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비친 벌교의 자화상

'태백산맥' 기념관 건립 현장에 가다

등록 2006.03.25 12:48수정 2006.03.25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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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현부자집 고택

현부자집 고택 ⓒ 김성철

벌교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곳으로 해방전후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재까지도 한맺힌 시대적 아픔을 겪고 있다. 작가 조정래는 이 소설을 통해 벌교의 이러한 민중의 역사성과 지역 특수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더 나아가 두 동강난 한반도의 허리를 잇고자 한 염원을 담아내고 있다.

a 벌교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을 잇는 부용교

벌교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을 잇는 부용교 ⓒ 김성철

"벌교는 한마디로 일인들에 의해서 구성, 개발된 읍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벌교는 낙안고을을 떠받치고 있는 낙안벌의 끝에 꼬리처럼 매달려 있던 갯가 빈촌에 불과했다. 그런데 일인들이 전라남도 내륙지방의 수탈을 목적으로 벌교를 집중개발 시킨 것이었다. 벌교 포구의 끝 선수머리에서 배를 띄우면 순천만을 가로질러 여수까지는 반나절이면 족했고, 목포에서 부산에 이르는 긴 뱃길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목포가 나주평야의 쌀을 실어내는 데 최적의 위치에 있었던 항구였다면, 벌교는 보성군과 화순군을 포함한 내륙과 직결되는 포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벌교는 고흥반도와 순천 보상을 잇는 삼거리 역할을 담당한 교통의 요충이기도 했다. 철교 아래 선착장에는 밀물을 타고 들어온 일인들의 통통배가 득시글거렸고, 상주하는 일인들도 같은 규모의 읍에 비해 훨씬 많았다. 그만큼 왜색이 짙었고, 읍 단위에 어울리지 않게 주재소 아닌 경찰서가 세워져 있었다.


읍내는 자연스럽게 상업이 터를 잡게 되었고, 돈의 활기를 좇아 유입인구가 늘어났다. 모든 교통의 요지가 그러하듯 벌교에도 제법 짱짱한 주먹패가 생겨났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벌교에 가서 돈 자랑,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순천에 가서 인물 자랑 하지 말고, 여수에 가서 멋 자랑하지 말라'는 말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는지 모른다.(태백산맥 1권 146p)"

a 소설속에 염상구와 '땅벌'이 철로위에서 싸웠던 철다리

소설속에 염상구와 '땅벌'이 철로위에서 싸웠던 철다리 ⓒ 김성철

"벌교 포구의 갯뻘이 끝이 없이 넓듯 벌교에서 꼬막은 흔해빠진 물건이었다. 그러나 감칠맛 있는 꼬막무침을 맛보기는 흔한 일만은 아니었다. 꼬막무침을 제대로 하는 처녀라면 음식솜씨는 더 물을 게 없다는 말이 상식화된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고흥 쪽 해변에서도 보성만 일대에서도 꼬막은 났다. 그러나 벌교 꼬막에는 그 맛이 미치지 못해 옛날부터 타지 사람들이 먼저 알고 차등을 매겼다. 벌교에서 물 인심 다음으로 후한 것이 꼬막 인심이었고, 벌교오일장을 넘나드는 보따리 장꾼들은 장터거리 차일 밑에서 한 됫박 막걸리에 꼬막 한 사발 까는 것으로 큰 낙으로 즐겼다."(태백산맥 1권 96p)

a 홍교 (횡겟다리)의 모습

홍교 (횡겟다리)의 모습 ⓒ 김성철

"장터거리는 남쪽에서 극장으로부터 시작해서 북쪽으로 횡계다리 못미쳐 삼거리 목까지였고, 장터는 그 중앙지점에 좌우로 자리 잡고 있었다. 벌교 오일장은 예로부터 보성의 오일장보다 그 규모가 배 이상 컸다. 인접한 고흥이나 조성의 인구 절반가량이 벌교장을 보려고 몰리는 탓이었고, 그에 따라 순천의 상인들은 물론이었고 멀리 여수에서도 물길을 따라 철로 아래 포구에 배를 묶었다.

벌교의 입지 조건에 의해 형성된 필연적이고도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런 현상 탓에 벌교사람들은 보성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우월감은 그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아주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일반화되어 있었다.(태백산맥 3권 110p)

또한 작가는 소설 속의 인물인 김범우를 통해 벌교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a 200여년이 지난 소설속의 김범우 집

200여년이 지난 소설속의 김범우 집 ⓒ 김성철

"갯내음과 땅내음이 어우러진 그 미묘한 냄새도 고향만이 주는 특이한 냄새였다. 그 냄새 속에는 이상하게도 바람에 갈대잎 쓸리는 소리, 기러기 울음소리 같은 것도 섞여 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갯가이면서도 포구가 한정도 없이 길어 정작 바다는 멀리 밀쳐두고, 민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반원을 그린 산줄기에 그 넓은 낙안벌을 품고 있는 고향은 언제나 두 가지 정취를 함께 느끼게 하는 풍광 아름다운 곳이었다.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는 그 짧은 시간만은 머릿속을 깨끗이 비울 수가 있었다."


