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매, 장세 안 내면 장사 못해!"

할미꽃, 그 슬픈 이름이여!

등록 2006.03.23 15:27수정 2006.03.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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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럽도록 아름다운 할미꽃

서럽도록 아름다운 할미꽃 ⓒ 한성수

어제(22일)도 여느 날처럼 학교 앞에서 아이가 등교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출근하는 중간에 딸과 이질(처제 아들)의 학교가 있어 그들은 나의 손님입니다. 더러 중간에 딸아이 친구를 태우기라도 하면 10대의 생각과 아픔을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딸아이는 학교 앞 횡단보도에 멈춰 다시 내게 손을 흔듭니다.


내가 다시 출발하려고 운전대로 눈길을 옮기는데 길 옆 잔디밭에 쭈그리고 앉은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할머니, 뭐하시는데요?"
"응, 쑥 캐지."
"쑥국 끓여 드시게요?"
"응, 돈도 하고."

a 아파트 잔디밭에서 쑥캐는 할머니

아파트 잔디밭에서 쑥캐는 할머니 ⓒ 한성수

출근하는 내내 시장 모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쑥을 파는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그러다가 그 모습은 내 일곱 살 때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세 마지기 농사를 짓는 가난한 어머니는 푸성귀나 고사리를 꺾어서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제법 물건이 많은 날이면 마산에 나가는 일도 더러 있었습니다. 도회지 구경이 하고 싶던 나는 어느 날 기어이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부여잡을 수 있었습니다. 신이 나 있던 나와는 달리 어머니는 마음이 편치 못한지 내게 자꾸만 타박을 줍니다.

a 내 첫사랑, 자야에게 반지를 만들어 바친 제비꽃!

내 첫사랑, 자야에게 반지를 만들어 바친 제비꽃! ⓒ 한성수

어머니는 북마산시장 옆, 길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가게에서 빽 소리를 지릅니다. 어머니는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옆으로 옮겨 앉습니다. 그러나 그쪽에도 이미 아주머니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어 구석에 자리를 잡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물건을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하고는 자리를 알아보려는지 마음이 급합니다.


"어이! 이 물건 주인이 누고?"

험상궂게 생긴 청년 둘이 어머니의 쑥을 손짓하며 묻습니다.


"우리 짐인데, 와 그라시는데예?"
"네 엄마 오면 장세 내어야 된다고 해."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어머니는 숨을 헐떡이며 왔습니다.

"마음이 선한 저쪽 가게주인이 앉아도 좋다고 하셨다. 저리로 가자."

어머니와 나는 주섬주섬 펼쳐놓은 물건을 보퉁이에 싸서 자리를 옮깁니다. 그런데 그곳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a 밟혀도 밟혀도 다시 피어나라, 민들레여!

밟혀도 밟혀도 다시 피어나라, 민들레여! ⓒ 한성수

그런데 또 그 청년들이 나타났습니다.

"아지매! 장세 내소!"
"아직 마수도 못 했습니더. 쪼매이 더 있다가 드릴께예."
"아까도 장세를 내라고 이야기했는데, 아지매는 이 자리에서 장사할 수 없어!"

어머니의 사정하는 목소리와 청년들의 욕지거리가 한동안 공기를 어지럽히더니, 그 순간! 청년의 장화 신은 발은 쑥 소쿠리를 차서 공중으로 '붕' 띄웁니다. 이리저리 흩어지는 쑥을 다른 청년은 자근자근 밟기까지 합니다. 어머니는 소쿠리를 들어서 청년의 등짝을 후려갈깁니다. 청년은 완력으로 어머니를 확 밀치고, 왜소한 어머니는 시장바닥에 넘어집니다.

a 보도블록 사이에 핀 애잔한 제비꽃

보도블록 사이에 핀 애잔한 제비꽃 ⓒ 한성수

"이놈들아! 너거들이 무슨 권리로 장세를 받아 쳐묵노? 여기는 사람이 댕기는 도로고 국가 땅인데, 너거가 무슨 공무원이라도 되나. 에라이, 나쁜 놈들! 너거는 평생 그렇게 남의 등골이나 빼묵고 살아라!"

어머니는 청년들의 뒤통수에 오금을 박습니다.

"막내야, 집에 가자! 앞으로는 시장에 따라올 생각일랑 말거래이!"

어머니는 10원을 주고 십리과자를 사서 내 손에 안겨줍니다. 일곱 살, 봄바람이 오소소 소름을 돋게 합니다. 어머니의 빈손이 참 따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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