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다른 남자와 또 결혼을?

[리뷰·인터뷰 8]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아내가 결혼했다>

등록 2006.03.20 08:38수정 2006.03.2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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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겉그림

책 겉그림 ⓒ 문이당

어느 날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 두 집 살림을 하겠다고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남성들은 심장마비를 일으킬 정도로 충격을 이기지 못할 터. 이 글은, 2006년도 제2회 세계문학상에 당선된 박현욱씨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으며 느낀 불쾌(?)하면서도 동시에 유쾌한 감상과 지난 화요일(7일) 작가를 만나 나눈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이 소설에 대해 무수한 작가와 평론가들이 평을 아끼지 않았다. 보편적 윤리관을 뛰어넘는 주제가 월드컵 결승전을 관전하듯 경쾌하게 전개됨(소설가 김원일), 눈부신 작가의 역량(평론가 김윤식), 발칙한 발상에 비해 주제를 풀어 가는 방식은 진중함(소설가 김형경), 눈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는 마법과도 같은 소설(평론가 하응백) 등, 다 옮기기 힘들 정도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너무 무거운 주제, 그러나 상큼한 터치

축구 이야기가 반이라고 할 만큼 작가는 이 소설에서 축구에 관한 엄청난 지식을 풀어놓는다. 작가가 대단한 축구전문가라 해도 이 정도 해박한 축구지식을 풀어놓지는 못 할 터. 반복되는 축구 이야기는 소설 속 액자로 구실을 하면서도 실제 이야기에서 다 못 다룬 부분들을 정확히 집어내고 비유한다.

박현욱 : "저는 축구전문가도 아니며 마니아도 못 됩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회학, 인류학 분야에서의 다양한 논의들도 지극히 피상적인 부분밖에 모르지요. 다만 나는,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사랑과 결혼이란 인생을 손쉽게 행복으로 또는 불행으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 비단 축구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 삶과 닮아 있다는 것(중략),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행복에 관한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작가의 말 가운데)."

a 작가 박현욱(40)씨

작가 박현욱(40)씨 ⓒ 이동환

회사에서 축구 때문에 서로 동질감을 느껴 만나게 된 '덕훈'과 '인아'. 가까워질수록 덕훈은 인아의 아주 특별(?)한 개방성향에 놀란다. 사랑과 섹스에 대해 무한할 정도의 자유를 추구하는 인아가 덕훈은 버겁다. 그러나 점차 인아에게 빨려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프러포즈를 하지만 인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선언한다.

"나는 한 사람만 사랑하면서 살 수 없어! 언제든지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나면 주저하지 않을 거야."


결혼이란 어느 한 쪽이 더 눈멀기 마련인 게임이다. 사랑을 저울질한다는 게 우습지만 남녀가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필경 어느 한 쪽이 더 목말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덕훈이 그랬다. 결혼에 성공하고 행복에 겨워 노곤해질 무렵, 인아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나, 남자 생겼어. 사랑해. 그 사람과 결혼할 거야."


인아의 말인즉슨, 현재 두 사람 다 사랑하니까 두 사람과 결혼생활을 즉, 두 집 살림을 하겠다는 것이다. 독자여,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남성이 독점한 권력에 대한 이유 있는 도전

박현욱 : "소재가 파격적이니까 인아의 행동과 선택을 생경하다고 하는데 사실 틀만 바꿨을 뿐입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드라마의 주요소재라든가, 남자들이 두 집 살림 이상, 바람피우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권력의 문제라는 얘기죠. 남자 여자 역할만 바뀌었을 뿐 새로운 소재는 아닙니다."

수천 년 동안 남성이 지배해온 구도 속에서 여성은 언제나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여러 첩을 두어도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 온 우리네 윗세대 여성들. 세상이 바뀌었고 여성이라고 그리 못 하란 법은 없다.

박현욱 : "먼저 말씀드리면 이 소설은 하나의 판타지입니다. 어떤 여성이 인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해도 수십 년 안에 금세 현실화 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사실, 세상은 많이 변했고 의식도 바뀌어가고 있는데 남성(저를 포함해)은 별로 변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우리에게 유교적인 바탕의 교육을 통해 굳어진 가치관, 시각들이 여전하다는 얘기입니다."

인류사회 초기에는 모계사회였을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힘의 우위를 앞세운 남성들이 권력을 잡게 되었고 가부장문화가 뿌리내렸다.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남성우월주의는 팽배하다. 내 아내는 특히 그렇게 생각한다.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툭툭 시비 걸어 쀼루퉁해지는 걸 즐기는 악취미를 가진 내가 이 소설의 주제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

"인아처럼 남편 있는 여자가 또 나를 선택한다면,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어?"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
"난…, 그 여자의 두 남자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아."
"그 꼴을 내가 볼 것 같아?"
"당신도 똑 같이 하면 되잖아."
"아이고, 남이 들으면 퍽이나 '쿨'한 남편인 줄 알겠수. 지나가는 소가 웃겠네."


가만히 얘기를 듣자니 아내는 소설 속 덕훈과 인아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나 역시 속내를 말하자면 그렇다. 그러나 한 편 부끄럽다. 개방적이고 이해심 많은 척 행동했을 뿐 나 역시 이 시대 보편적이고 보수적인 남정네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박현욱 : "현실에서 아내가 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온다면(얼마나 사랑하느냐가 문제겠지만) 기본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이 시대 평범한 남자니까요. 대개 남자들이 훨씬 못 견디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이 소설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셨는데 결혼이라는 틀을 파고들어 정면으로 뒤집어 놓았기 때문에 일부에서 이슈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숨에 읽힌 뒤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소설

어쨌거나 이 소설 최대 매력은 숨 돌릴 틈 없이 읽힌다는 사실이다. 문장이 참 경쾌하다. 마치 이영표 선수의 드리블을 감상하는 듯하다. 축구중계를 보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게 전개되는 장면마다 실제 축구 이야기가 삽입되면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까 어떤 독자는 축구 이야기가 너무 많아 지루했다는 평을 했는데 나는 오히려 반대로 느꼈다. 축구 이야기 속에 숨겨진 절묘한 비유와 질문이 퍼즐 맞추기 같은 재미를 제공한다.

덕훈과 인아가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랑 얘기가 다는 아니다.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느냐 안 하느냐 역시 중요하지 않다. 이 이야기를 읽고 불쾌해졌거나 '뭐, 이런 발칙한 발상이 다 있어?' 하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있다면, 오랜 세월 우리네 옛 여성들이 꾹꾹 참아낼 수밖에 없던 '피가 거꾸로 솟는 감정'이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 소설이 너무 가볍게 읽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무겁고 문제화 될 수도 있는 주제를 똑같은 무게로 다룬다면 독자를 너무 힘들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끝으로, 요즘 순수문학이 쇠퇴하고 있다는 항간의 우려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피력한 작가의 말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맺음을 대신한다.

박현욱 : "요즘 순수문학이 퇴조하고 있다는 평에 대해 작가들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꼭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시대가 변했고, 비문학적인 분위기로 흐르는 세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순수문학 쪽에 재능 있는 사람들이 옛날처럼 문학에만 천착하지 않고, 다양한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추세도 이유가 되겠고요. 인문학적 교양이 없어도 별 지장 없이 살 수 있는, 가벼운 대중문화 우위 분위기도 이유가 될 듯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골아이고향(☜ 클릭)에 동시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골아이고향

아내가 결혼했다 - 박현욱 장편소설

박현욱 지음,
문학동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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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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