼저 근심되오
당신 모습 가물거려 생각 잘 나지 않는구려
멀리서 무단히 원망이나 않을는지
이국 땅에 붙어사니 새로 사귄 친구 없고
한 마음 부인 생각에 탄식만 나와라
지금 홀로 방안에서 다듬이 소리 들으니
이 밤 눈가에 눈물 고임을 그 누가 알리
그립고 그리워서 마음이 매달린 듯한데
저 소리 또 들려 갑갑한 마음 뚫을 길 없어라
꿈속에서 다듬이 소리 따라가려 하지만
수심 많아 잠조차 이루지 못 하오

왕신복의 입에서 이런 시구에 저절로 흘러나왔다. 이 시는 발해뿐만 아니라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진 시였다. 훗날 양태사는 이 시를 헤이조쿄(坪城京)의 숙소 옆에서 지었다고 회상했다.

"발해의 귀국을 며칠 앞둔 밤이었습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조국 발해로 간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더군요. 자리에 누운 채 이리 뒤척 저리뒤척 하고 있는데 어디서 다듬이 방망이 소리가 들려왔던 겁니다. 그 소리가 아내가 두드리는 방망이 소리와 너무 비슷해서 가슴 한 구석에 밀어 넣었던 그리움이 울컥 솟아 났었죠. 그래서 가슴속에 그 시를 담아놓았다가 시 경영장에서 발표했던 겁니다."

발해사절이 일본에 가, 양국의 문인이 한시의 응수를 응수하면서 이 시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양태사가 그의 형, 양승경을 따라 일본에 간 것은 준닝천황을 옹립한 후지와라나카마로의 전성기 때였다. 양승경과 양태사 등의 사절단은 일본 조정의 연회 외에 나카마로의 사저인 다무라노다(田村弟)에 초대되어 여악(女樂)과 함께 환대를 받았다.

그 자리에는 당대의 문사가 모여 각기 한시를 지으며 발해 사절의 송별을 했다. 이에 대해 발해사절 편에서 귀덕장군인 양태사가 나와 한시를 지어 화답했다. 그때 양태사가 지은 시가 바로 야청도의성(夜聽도衣聲)이라는 시였다. 이 시는 발해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져 웬만한 문인이라면 암송하고 다닐 정도로 유명했다.


양승경과 양태사는 일본에서 보통의 사절단 보다 훨씬 많은 환영을 받았다. 발해 사절단 대표인 양승경은 일본의 천황으로부터 솜 1만둔(一萬屯)을 하사 받기도 했다. 양승경이 일본에서 돌아오고 얼마 후, 그는 은밀히 왕신복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했다. 양승경은 대장군으로서 발해 최고의 실력자였다. 그는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문신인 왕신복을 부른 것이다. 평소 그와 교류가 없었던 왕신복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여러 의문을 안고 양승경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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