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풍요 속의 빈곤

[유창선 칼럼] 흔들리는 박근혜·이명박 리더십

등록 2006.03.22 09:06수정 2006.03.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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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표는 요즘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나라당 안에서 대형사고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지만 박 대표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최연희 의원의 사퇴문제에 대해 박 대표는 "본인이 판단해서 결정할 일"이라며 남의 일 이야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당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천잡음에 대해서는 몇차례 경고 했지만, 박 대표의 말은 영(令)이 서지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파문이 불거지고 있는 이명박 시장의 '황제테니스' 논란에 대해서도 그저 바라만 볼 뿐, 어떤 원칙이나 입장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는 며칠 전 당회의에서 "천막당사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그 시절의 '초심'이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연상되지 않는 것이 지금 한나라당의 현실이다.

흔들리는 박근혜 대표의 리더십

a 최연희 의원 파문, 이명박 시장 '황제테니스' 논란 등 한나라당 안팎이 시끄럽지만 박근혜 대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최연희 의원 파문, 이명박 시장 '황제테니스' 논란 등 한나라당 안팎이 시끄럽지만 박근혜 대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필자가 그래도 정치평론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지만, 근래 들어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공격 이외에 한나라당이 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봐도 거의 떠오르는 일이 없다. 126개나 되는 의석을 가지고도 이렇게 하는 일이 없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지금 한나라당은 자신들 내부의 문제들조차, 제대로 된 원칙을 갖고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 그 자체이다.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려 하기 이전에 '수신제가'(修身齊家)부터 하라는 말을 들어야 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한나라당이 겪고 있는 이 모든 상황의 최종 책임은 당연히 박 대표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터져나오는 당내 문제들에 대해 박 대표가 아무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래서 지금 한나라당의 위기는 박 대표의 위기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안팎의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당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지만, 박 대표는 그같은 목소리를 수렴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의 리더십이 한계를 드러낼 것임은 이미 예고되었던 바이다. 박 대표가 때만 되면 국가정체성 문제를 제기하고 '색깔론'을 들고나오면서 한나라당은 결국 '도로 한나라당'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무모하게 전개된 사학법 무효화 장외투쟁만 해도 그렇다. 박 대표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못한채 이재오 원내대표의 손에 이끌려 국회로 들어가는, 어찌보면 치욕적인 회군(回軍)을 해야 했다. 모든 것을 이념적 잣대에 따라 재단하는 좌·우 이분법적 세계관에 갇혀있는 박 대표야말로 한나라당의 변화를 가로막는 주역으로 위치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박 대표를 향해 지적되었던 문제들은 주로 과도한 이념적 성향이나 콘텐츠의 부재라는 문제였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현안들에 대해 박 대표가 보이고 있는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면, 민심과 유리되어 무감각해진 리더십의 문제까지도 발견하게 된다. 당을 흔들고 있는 현안들을 눈앞에 두고도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하고 있는 당 대표가 어떻게 한나라당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겠는가.

그러하기에 작금의 상황은 최연희 의원의 위기, 이명박 시장의 위기, 한나라당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또한 박근혜 대표의 위기이기도 하다.

흔들리는 이명박 시장의 리더십

a 이명박 서울시장은 2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황제 테니스' 논란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2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황제 테니스' 논란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명박 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나라당에서 박 대표와 쌍벽을 이루는 실력자는 두말할 것 없이 이명박 시장이다. 이 시장은 근래 들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대표를 추월하며 선두로 나섰다. '청계천 효과'는 '일 잘하는 사람'을 찾는 국민정서에 부합되었고 그 결과 이 시장은 상승세를 타며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그러나 이번 '황제 테니스' 파문은 정치지도자로서 그의 리더십이 갖는 시대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테니스 파문은 이해찬 총리의 골프파문과 점점 닮은 꼴을 띠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남산실내테니스장 이용, 잠원테니스장 건립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각종 의문들에 대한 확인은 추후에 이루어질 것이라 치더라도, 분명한 것은 이 시장이 과거 '주류 정치인'들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한 '웰빙 정치인'의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 시장은 잘 몰랐다고 한다. 몰랐다는 그의 해명을 말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주말의 독점적 이용여부에 대해서도, 사용료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 개념이 없었던 셈이다. 치고싶을 때 가서 테니스를 치면 되는 것이지,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파문이 커질줄 몰랐다"는 이 시장의 말을 통해, 과거 개발연대의 정치지도자들이 가질 수 있었던 의식과 행태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서울시장이 서울시 소유의 시설을 마음대로 이용하는 것이 이렇게 문제가 될 줄 몰랐다는 이야기가 된다. 세상은 크게 바뀌어, 현직 총리가 골프 몇번 잘못쳐서 물러나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 시장의 의식은 여전히 과거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비쳐진다.

단지 '황제테니스' 파문과 관련해서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장은 개발연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인물처럼 되어있다. 청계천 효과에서 나타났듯이, 그것은 이 시장의 최대의 강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장이 안고 있는 최대의 약점이기도 하다.

이 시장은 과연 개발연대의 리더십을 뛰어넘어 시대의 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까. 불도저식 개발의 이미지로 각인된 이 시장에게서 환경과 생명과 문화같은 다양한 가치에 대한 새로운 비전,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기대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대답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이 시장이 보여온 언행들을 놓고보면 개발시대를 풍미했던 '이명박식 경영'의 부활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가 과연 우리 시대의 다양한 가치와 의제들을 포용하고 조정하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이 시장은 여기에 대한 신뢰를 주지못하고 있다. '황제테니스' 파문을 떠나 이 시장의 리더십이 드러내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거기에 있다.

'황제테니스' 파문의 추이는 이 시장이 내놓은 해명이 얼마나 진실된 것이었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진실게임의 결과는 그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요구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 결과에 상관없이, 이 시장이 개발연대의 리더십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를 자각하지 못한다면, 반쪽 짜리 리더십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 것임을 말해두고 싶다.

풍요 속의 빈곤, 한나라당의 현주소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시장. 한나라당의 두 차기 주자들은 그동안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그룹을 형성해왔다. 지지율 한 자리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당의 차기 주자들을 생각하면, 가히 인물의 풍요 속에 있는 한나라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한나라당 상황은 한나라당의 리더십이 풍요속의 빈곤을 맞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같아서는 박 대표의 리더십도, 이 시장의 리더십도 '대안적 리더십'으로 인정받기에는 역부족이다. 재·보선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한나라당이 정작 내년 12월을 불안해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한나라당이 최근에 벌어진 일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진지하게 찾겠다면, 자신의 리더십에서 기본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깨닫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도로 한나라당'이라는 야유를 또 다시 듣지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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