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공익? 전경련의 이상한 경제교재

중학교 부교재로 편찬... 대기업 편향, 미국 편향 심각

등록 2006.03.24 11:16수정 2006.03.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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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전경련이 중학교 부교재로 펴낸 <즐겁게 배우는 체험경제 교과서>. 이 책은 미국경제교육협의회의 교재를 번역하고 수정한 것이다.

전경련이 중학교 부교재로 펴낸 <즐겁게 배우는 체험경제 교과서>. 이 책은 미국경제교육협의회의 교재를 번역하고 수정한 것이다. ⓒ 안옥수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중학교 부교재로 펴낸 <즐겁게 배우는 체험경제> 교과서가 미국기업과 우리나라 대기업의 입장만을 그대로 담고 있어 우리 실정과는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책은 머리말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교육기관인 미국경제교육협의회의 교재를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수정한 것"이라며 "선진국의 체험식 교육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워커 부인? 산체스? 코르테즈? 대체...

내용은 한국의 실정과 거리가 멀다. 우선 군데군데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 생소하다. '워커 부인', '산체스', '코르테즈', '야콥슨' 등의 외국인이 대거 등장한다. '미시시피', '플로리다' 등 지명도 마찬가지다. 6단원에서 들어서면 미국 실정에 맞는 경제를 학생들에게, 그야말로 '즐겁게' 체험시킨다.

1단원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워커 부인은 소작인의 딸로 태어나 미국의 첫번째 여성흑인 백만장자가 된 사람이다. 이야기는 그의 딸이 사업을 이어받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백만장자 성공신화와 기업 상속의 요건을 고루 갖춘 사례다. 우연히도 한국 대기업 상황과 많이 닮았다.

교사용 지도서에는 한발 더 나아가 기업가를 초빙해 강연회를 열거나 기업가의 전기를 읽고 글을 작성하도록 했다. 그야말로 기업가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노력이 충분히 엿보인다.

노동자 해고는 모두를 위한 일?


a 해고는 공익?... <즐겁게 배우는 체험경제> 3단원 17과 내용. 붉은 선을 친 부분에는 노동자 해고를 정당화 하는 것을 넘어서 기업·국가·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해고는 공익?... <즐겁게 배우는 체험경제> 3단원 17과 내용. 붉은 선을 친 부분에는 노동자 해고를 정당화 하는 것을 넘어서 기업·국가·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 김상정

a 당신의 선택은?... 이 책에는 학생들이 직접 경영자가 되어 선택을 고민하게 한다. 주문량이 너무 많은 회사에서 해결방법으로 제시된 것은 단 세가지. 주문거절, 인력보강, 기계대여에 따른 인력해고. 다른 것은 없다.

당신의 선택은?... 이 책에는 학생들이 직접 경영자가 되어 선택을 고민하게 한다. 주문량이 너무 많은 회사에서 해결방법으로 제시된 것은 단 세가지. 주문거절, 인력보강, 기계대여에 따른 인력해고. 다른 것은 없다. ⓒ 김상정

3단원 '생산적인 근로자' 7과에선 "생산성을 높일 목적으로 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리게 되면 근로자들의 해고와 같은 즉각적인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어 "그러나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계속 성장하게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은 기업 자신은 물론 전체 국가 경제에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또한 기업이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면 소비자들도 이익을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생산성을 높이는데 필요한 '비용'으로 굳이 드는 예가 '근로자의 해고' 하나뿐이다. 결국 논리적으로 '근로자의 해고 → 기업·국가·소비자 결국 모두를 위한 일'이 되는 셈이다.

학생들은 직접 경영자가 되어 선택을 고민한다. 이 단원 탐구활동에 나오는 '나마네 티셔츠' 회사에는 주문량이 너무 많다. 해결방법으로 주문거절, 인력보강, 기계대여에 따른 인력해고의 세가지 방법이 제시된다. 교과서는 그 중 세번째 방법인 '생산성을 위해 기계를 빌리고 고용 인력을 2/3로 줄인다'에 집중 고민할 수 있게 친절하게 안내한다.


주문거절, 인력보강이 아닌 노동자의 해고를 선택할 경우 '즉각적인 영향, 장기적인 영향 모두를 고려해보자'라고까지 제안한다. 학생들은 자연스레 근로자의 해고를 더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사용 지도서 3단원 '생산적인 근로자'의 첫 장에서는 근로자를 "생산과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생산 관리자나 경영자 등을 포함한다"로 정의돼 있다. 즉, 근로자엔 경영자가 포함된다. 그렇다면 해고의 당사자가 누구며 해고자는 누구인가.