이렇듯 벌교는 먹거리가 풍부하고 풍경이 뛰어난 곳인데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때는 호남의 곡창지역에서 생산된 쌀들을 일본으로 수탈해가기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했으며, 해방과 더불어 민족 간에 반목과 대립의 역사가 시작된다.

a 일제강점기에 수탈의 상징이었던 금융조합

일제강점기에 수탈의 상징이었던 금융조합 ⓒ 김성철

"일인 중도가 벌교천 하구에 있는 '중도방둑'을 막으면서 농토분할을 미끼로 노동착취와 쌀을 수탈해간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포구를 따라 뻗어나간 장장 이십 리가 넘는 방죽은 절로 탄복이 터져 나올 만큼 장관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인 중도의 땅이었지 그들의 소유라곤 단 한 치도 없었다. 방죽을 막으면서 개통한 다리에 '소화(昭和 6년)'라는 이름을 붙여도 그 누구하나 반대를 하지 않았듯이 그 방죽의 이름도 '중도 방둑'이 되었다.(태백산맥 1권 38p)"

"1948년 10월 20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제14연대가 여수 순천을 장악한 다음 벌교 고흥을 접수하면서부터 양방간에 서로 적개심이 불타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했다. 신문들은 이번 사건을 '여순 반란사건'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지난 사월 삼일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사삼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될 예정이었던 여수 주둔 십사연대에서 소수의 빨갱이들이 지휘관을 총살하고 부대의 지휘권을 장악함으로써 일어난 군부내의 반란이라고 경위를 밝히고 있었다.(태백산맥 1권 225p)"


a 피의 흔적이 서려있는 소화다리

피의 흔적이 서려있는 소화다리 ⓒ 김성철

이런 와중에 벌교지역에서도 많은 양민들이 학살 당했는데 그 상황들을 소설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하게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겄구만이라. 재미가 오진 써꺼스도 똑겉은 거 두 번씩 보먼 질리는 법인디, 사람 쥑이는 거 날이 날마동 보자니께 환장허겄구만요. 그라고, 그 사람덜이 간낳거고 배 곯는 사람덜 평이랑께 나쁠 것은 웂는디, 사람도 지각각 죄도 지각각이라고, 사람마동 진 죄가 다를 것인디 워째서 마구잽이로 쥑이는가 허는지, 날일 갈수록 그 사람덜이 무서워짐스로 겁이 살살 난당께요.(태백산맥 1권 64p)"

"김범우는 홍교 앞에 이르러 발길을 멈추었다, 홍교를 건너 길을 잡으면 장터거리와 극장을 지나 소화다리로 이어지는 삼거리에서 다시 경찰서나 우체국 등속의 관공서가 들어선 길이 끝나는 지점에 역이 있었다.(태백산맥 1권 160p)"

"소화다리에 첫발을 디디면서는 고개을 더욱 숙였다. 중간쯤에 이르렀을까 김범우는 섬뜩한 느낌과 함께 걸음을 멈추었다. 흙을 뿌리긴 했지만 거무칙칙한 색깔을 띠고 있는 그 얼룩이 피가 말라붙은 흔적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전신에 끼쳐오는 한기에 전율하며 그 얼룩을 응시하고 있었다. 상처입은 자가 흘린 피에는 고통이 있을 뿐이지만 죽은 자가 남긴 피는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저주하는 영혼인 것이다.(태백산맥 1권 161p)"


a 토벌대가 머물렀던 남도여관

토벌대가 머물렀던 남도여관 ⓒ 김성철

벌교는 아직도 그 피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는 가운데 '태백산맥' 기념관 건립마저 초기에는 반대했다가 민족화합 차원에서 이를 수락하여 현재 현부자집 부근에다가 보성군이 40억원의 예산을 들여 대지 3500평에 건물은 연면적 500평 규모로 '태백산맥' 기념관을 신축하고 있다.

해원과 화합의 마당으로 꾸며질 '태백산맥' 기념관이 완공되면 작가가 말한 대로 "역사는 '힘있는 자들의 기록'이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의 분단된 삶, 통일을 찾아가야하는 우리의 민족적 삶에 있어서는 더욱이 그러하다. 역사의 그런 허위가 파괴되고, 역사가 '자각하는 민중의 소유'가 될 때 비로소 우리 민족의 '허리잇기'인 통일도 이루어지리라 믿는다"고 확신한다. 이제 벌교는 뗏목다리에서 벗어나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는 오작교로 거듭나고 있다.

a 김범우 고택에서 내려다 본 벌교천과 홍교(횡겟다리)의 모습

김범우 고택에서 내려다 본 벌교천과 홍교(횡겟다리)의 모습 ⓒ 김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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