현장 교사들은 "기업구성원들을 동등한 생산주체로 보고 논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며 "그런 관점이면 기업의 해고회피 노력은 필수"라고 말한다. 해고가 발생하면 실업자가 되고 결국 국가가 책임지게 된다. 결국 개별기업에서는 이익을 보지만 사회적 비용은 더 들어가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이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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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정


"근로자는 보다 많은 임금을 받고자 한다" 그럼 경영자는?

유독 정리해고에 대한 언급이 많은 3단원 7과의 교사용 지도서에는 전체학급을 네 개의 모듬으로 나누어 경영자, 주식 소유자, 근로자, 지역사회 지도자를 맡기고 관심사항에 대해 토의하도록 돼 있다. 경영자의 관심은 "주식 소유자와 근로자를 만족시킨다"고, 근로자의 관심은 "계속 직장을 다니면서 보다 많은 임금을 받고자 한다"로 명시돼 있다.

여기서도 근로자에 경영자가 포함되지 않은 듯이 구분지어 놓았다. 단원에 앞서 경영자는 근로자에 포함된다고 정의해놨음에도 말이다. 이대로라면 경영자는 기업을 생각하는 사람이고, 근로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이해되기 쉽다. 상상의 공간에서 학생들은 멋지고 착한 경영자가 되어 자기 이익만 챙기는 근로자와 대립하게 될 것이다. 경영자의 관심을 '기업의 이윤을 추구한다'로 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말이 귀걸이 코걸이, 왔다 갔다

a 이 단원에서는 "근로자이자 소비자로서 우리가"라는 말이 나온다(붉은색 밑줄 부분). 그러나 그 전에는 '근로자'와 '소비자'는 동떨어져 있었다.

이 단원에서는 "근로자이자 소비자로서 우리가"라는 말이 나온다(붉은색 밑줄 부분). 그러나 그 전에는 '근로자'와 '소비자'는 동떨어져 있었다. ⓒ 김상정

교사용 지도서엔 경영자가 근로자에 포함된다. 반면 교과서에는 근로자가 '생산자'로 바뀌어져 있다. 근로자나 생산자가 같다는 얘기인가? 그러면서 3단원 7과에는 경영자와 근로자를 따로 두어 첫 장에 정의된 '근로자'라는 개념과 혼동을 낳는다. 물론 '노동자'라는 단어는 이 단원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별일 없을 때는 경영자나 생산자나 다 근로자이다가, 근로자의 해고가 필요할 때엔 경영자가 따로 독립돼 근로자의 해고를 고민한다. 그렇게 학생들은 경영자 입장을 체험한다. 또한 근로자 해고를 예로 들면서 '소비자의 이익이다'로 결론이 나올 때 근로자는 학생과 전혀 상관없는 주체들이다가, 6단원 85쪽 '세계경제의 참여자'에서는 '근로자이자 소비자로서 우리가'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한다.

단어에 대한 혼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동자'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유명한 전경련이 실수를 한 것일까? 6단원 '세계경제의 참여자' 17과 '나를 가로막지 말라'에서는(교과서 93쪽) 무역장벽에 대해 언급하며 처음으로 노동자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쓴다. 여기서 기업과 노동자가 새로 등장하고, 바로 다음 장인 94쪽엔 '소유자'와 '근로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마무리학습 바로 전에 느닷없이 몇 번 등장한 '회사'라는 말도 교과서 흐름으로 보면 참 뜬금없다.

갑자기 등장하는 노동자라는 말이 궁금해지기도 할 터. "선생님, 노동자가 뭐예요?"라는 학생들의 물음에 대한 설명이 교과서나 교사용 지도서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정부는 어떤 존재일까?

a "'공공재란, 비배제성이나 비경합성 때문에 정부가 공급을 담당하는 재화를 말한다." 공공재에 대한 정의가 너무 어렵다.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은 거의 쓰지 않고 있는 단어다.

"'공공재란, 비배제성이나 비경합성 때문에 정부가 공급을 담당하는 재화를 말한다." 공공재에 대한 정의가 너무 어렵다.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은 거의 쓰지 않고 있는 단어다. ⓒ 김상정

나아가 교사용 지도서에는 공공재가 아닌 것으로 학교급식, 의료보호 등이 예로 등장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라고 14과 제목에서 못을 박기도 한다. 무료급식비용을 정부가 내는데 실제로 납세자가 그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 되어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친절하게 "공립학교가 점심과 같은 재화나 교육과 같은 서비스를 공급할 때 이것들은 공짜가 아니라는 것과 조세수입은 공립학교를 운영하는 비용을 충당하는데 사용된다"는 것도 언급된다.

의무교육이 된 중학교의 경우, 사립학교 또한 학생들이 내는 학교운영지원비와 조세수입에서 학교예산의 99% 가까이 충당되는 상황에서 굳이 공립학교로 한정짓고 있다. 또한 조세에 대한 정의에서 '정부가 가계와 기업에게 부과하여 강제로 징수하는 돈'이라 하여 정부의 이미지를 반갑지 않게 전달한다.

앞선 단원에서도 거의 안나오던 정부가 4단원 '책임 있는 시민'에선 반갑게 등장한다. 경제적 역할에선 '근로자, 소비자, 시민, 저축자, 세계경제의 참여자, 의사결정자'만 있다. 기존 일반교과서에서 친숙히 접하는, 경제의 3주체 '가계, 기업, 정부'와는 다른 접근이다. 학생과 정부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어렵다. "공공재란, 비배제성이나 비경합성 때문에 정부가 공급을 담당하는 재화를 말한다." 공공재에 대한 정의다.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이란 말은 학생들에게 어렵다는 지적이 많아 그나마 잘 쓰지 않는 용어다.

"나를 가로막지 말라!"

a 마지막 단원의 마지막 과 제목. 규제없는 무역을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의미가 충분이 녹아들었다.

마지막 단원의 마지막 과 제목. 규제없는 무역을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의미가 충분이 녹아들었다. ⓒ 김상정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는 무역장벽에 대해 부정적이다. 마지막 단원 제목은 '나를 가로막지 말라'로 선동적이기까지 하다. "각 정책(무역장벽)은 가격과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의 정책이 비용 상승과 공급제한을 가져와 제품의 가격을 상승시키고, 공급제한은 고용을 감소시킬 수 있고, 보조금은 가격을 인하시키지만 납세자의 부담을 초래한다"고 정답을 내놓고 있다. 무역장벽에 대한 단점만을 열거하는 것이다.

수량할당(쿼터제)에 대한 설명도 "일정 기간동안(주로 일년) 한 나라에 들여올 수 있는 수입품의 수량에 대한 제한을 말한다"며 "수량할당은 수입품의 양을 제한할 뿐 아니라 그 재화의 사용 가능량도 제한하게 된다, 공급이 감소하면 소비자 가격이 상승하고 따라서 수량할당은 그 재화의 소비자 가격을 상승시킨다"로 설명돼 있다.

그러나 자국의 문화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인 관세, 수량할당(쿼터제), 수출보조금 등 무역장벽이 가진 순기능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만약 수량할당의 대표 격인 스크린쿼터제가 없다면 경쟁력과 자본력이 우월한 미국영화산업과의 경쟁에서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도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교과서나 교사용지도서 어디에도 이런 부분이 없다.

선생님, 우리는 한국인이에요? 미국인이에요?

교과서는 무역상대국인 미국의 입장만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매길 경우 미국 제품의 가격이 싸질 가능성을 막을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 제품의 원래가격이 상승하지는 않는다. 또한 수량할당(쿼터제)의 경우 미국의 고용을 늘릴 가능성을 막을 수는 있으나 우리나라의 고용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출을 하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주는 경우 우리나라 기업이 이익을 얻고 일자리가 유지된다. 결국 그 이익만큼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어서 기업도 살고 우리나라 경제도 사는 것이다. 수랑할당(쿼터제)의 경우 우리나라는 스크린쿼터로 대표된다.

전국사회교사모임 신성호 교사는 이 책을 "미국 실정에 맞추려는 교과서"라며 "경쟁력 있고 강한 기업만 살아남는 미국식 정글의 경제교육"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미국 등 경제강국의 경제논리를 체험경제라는 수업방법의 옷을 입고 미국의 기업가 중심의 경제논리를 그대로 교육하려 하고 있어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경제교육이다"고 분석했다.

전경련은 지난 2월 15일 교육부와 교과서개발공동협약을 맺은 이후 발 빠르게 미국식 경제교육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경제교육교사들을 대상으로 각종 시장경제 교육연수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올해 2학기부터는 교·사대생 각 120명을 대상으로 관련 강의도 진행할 계획이다. 나아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교재도 개발할 계획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균형 잡힌 경제교육을 지향하는 경제교육학계와 경제교사들의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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